스카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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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사진 : 좌측 태양전지판은 고장으로 떨어져 나갔으며, 벗겨진 열 차폐막을 대신하기 위해 2회에 걸쳐 황금색 파라솔을 장착하였다.
1. 개요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
3회의 유인 비행으로 총계 171일 13시간에 걸쳐서 인간을 우주에 체류시켰고, 또 지구를 2000회 이상 돌았다. 비행사가 선외 활동을 행한 시간은, 42시간 16분에 이른다. 또 8종류의 태양 관측을 포함한 과학 실험에 든 시간은 대략 2000 시간 정도이다. 태양의 코로나 홀 (Coronal hole)은 스카이랩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인간이 장기간 무중력에서 생활하는 것에 관한 조사도 많이 행해졌다.
2. 아폴로 응용 계획
우주에 무언가 시설을 올리자는 생각은 그 전부터 있기는 했다. 우주 탐사의 초석으로서 우주 정거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단순히 머리 속 상상을 넘어 과학자들도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여러 문제로 그냥 계획 단계에서 끝났지만 베르너 폰 브라운이 계획한 달에 기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 호라이즌, 제미니 계획을 응용한 미 공군의 MOL(Manned Orbiting Laboratory) 우주정거장 계획 등 미국에서도 우주정거장을 만들자는 계획은 계속 있어왔다. 소련도 이는 마찬가지라 아폴로 계획에 패배한 후 살류트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우주정거장을 올렸다.
이러한 여러 움직임이 물밑에서 있는 와중에 1964년 7월, NASA 상부는 아폴로 우주선의 하드웨어의 여러 가지 과학적 연구의 응용 계획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는 달 착륙 성공 뒤 예산이 깎여나가 생길 대규모 해고 사태를 막아보려는 목적이었고, 아폴로 하드웨어를 응용해 돈을 아끼려 했다. 이때의 계획들은,
- 2기의 새턴 V를 사용하고, 달 착륙선을 베이스로 한 달 표면 기지를 건설한다.
- 달 착륙선을 개조해, 유인 천체 망원경을 궤도상에 쏘아 올린다.
- 달 착륙선이나 기계선을 연결한 소규모의 우주 정거장을 건설한다.
- 사령선을 타고 금성을 플라이바이한다.
이렇게 아폴로 계획이 돌아가는 뒤에서 여러 방안을 찾던 아폴로 응용 계획은 위에서 나온 여러 제안 가운데...
- 달 착륙선 상단을 개조한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한다.
- 궤도에 달 착륙선 상단을 개조한 지구관측 모듈을 올린다.
- 로켓을 개조한 염가 우주정거장을 올린다.
3. 임무
3.1. 스카이랩 1호
1973년 5월 14일 스카이랩 본체를 발사한 미션.
스카이랩 본체는 새턴 V의 3단 로켓을 개조한 것으로, 한 사람이 24개월간 생활할 수 있는 보급품을 탑재하고 있었다. 상단에는 도킹 모듈과 아폴로 달 착륙선 상단을 개조한 태양 관측 망원경을 장착하고 있었다.
폰 브라운의 원래 계획은 새턴V의 2단을 개조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생산되는 모든 새턴V는 달 탐사용인지라 수가 부족했고, 대신 지구궤도 임무 몇 개가 취소되어 남아도는 새턴IB의 2단(새턴V의 3단과 거의 같다)을 개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형태를 웻 워크샵(wet workshop)이라고 하는데, 연료를 탑재한 로켓을 궤도에 올리면, 남은 연료는 버리고 그 자리에 실험장비 및 거주시설을 끼워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7호 이후의 아폴로 계획들이 취소되며 새턴V 세 대가 수중에 들어왔는데, 이때는 이미 설계작업이 한참 진행된 터라 다시 2단 기반 실험실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대신 여유 중량이 넉넉해져 더 많은 장비를 넣을 수 있었고, 잔여연료를 버리고 우주정거장 설비를 집어넣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완성된 정거장을 바로 궤도에 올릴 수 있었다. 이 형태를 드라이 워크샵(dry workshop)이라 한다.
우주인들은 새턴 IB가 쏘아올리는 아폴로 사령선에 탑승해 스카이랩에 도킹했고, 임무가 끝난 뒤에도 사령선에 탑승해 재진입했다. 엄밀히 말해 스카이랩 2~4호는 이 아폴로 사령선의 명칭이다. 그러나 NASA 내부에서도 미션 명칭 부여에 혼동이 생겨 아래에 나오는 미션 패치를 보면 스카이랩 2, 3, 4호가 각각 1, 2, 3호로 표기되어 있다.
3.2. 스카이랩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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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랩은 1973년 5월 14일 발사 되었으나, 쏘아올린 지 1분이 지났을 때에 열과 미운석의 충돌로 인하여 스테이션을 보호하는 알루미늄 차폐판 일부가 떨어져서 스카이랩 측면에 접어둔 날개형 태양전지판 2개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다른 태양전지판에는 차폐판의 파편이 박혀서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스카이랩이 궤도에 오르자 휴스턴의 비행 관제 센터는 태양전지판을 열도록 지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같은 지령을 2회나 발했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발사 90분 후 휴스턴은 스카이랩의 고장을 확인 했다.
선장 피트 콘래드, 조종사 폴 와이츠, 과학자 겸 조종사인 조셉 커윈 3명은 그날 밤 스카이랩이 고장났다는 소식을 알았다. 원래는 본체를 발사한 다음 날 우주인들이 올라갈 계획이었지만 비행은 이미 연기 되었으며, 임무 중지도 거론 되고 있었다. 스카이랩을 덮는 열차폐판이 없으면 스카이랩 외판은 163℃의 고열로 올라가고 그 내부는 74℃까지 뜨거워진다. 그렇게 되면 우주선 내 식량, 필름, 의약품이 상하고 스카이랩 벽에 도장된 포말 단열제로부터 유독 가스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휴스턴은 걱정 하였다.
비행 관제 센터는 항구적인 대책이 강구되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스카이랩 외벽에 장착한 자세제어 로켓을 분사해서 스카이랩의 자세를 경사지게 하여 손상된 부분이 태양광선을 바로 받지 않도록 하였다. 그 결과 스카이랩의 내부 평균 온도는 약 54℃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에도 기술자는 응급용 차양을 고안하여 신축이 자유로운 골격을 가진 6.6 x 7.2m의 장방형 파라솔을 설치 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파라솔과 수리기구를 싣고 우주비행사 3명은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예정보다 10일 늦은 1973년 5월 25일 발사되었다. 본디 이 첫비행은 우주공간에서의 작업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으나, 스카이랩을 수리 하는 미션으로 전환 되었다. 발사 후 약 7시간 30분 후 아폴로 우주선은 스카이랩과 도킹하여 수리 미션을 진행 하였다. 다행히 NASA 비행 관제센터의 빠른 대응으로 차폐막의 손상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피해는 최소한이었으며, 성공적으로 파라솔 차양을 펼쳐 스카이랩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데 성공 하였으며 접혀있던 태양전지판을 열었다. 다음 미션으로는 스카이랩 외부에 설치한 무게 11t짜리 태양 관측장치의 망원경 8개를 작동시켜 태양 관측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또한 지구자원 실험장치(EREP : Earth Resources Expriment Package)를 작동시켜 지구 지표면을 관측 하는 작업을 진행 하였다.
미국 우주개발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장기간 인간을 우주공간에 체류 하는 이 미션을 진행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테스트를 진행 하였다. 우주비행사들에겐 매일 근육손실을 막기 위하여 매일 30분씩 운동용 자전거를 타도록 하였으며, 무중력 공간에서 방향감각을 측정하는 테스트를 진행 하였다. 다양한 식사 및 수면에 대한 테스트 역시 진행 되었다. 기존 아폴로 프로젝트와 달리 스카이랩에는 흡입식 화장실을 설치 하였으며, 샤워실도 준비 하였다. [2]
3명의 우주비행사는 총 28일 50분간 우주공간에서 체류 하였다.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체중이 줄었다. 특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체액의 재분배가 겹쳐서 쇠약이 두드러졌다. 무중력 상태에서 그들의 척추가 자라서 모두 2.5cm정도 키가 커져 있었다. 심장은 3%정도 수축했고, 다시 지구상에서 호흡을 하게 되자 맥박이 빨라졌다. 위의 근육만은 우주공간의 무중력 속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착수 후 약 2일 후 모든 우주비행사는 지구 생활에 잘 적응 했다고 한다.
3.3. 스카이랩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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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7월 28일, 케네디 우주센터 LC-39B에서 발사되었다. 임무 시간은 59일 11시간 09분 01초이며, EVA는 총 세번 실시되었다.
선장은 앨런 빈, 조종사 잭 루스마, 과학 조종사 오웬 게리엇[3] 이 미션을 수행했다. 기본적으로 스카이랩 2호에서 수행한 여러 실험들의 연장이었는데, 2배 더 긴 체류 기간을 통해 무중력인 우주에서 보낸 시간에 따른 인체의 변화 자료를 모았으며 그 이외에도 세포 배양 실험, 미세 중력 실험을 수행하였다.
스카이랩 3호의 미션 패치에 그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비트루비우스적 인간)는 이번 미션이 우주에서의 신체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미션 패치에는 원판의 성기를 제거하였다. 스카이랩 3호 대원들은 스카이랩을 떠나며 후속 대원들을 놀려먹으려 본인들 비행복을 사람인 것처럼 봉지에 씌워 우주선 곳곳에 놓아두기도 했다.
3.4. 스카이랩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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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16일 발사했다. 임무시간은 84일 1시간 16분이며, EVA는 4번, 총 22시간 13분 동안 했다.
선장은 제럴드 카, 조종사는 윌리엄 포그, 과학 조종사는 에드워드 깁슨이다. 카와 포그는 아폴로 19호 승무원으로 내정되어 있긴 했지만 셋 모두 우주비행은 처음이었다.
스카이랩 4의 체류기간은 역대 최장이었고, 총 6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실험을 해야 했다. 수천 개에 달하는 실험기구를 옮기는 것도 버거운데, 사이사이 EVA와 코호테크 혜성 관측, 지구와 태양 관찰도 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으로 우주인들은 시간에 쫓겼고 지상에서는 밥 먹으면서 실험을 해서라도 스케줄을 맞추라고 닦달하여 결국 맞대응으로 세 우주인은 1973년 마지막 날 통신을 끊고 하루 푹 쉬는, 최초의 우주 파업을 벌였고 휴식시간과 식사시간을 보장하는 등 사항을 타협하고 다시 임무에 임했다. 임무가 끝난 후 결산하니 오히려 예정보다 많은 작업을 소화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우주공간에서의 작업강도와 시간, 우주에 장기간 체류하는 것의 정신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3.5. 스카이랩 레스큐
스카이랩에서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한 백업계획. 아폴로 사령선을 개조해, 2명이 타고 올라가 최대 5명을 태우고 귀환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물론 실제로 발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령선만 전시하는 다른 스카이랩 사령선과 달리 기계선까지 온전히 남아있다.
4. 이후
우주왕복선 개발 때문에 NASA는 스카이랩에 신경쓸 수 없어 스카이랩의 4번째 미션이자 고도 회복 미션인 스카이랩 5 미션을 취소했고, 대신 셔틀을 완성하면 초도비행 직후 두번째 미션에서 곧바로 스카이랩에 도킹하여 부스터로 고도를 회복하는 복안이 존재했다. 하지만 셔틀의 개발이 많이 지체되며 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의 활강 시험은 1977년에야 이뤄졌고, 엔터프라이즈의 테스트 이후로도 4년이 지나서야 셔틀은 데뷔할 수 있었는데(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의 첫 비행이 내열타일 탈락 문제로 3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정작 스카이랩은 1981년 4월 12일 STS-1 이전인 1979년에 1970년대 후반 태양 흑점 활동의 영향으로 대기와 마찰에 의한 고도 하강이 당초 예상치보다도 훨씬 심해서 이미 대기권에 돌입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스카이랩이 손실되는 과정에서 NASA 내에서 많이 반발했고, 일부 엔지니어와 우주비행사들이 반발을 표하며 사직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폴로 13호 달 착륙선 조종사 출신이자 엔터프라이즈의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프레드 헤이즈.
5. 기타
우주왕복선 연료탱크의 수소 탑재부를 우주정거장으로 개조해 지구-달 L2 지점에 갖다놓자는 스카이랩 II 계획이 있다.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