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한 5000계 전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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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색의 5000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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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도색의 5000계
1. 사양
2. 설명
3. 사고


1. 사양


京阪5000系電車
열차 형식
통근형 전동차
구동 방식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급전 방식
직류 600V 가선 급전(승압 전)
직류 1500V 전차선 급전(승압 후)
영업 최고 속도
110㎞/h
설계 최고 속도
110㎞/h
신호 방식
케이한형 ATS
제작 회사
카와사키 중공업
도입 연도
1970년 ~ 1980년
제어 방식
저항 제어(갱신 전)
계자 첨과 여자 제어(갱신 후)
제동 방식
전기지령식 전자직통 브레이크 HRD-1D(갱신 전)
회생브레이크 우선 전기지령식 전자직통브레이크 HRDA-1(갱신 후)

2. 설명


이 계열을 설계했을 당시에 케이한 전기철도오사카교토시내에 전차와 평면교차를 하고 있어서 케이한 본선이 개업했을 당시부터 가선 급전 600V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케이한은 변전소 수나 전류 용량등등의 문제 때문에 1편성은 7량이 최대였으며, 8량화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또한 당시 케이한 본선의 복복선 구간인 쿄바시역 ~ 모리구치시역 사이에서 모리구치시의 택지 개발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케이한 본선의 혼잡율은 최대 190%를 찍고 있는 중이었지만, 케이한의 시설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러쉬하워의 정시성은 엉망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케이한은 보통열차의 승하차 시간 절감이라는 이유로 7량의 제한된 편성 안에서 5비차라는 차량을 생산하게 된다. 단, 5비차 운영시간은 출퇴근 시간에 한정되어 있으며, 평소에는 3비차로 운영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고하시길...
도입 당시에는 7량 편성도 있었지만 3량+4량 편성도 있었다. 총 7편성 49량 + 사고 대차분 1량 = 50량이 생산되었다.

3. 사고


1980년 2월 20일 20시 59분 경, 히라카타시역 - 고텐야마역 구간에서 '''중학생 5명이 선로에 설치한 함정[1]때문에 탈선하여 선두차는 선로 옆 주택을 뚫었고 2번째 차량은 전복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해당 열차는 요도야바시산조 행 '''급행'''으로, 7량 편성에 약 400명의 승객 중 104명이 부상당하고, 선두차인 5504호는 폐차되는 큰 인명 및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가해자인 중학생 5명은 케이한 전철에게 바로 소송 크리를 먹었고, 이 중 4명은 '''각자 840만 엔을 배상[2]'''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 1명은 부모라는 작자가 "우리 애는 서클에는 가담했지만 사고랑은 관계 없어요!"라고 박박 우기다가 '''1987년'''에 최고재판소에서 똑같이 4인과 같은 840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케이한에게는 불운이겠지만 이때는 버블경제때문에 일본 전체가 미쳐돌아가고 있었다.[3] 그리고 1992년에 거품이 꺼졌다.'''
이 사고로 5504호는 폐차되었다. 다만, 1980년 12월에 같은 차호의 선두차가 신조되어 폐차분이 대체되었다.
[1] 케이블과 U자형으로 된 콘크리트 물체를 '''선로 위에다 올려놓았다.'''[2] 피해 금액의 10분의 1 정도였으나, '''이들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케이한이 여기서 끝낸 것. 추가적으로, 이 당시는 버블경제따위 없었고 게다가 '''오사카'''였다. 하지만 '''7년 후 버블경제가 정점을 찍어버린다.'''[3] 87년 닛케이 지수는 80년의 3배인 18000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