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경(음악가)
"그녀가 보여준 독창적인 음색과 잘 다듬어진 해석은 비엔나 청중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받았으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연주였다." -오스트리아 플루트 페스티벌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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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mine Choi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 목관악기 수석주자가 된 인물.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현시대 최고의 플루티스트 중 하나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이끌어갈 인재로 각광받고 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 후 대전으로 이사를 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된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최나경은, 예원학교에 입학을 허가받아, 홀로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예원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고에 합격하게 되는데...
2.2. 커티스 음대와 줄리아드 스쿨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줄리어스 베이커(각주)(Julius Baker)와의 만남을 통해, Curtis Institute of Music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하게 된다. 거장 줄리어스 베이커의 마지막 제자 중 한 사람이 된 최나경은 이후 줄리어드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게 된다. 그 당시, 줄리아드 음대는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콘서트를 열게 되었는데 최나경이 줄리어드 심포니와 협연을 하게 되었다.
2.3. 졸업과 동시에 전설이 되다
줄리어드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는 동시에, 미국 10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Cincinnati Symphony Orchestra에서 수석 플루티스트로 6년간 활동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면, 지금까지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 목관악기로 활동한 한국인은 '''없었다'''(!!!)
2006년에서 2012년까지 Cincinnati Symphony Orchestra에서 활동하다가 빈 심포니 오디션에 합격하여 빈 교향악단의 첫 여성 수석 주자가 된다. <-1년 만에 짤린 건 사실이 아니다. 빈 심포니는 국제적인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모든 신입 단원 은 1년의 수습 기간 후 경영진과 기존 단원들의 투표를 거쳐 거취를 정하게 된다. 그녀는 133표 가운데 47표 찬성, 66표 반대를 얻어서 계약 연장이 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지휘자 3명과 수십 명의 수석들, 그리고 더 많은 부수석들...)이 오케스트라에 잔류하지 못했다. 그들이 내쳐진 이유는 결코 실력이 낮아서가 아니다. 기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지를 투표하는 방식 때문인데 이게 빈 심포니의 전통이라고 한다.
최나경 씨에 따르면 그녀가 오케스트라 사람들과 너무 계산적으로 친해지려고 했고 수습 기간에 빈 필 동기들과 모차르트 4중주 녹음을 한 것 등으로 시시콜콜하게 트집이 잡혔다고 한다. 영어지만 양측의 주장이 담긴 포스트
2.4. 현재
빈 심포니와의 불화로 오케스트라에서 나온 이후, 현재는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보면 알겠지만 일 년 내내 스케줄로 꽉 차있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이렇게 행사라도 많이 뛰어야 한다고 한다. 가끔씩 대학교에 게스트 강사로 오기도 한다고.
3. 경력
- 빈 심포니 첫 여성 목관악기 수석, 첫 동양인 목관악기 수석
- 신시내티 심포니 첫 동양인 부수석
-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자 콩쿠르 우승
- 미국 야마하 영 퍼포밍 아티스트 우승
- 미국 아스트랄 아티스트 우승
- 미국 심포니 매거진 떠오르는 연주자 선정
- 미국 줄리어드 음대 100주년 기념 협연자 콩쿠르 우승
- 전 세계의 수많은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