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우석
崔禹錫'''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2년 1월 11일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color=#fff> '''사망'''
1942년 2월 17일
경기도 김포군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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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우석은 1892년 1월 11일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서도 마넷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3월 22일 군하리에서 300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시위를 주도했으며, 조남윤(趙南潤)과 함께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 위하여 당인표(唐寅杓)의 집에서 동지들과 모여 주민들에게 29일 오전 11시에 통진(通津) 읍내로 집결하도록 요구하는 문서 7통을 작성하여 이를 면내 각 동리의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는 이 계획에 적극 찬동하는 정인교(鄭仁敎) 등 동지들과 함께 마을주민들을 규합하고 윤종근(尹鍾根) 등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29일 오전 11시경 400여 명의 군중이 통진 읍내로 모이자, 그는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공자묘(孔子廟)와 월곶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이 해 7월 7일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김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2년 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최우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