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
國立서울顯忠院 | Seoul National Cemetery
[image]
<colbgcolor=#0047a0> '''설립일'''
1956년 4월 13일
'''기능'''
국립묘지
'''원장'''
양섭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현충로 210
'''상급 기관'''
국방부
'''안장자수'''
73,096명(2019년)

'''국립서울현충원'''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1. 개요
2. 안장자
3. 사건 사고
4. 교통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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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에 소재한 국립묘지.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늘어나는 국군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한 육군 국립묘지로 1952년 5월부터 계획되어 1953년 서울 동작동 부지 선정, 1954년 착공, 1956년에 개장, 안장이 시작되었다. 개장 당시의 명칭은 '국군묘지'였다. 1965년 국립시설로 승격되어 '국립묘지'로 불리었다. 이후 2006년에 '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 산하 기관이다.
개장 당시에는 6.25 전쟁 때 전사(戰死)했던 군인, 대한민국 군무원, 종군자 등을 안장하는 위주로 갔었으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순국(殉國)한 애국자독립유공자 등의 호국영령을 비롯해 경찰관,[1] 향토예비군 등의 영현까지 안장함에 따라 호국보훈 및 추모시설로 범위를 넓혀나가게 되었다.
묘역에는 일반묘역과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묘역, 군인 묘역, 경찰 묘역,[2] 무명용사 묘역 등이 있으며 현충탑, 현충문, 현충선양관, 충렬대, 전쟁기념관, 무명용사의 탑이 있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이곳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주관하는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다. 이 추념식에는 청와대대한민국 국회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과 호국영령 및 독립유공자의 가족,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참석하여 현충탑 앞에서 분향 및 헌화 의식을 가진다.[3] 또한,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반드시 찾는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새해가 밝거나[4] 현충일이면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국무위원이 반드시 가는 곳이며 특히 여야 유력 정치인 (당대표 등), 주요 선거 출마 예정자와 당선자, 새로 취임한 장관들의 첫 일정도 현충원 참배로 시작한다. 소위 대권주자들 역시 선거철 앞두고 이 곳을 무조건 찾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통령 선거에 도전을 선언한 직후,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그리고 대통령 당선인이 되었을 때는 당선인 부부, 선대위 위원장 등이 직접 참배한다. 국회의원 총선지방선거때도 당대표 등 지도부, 심지어 현역 의원 대부분을 거느리고 참배에 나선다. 중앙 정치인들 대부분 서울에 거점을 두고 있기에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당선인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역별 당선인은 해당 지역의 국립묘지나 충혼시설을 찾는다.
정치인들은 현충탑에서 참배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치 진영에 따라 전직 대통령 기일에 각 묘소를 찾을 때도 있다.[5] 참배를 마치고 나갈 때마다 현충문에 놓여져있는 '''방명록'''을 적고 간다. 이럴때는 순수한 추모 메시지보다는 국정 운영에 대한 포부를 쓰고 나가는데 그 글귀 등이 화제가 된 적도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어맹뿌' 글씨 방명록도 현충원에서 나왔다 현충원 방명록 통해 본 여·야 정치인들의 새해 메시지아무래도 대통령을 비롯한 몇몇 주요인사들은 TV로 생중계되는 와중에 직접 방명록을 적기 때문에 정치인의 말 하나 하나를 캐치해내는게 중요한 언론에서는 글귀를 통하여 대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 그 의미를 유추해 보기도 한다.
이 곳에 묻힌 전직 대통령들의 기일에마다 열리는 추모식도 이 곳에서 열린다. 그래서 관련된 유족들과 정치인도 방문한다. 일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어머니의 추모식이 열릴 때마다 참석한 바 있다.
그 외에 참배객들과 보훈 유족들이 방문하여 복잡하고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6]
국립대전현충원 신설 이후로 일반적인 묘 안장이 중단되었지만, 대전 현충원 포화에 대비하여 실내 봉안시설인 충혼당이 2006년 3월에 개원함에 따라 유족의 의사에 따라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유해를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윤승주 일병김지훈 일병 등의 유해도 유족의 뜻에 따라 대전 현충원 안장 대신 서울 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또한 몇년내로 만장이 예상되어 충혼당을 건설중에 있고 서울현충원 또한 충혼당 포화로 인하여 제2충혼당을 2022년 1월에 준공하여 2024년 개원할 예정이다.[7]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대한민국 육군 제52보병사단 예하부대인 52경비대에서 현충원을 경비했으나, 경비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2008년 11월 21일 해체되었다.
현충원 안에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와 국군교향악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본부 그리고 국방부 의장대대의 일부 중대가 근무하고 있다.

2. 안장자


국립서울현충원 최초 안장자는 1956년 무명용사의 유해가 안장되었고 신분이 확인되어 안장되어 있는 최초안장자는 1957년 4월 2일에 11번 묘역에 안장된 강덕수 육군하사 이다.[8] 최초 장군안장자는 박범집 공군소장이 1957년 4월 28일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경우 4인의 묘가 있다. 1965년 미국 하와이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이곳에 안장되었고, 1979년에는 10.26 사건 이후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장되었으며 200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사망한 이후 안장되었고 2015년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망함에 따라 이곳에 안장되었다. 김대중은 유가족들이 국민들의 참배가 용이토록 서울에 묘역을 마련해 달라고 청원한 것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민주화의 큰 별이 졌다'며 수락해 특별히 안장되었고, 이 전례에 따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서울에 안장되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최규하 대통령 만이 남게 되었다. 그 외에 윤보선 전 대통령은 개인의 유언에 따라 현충원 안장을 거부하고 충청남도 아산시 선산에 묻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어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에 묻혔다.
2021년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4명 전원(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9]이 서울이건 대전이건 현충원 안장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상당한 기간동안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의 유일한 묘소로 남을 전망이다..
대한민국 영부인은 대통령과 합장된다. 1974년 8월 15일 피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육영수 여사가 역대 영부인 중 처음으로 이곳에 안장됐고[10] 2019년 6월 10일에 세상을 떠난 이희호 여사가 남편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 안장됐다. 부군(대통령)이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전직 영부인들 중 유일하게 생존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훗날 사망하면 이곳에 안장될 예정이다.
철도공무원들 중 김재현 기관사가 최초로 이곳에 안장되었다.[11] 고인은 1950년 7월에 미 육군 제24보병사단 윌리엄 딘 육군소장 구출 작전에 참가했다가, 온 몸에 8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공무원 출신으로는 드물게 장교 묘역에 있다.
외국인으로는 석호필(스코필드) 박사가 이곳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고, 장후이린[12], 위쉬팡[13]중화민국 국적으로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스포츠계의 유명인으로는 2016년 9월 8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야구 해설가인 하일성 KBO 전 사무총장이 이 곳 충혼당에 안치되었다. 사유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자격'''이다.
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는 육군 중장, 즉 장군의 신분으로 장군 묘역을 거부하고 유언에 따라서 최초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 묘소가 있다. 묘번은 34489로, 묘지에 들어서는 화강암 비석과 묘 면적 등도 일반 사병의 것과 똑같다. 퇴역 직후부터 평소에도 서울 현충원에 오면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고 부하들은 여기 잠들어 있다면서 통곡'''을 했다고 하며, 그래서 채명신 장군이 스스로 '''자신이 죽으면 여기에 묻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조문을 하면서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위 대통령들과 달리 화장 없이 넓은 묘역에 큰 비석을 쓰는 장성 묘역의 특권을 포기하고 들어간 특례라 비난하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계엄군 중 28명이 28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4]
중종의 후궁으로 선조의 할머니이자 덕흥대원군의 어머니인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 안에 조성되어 있다. 다만 의도하고 안장한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묘역이 만들어져 있다가 현충원이 조성될때 의도치 않게 겹친 것.
국방부에서 전사자로 판단해 유가족에게 전사통지서가 전달되고 현충원에 안장 처리되는 바람에, 살아있음에도 묘가 먼저 생긴 기묘한 경우도 있다.# # 퇴역 육군 준장 박경석 장군이 주인공으로, 포로 생활 중 탈주해 복귀하여 군생활하며 자신의 가묘를 가끔 방문해 마음을 다지곤 했다고 한다. 사망할 경우 이 가묘에 그대로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장성급 장교중 유일하게 위패로 안장된 육근수 육군 준장의 위패도 이곳에 있다. 육근수 장군은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장으로 1953년 7월 금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여 사후 준장으로 추서 되었는데, 시신을 수습 못하여 위패만 모셔져 있다.
백선엽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백선엽이 현충원 안장 대상이고 대전 현충원에 모실 것이라고 밝혔다. #

3. 사건 사고


1970년에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3명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한국전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대통령 및 정부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정문인 현충문에 폭탄을 설치하던 중 폭탄이 그대로 폭발하여 폭탄을 설치하던 간첩 1명이 사망하였고 현충문이 일부 파손된 사건이 있었다.

4. 교통


4호선9호선이 만나는[15] 동작역, 그리고 동작대교가 국립서울현충원과 인접해 있다.4호선역과는 좀 멀지만,9호선과는 매우 가깝다. 9호선 동작역 8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정문이다. 특히나 현충일 때에는 도로도 막히니 지하철을 타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정기공연 음악회 감상을 하려면 7번출구로 나가면 빠르다. 4호선 출구로 나가면 한참 걸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하도 걷는거리나 지상으로 걷는거리나 비슷하긴 하나, 4호선 출구의 경우 계단과 언덕이 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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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문하여 참배한 바 있다. 일본 총리로서 현충원에 참배한 것은 아베가 최초였다.
평상시에도 개방되어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산책하기도 한다. 또한, 벚꽃철이나 단풍철에는 꽃구경하러 많이 찾아온다. 도시락이나 컵라면은 놀랄 일도 아니고, 아예 텐트를 치는 사람들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다. 외국인이나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온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래서 묘지에서 떨어진 호숫가나 벚꽃길, 잔디밭만 보면 평범한 시민공원같이 보일수도 있다. 묘지 뒷쪽으로 완만한 언덕길이 조성되어 있어 어르신들이 걷기운동하러 오기도 하며, 심지어는 작은 체육시설도 만들어져 있다.
중, 고등학교의 단체 봉사활동으로 종종 와서 잡초를 뽑거나 비석을 닦는다. 잡초 뽑으랬더니 잔디 이삭만 주구장창 뽑는 건 덤. 이는 학생들을 탓하기도 뭣한게 이들 눈에는 잔디와 잡초가 상당히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고 전문가도 아닌 학생들이 이걸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생각해야된다.
[1] 참고로 순직한 소방관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2] 국립대전현충원은 경찰•소방묘역으로, 순직 경찰관과 소방관이 한 묘역에 안장된다.[3] 대통령 부재 시에는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여 추념사를 낭독하며, 대통령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추념식을 열 경우 서울특별시 주관으로 개최한다.[4] 정확히는 새해 첫 공식 업무일이다. 보통은 1월 1일 당일, 1월 2일 아침에 참배하지만 1월 1일이 금요일이거나 토요일일 경우 1월 3일 또는 1월 4일에 새해 첫 참배에 나선다.[5] 가령 보수 계열 정당 정치인들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소를, 민주당계 정당 정치인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참배한다. 가끔씩 진영이 다름에도 '''국민 통합'''의 이유로 성향이 다른 대통령 묘소를 참배할 때도 있어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6] 심지어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노점상들이 등장한다. 명절에도 현충일만큼은 아니지만 많다. 특히 일부 철부지 꼬마들이 묘역에 꽂아놓은 태극기를 뽑아 장난감으로 삼기도 하여 '''묘역에 꽂힌 태극기들이 뽑히는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제발 현충원까지 와서 이러지 말자.[7] 2020년 7월 현재 예상보다 빠른 포화로 인하여 제2충혼당을 건립 전 임시안치실에 봉안한다는 홈페이지 공고가 올라와있다.[8] 1953년 6월 11일에 철원에서 전사하였다.[9] 전두환, 노태우는 임기를 마친후 실형이 선고되어 구속된 사실이 있고,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되었고 이명박은 2020년 10월 29일에 징역17년이 확정되어서 현충원에 안장될 수 없다.[10] 유일하게 영부인이 먼저 안장되고 대통령이 합장된 사례다.[11] 위패는 대전에 있다. 아이러니.[12] 姜惠霖(1924~1951), 한국식 독음은 강혜림. 평양에서 중국요리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국군 제1보병사단 15연대 하 "중국인특별수색대"에 입대했다. 1951년 2월 2일 중공군 군복으로 위장하고 관악산을 점령하고 있는 중공군을 상대로 정찰을 하던 중 교전이 벌어지자 중공군 정예병력과 백병전 도중 전사했다. 1964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13] 魏緖舫(1923~1989), 한국식 독음은 위서방. 국부군 장교 출신으로 1949년 화교 청년들과 함께 한중반공애국단(韓中反共愛國團)을 조직해 국군이 평양에 입성할때 협력했고 이후 국군 제1보병사단 15연대 하 "중국인특별수색대"에 입대했다. 전후 한의사가 되어 의료봉사와 장학사업을 하였으며 1989년 별세. 이후 국무회의 결의를 거쳐 현충원에 안장되었다.[14] 그 외에도 일부 무자격자가 안치되어 있는데, 사실 이는 대전도 마찬가지. 아마 대대적인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무자격자들을 가려내긴 어려울 것이다. 일부 무자격자라지만 거의 만장인 서울현충원을 감안했을때 일부가 백 명이 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계엄군 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나 베트남 전쟁 때 현지 여성을 강간한 강간범들도 묻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발포하거나 범죄를 지른 자들이란 뜻은 아니다. 경찰들 경우 안병하 경무관 명령 아래 절대 과잉진압을 하지 않았지만 순직한 경찰관들도 있었고 계엄군도 말그대로 억지로 끌려왔다가 전교사와 11공수여단의 오인총격전과 같이 교전 도중 순직한 군인들도 있다. 일일이 그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어서 안장 자격의 유무를 밝혀내기는 어렵다.[15] 4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유일한 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