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현(1888)
천도교 교구실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자, 교구장 유태홍은 교인 유석(柳錫)ㆍ김성재(金性在) 등 8명에게 선언서를 배포하도록 하였다. 독립선언서 9매를 수령한 최병현은 그날 밤 유석과 김성재와 함께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게시판에 1매를 붙이고, 나머지 8매는 운봉면(雲峰面)ㆍ동면(東面) 등지에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5일에는 천도교도로부터 기도미(祈禱米)를 징수하여 천도교 중앙총부로 송금하였다. 최병헌 등의 이러한 활동은 남원 지역 만세시위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신간회 남원지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후 남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7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최병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320실 108호에 안장했다.
최병현은 1888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남원군 주천면 주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아침 8시경 남원읍 금리에 있는 1919년 4월 15일에는 천도교도로부터 기도미(祈禱米)를 징수하여 천도교 중앙총부로 송금하였다. 최병헌 등의 이러한 활동은 남원 지역 만세시위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신간회 남원지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후 남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7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최병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320실 108호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