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보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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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箒 (The BAMBOO BROOM)
나스 키노코와 타케우치 타카시의 동인서클이자 서클 홈페이지 명칭.
1998년 히로시마에 소재하던 주식회사 컴파일이 화의에 의한 감축을 하게 된다. 때문에 컴파일에서 일하던 타케우치 타카시는 도쿄로 돌아와 새로운 회사에 취직한다. 타케우치는 새로 취직한 회사의 선배[1] 로부터 최근의 코믹 마켓의 문화[2] 를 배우는데, 마침 창작욕을 느끼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라 여기에 강한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친구였던 나스 키노코를 끌어들여 동인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다만 그 이전에 우선 웹사이트부터 시작해보자, 하여 5~6월 경에 시작한 것이 타케보우키다.[3]
타케보우키에 게재되는 콘텐츠가 그림뿐만이라면 약하다고 생각하여 타케우치는 가볍게 읽을거리를 써달라고 나스 키노코에게 부탁한다. 그래서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공의 경계. 공의 경계는 1년 정도 매월 연재해 보자 하여 시작되었다. 타케우치는 "매회 다른 단편이면 좋아"[4] 라고 말했지만 나스 키노코는 장기간 연재하게 되면 소재가 궁핍해질 것을 염려했다. 때문에 나스 키노코는 처음에 큰 스토리를 생각해두고, 매회 다른 에피소드로 큰 스토리 안에서 연결하고 나누고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단편으로써 그 자체로 완결되고, 단편들이 모여 큰 그림을 그려내는 구성이었던 것이다.
나스 키노코는 전부터 생각한 신본격과 전기의 융합을 실험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웹사이트라면 발행에 따른 비용이 들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누구도 손해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실험작도 허용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타케우치의 요청대로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집필에 임했으나 점차 집필에 몰두하게 되었고, 스스로의 창작 활동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 될 것이라 예감하게 된다. 타케우치는 웹사이트를 통해 나스 키노코의 작품을 발신하면 상당한 반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으나 당시 타케보우키는 인지도가 없다시피 했던 만큼 전달력이 약하였다. 다만 읽어주는 이들은 좋은 반응을 보였고, 공의 경계 제1장 연재 당시 우연히 이를 접한 OKSG는 타케보우키의 팬이 되어 다음해 결성되는 동인서클 타입문의 스태프로 합류하게 된다. 일부러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상경을 감행했던 것이다.
타케보우키는 타입문이 결성되기 전 약 1년여간 코미티아[5] 와 같은 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타케우치는 오리지널 만화를, 나스 키노코는 오리지널 소설을 발표하며 하마다 타카시(濱田 崇史)의 동인서클 코시카케 클럽(腰掛倶楽部)[6] 과 함께 움직였지만 도중부터는 나뉘어 따로따로 움직이게 된다. 타입문의 활동이 시작되며 '이쪽은 바빠서 게임 만들기에는 관여할 수 없다', '월희를 만들기 시작하면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되어 그러면 여기서 나뉘는 것이 좋겠다, 하고 각기 활동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타입문과 타케보우키를 병행하여 운영[7] 했지만 타입문이 기업화됨에 따라 비중은 급격히 타입문에 쏠려 타케보우키의 활동은 둔화된다.
몇 차례 리뉴얼을 겪으며 현재 사이트에 남아있는 콘텐츠는 실질적으로 2002년 11월에 시작된 '타케보우키 일기(竹箒日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타케우치와 나스의 2인 일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케우치는 일기를 작성하지 않게 되었다. 타케보우키 일기 이전에는 98년 사이트가 처음 개설된 후부터 타케우치 1인이 작성했던 '잡 일기(雑日記)'가 존재했지만[8] , 월희가 히트한 후 드문드문해지더니 2001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따라서 타케보우키 일기는 일기 콘텐츠가 약 1년 가량의 공백을 거치고서 재등장한 것이다. 두 사람이 배턴 터치를 하듯이 한 사람만 일기를 적게 된 것은 팬들에겐 아쉬운 점이다.
참고로 타케보우키 일기나 공의 경계 소개나 링크는 타케보우키 대문을 통하지만 도메인은 타입문의 주소[9] 로 되어 있다. 최근 일이 아니라 01~02년도부터 그래온 것. 타입문의 모태가 된 동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간판만 남겨두고 관리가 필요한 부분은 타입문으로 통합 이관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이 대문은 이미지 배너 업데이트를 통한 활동 소식 고지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고지로는 봄과 달과 하늘과 및 공의 경계 전화집 + 미래복음 extra chorus 등이 있었다.
Fate/Grand Order 서비스 이후 드문드문 뒷설정이나 개발비화같은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TYPE-MOON 불완전 연표는 원래 다빈치 2007년 6월호의 나스 키노코 특집으로 필자인 오오치 요우코(おーちようこ)가 담당한 페이지에 동인지 생활 문화 종합 연구소의 미사키 나오토(三崎尚人)가 협력했을 때 만든 메모를 2008년 7월에 추가 · 정정하여 공개한 것이다.
미사키 나오토는 메모 작성 의도로, 타케우치 타카시 · 나스 키노코 두 사람의 동인 ~ 상업 활동을 조감할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1) 코믹 마켓의 기업 부스에 있어서의 판매 물품을 제외하여 상품류에 대해서는 표에서 생략하였고, 2) 코미컬라이즈, 엔솔로지, 음악 관계, 미디어화에 대해서도 필요 최저한의 것으로 한정하였다고 밝혔다.
연표에 대해 미사키 나오토가 명명한 대로, 불완전한 부분이 있고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부분에 유의할 것. 본 위키에서는 내용을 좀 더 보강하고 타케보우키와 타입문의 2008년 이후 행적에 대해서 추가 기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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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箒 (The BAMBOO BROOM)
1. 개요
나스 키노코와 타케우치 타카시의 동인서클이자 서클 홈페이지 명칭.
2. 배경
1998년 히로시마에 소재하던 주식회사 컴파일이 화의에 의한 감축을 하게 된다. 때문에 컴파일에서 일하던 타케우치 타카시는 도쿄로 돌아와 새로운 회사에 취직한다. 타케우치는 새로 취직한 회사의 선배[1] 로부터 최근의 코믹 마켓의 문화[2] 를 배우는데, 마침 창작욕을 느끼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라 여기에 강한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친구였던 나스 키노코를 끌어들여 동인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다만 그 이전에 우선 웹사이트부터 시작해보자, 하여 5~6월 경에 시작한 것이 타케보우키다.[3]
타케보우키에 게재되는 콘텐츠가 그림뿐만이라면 약하다고 생각하여 타케우치는 가볍게 읽을거리를 써달라고 나스 키노코에게 부탁한다. 그래서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공의 경계. 공의 경계는 1년 정도 매월 연재해 보자 하여 시작되었다. 타케우치는 "매회 다른 단편이면 좋아"[4] 라고 말했지만 나스 키노코는 장기간 연재하게 되면 소재가 궁핍해질 것을 염려했다. 때문에 나스 키노코는 처음에 큰 스토리를 생각해두고, 매회 다른 에피소드로 큰 스토리 안에서 연결하고 나누고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단편으로써 그 자체로 완결되고, 단편들이 모여 큰 그림을 그려내는 구성이었던 것이다.
나스 키노코는 전부터 생각한 신본격과 전기의 융합을 실험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웹사이트라면 발행에 따른 비용이 들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누구도 손해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실험작도 허용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타케우치의 요청대로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집필에 임했으나 점차 집필에 몰두하게 되었고, 스스로의 창작 활동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 될 것이라 예감하게 된다. 타케우치는 웹사이트를 통해 나스 키노코의 작품을 발신하면 상당한 반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으나 당시 타케보우키는 인지도가 없다시피 했던 만큼 전달력이 약하였다. 다만 읽어주는 이들은 좋은 반응을 보였고, 공의 경계 제1장 연재 당시 우연히 이를 접한 OKSG는 타케보우키의 팬이 되어 다음해 결성되는 동인서클 타입문의 스태프로 합류하게 된다. 일부러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상경을 감행했던 것이다.
타케보우키는 타입문이 결성되기 전 약 1년여간 코미티아[5] 와 같은 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타케우치는 오리지널 만화를, 나스 키노코는 오리지널 소설을 발표하며 하마다 타카시(濱田 崇史)의 동인서클 코시카케 클럽(腰掛倶楽部)[6] 과 함께 움직였지만 도중부터는 나뉘어 따로따로 움직이게 된다. 타입문의 활동이 시작되며 '이쪽은 바빠서 게임 만들기에는 관여할 수 없다', '월희를 만들기 시작하면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되어 그러면 여기서 나뉘는 것이 좋겠다, 하고 각기 활동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타입문과 타케보우키를 병행하여 운영[7] 했지만 타입문이 기업화됨에 따라 비중은 급격히 타입문에 쏠려 타케보우키의 활동은 둔화된다.
3. 특징
3.1. 온라인
몇 차례 리뉴얼을 겪으며 현재 사이트에 남아있는 콘텐츠는 실질적으로 2002년 11월에 시작된 '타케보우키 일기(竹箒日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타케우치와 나스의 2인 일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케우치는 일기를 작성하지 않게 되었다. 타케보우키 일기 이전에는 98년 사이트가 처음 개설된 후부터 타케우치 1인이 작성했던 '잡 일기(雑日記)'가 존재했지만[8] , 월희가 히트한 후 드문드문해지더니 2001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따라서 타케보우키 일기는 일기 콘텐츠가 약 1년 가량의 공백을 거치고서 재등장한 것이다. 두 사람이 배턴 터치를 하듯이 한 사람만 일기를 적게 된 것은 팬들에겐 아쉬운 점이다.
참고로 타케보우키 일기나 공의 경계 소개나 링크는 타케보우키 대문을 통하지만 도메인은 타입문의 주소[9] 로 되어 있다. 최근 일이 아니라 01~02년도부터 그래온 것. 타입문의 모태가 된 동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간판만 남겨두고 관리가 필요한 부분은 타입문으로 통합 이관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이 대문은 이미지 배너 업데이트를 통한 활동 소식 고지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고지로는 봄과 달과 하늘과 및 공의 경계 전화집 + 미래복음 extra chorus 등이 있었다.
Fate/Grand Order 서비스 이후 드문드문 뒷설정이나 개발비화같은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3.2. 오프라인
4. TYPE-MOON 불완전 연표
TYPE-MOON 불완전 연표는 원래 다빈치 2007년 6월호의 나스 키노코 특집으로 필자인 오오치 요우코(おーちようこ)가 담당한 페이지에 동인지 생활 문화 종합 연구소의 미사키 나오토(三崎尚人)가 협력했을 때 만든 메모를 2008년 7월에 추가 · 정정하여 공개한 것이다.
미사키 나오토는 메모 작성 의도로, 타케우치 타카시 · 나스 키노코 두 사람의 동인 ~ 상업 활동을 조감할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1) 코믹 마켓의 기업 부스에 있어서의 판매 물품을 제외하여 상품류에 대해서는 표에서 생략하였고, 2) 코미컬라이즈, 엔솔로지, 음악 관계, 미디어화에 대해서도 필요 최저한의 것으로 한정하였다고 밝혔다.
연표에 대해 미사키 나오토가 명명한 대로, 불완전한 부분이 있고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부분에 유의할 것. 본 위키에서는 내용을 좀 더 보강하고 타케보우키와 타입문의 2008년 이후 행적에 대해서 추가 기입하고 있다.
5. 바깥 고리
[1] 선배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냥 동료였던 듯 하다.[2] 6~7년 전의 고교 시절 이미 참가 경험이 있었다.[3] 정확한 개설 시점을 명시한 인터뷰에서는 1997년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오기로 보인다.[4] 다른 인터뷰에선 짧은 이야기로, 읽기 쉬운 작품을 청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5] 1차창작만 취급하는 동인지 즉매회[6] 타케우치가 들어간 회사 선배의 서클로 추정[7] 당초에는 둘 모두 동인서클이었다. 전자는 외부 인력(프로그래밍:清兵衛・사운드:KATE・웹&사무:OKSG)이 기용되어 총5인으로 시작하여 규모를 키워갔고, 후자는 계속하여 그들 두 사람만이 멤버였다는 것이 차이점.[8] 나스 키노코는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부러 인터넷 환경과 거리를 두는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9] 공홈 도메인 http://typemoon.com이 아닌 무려 동인시절 도메인인 http://www.typemoon.org/다.[10] 훗날 카사이 키요시의 『철학자의 밀실』(92년 발표작)을 접하며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찾는다.[11] 편집자 스기노 요우스케(杉野庸介)와의 이때 인연으로 이치진샤에서 월희, Fate의 엔솔로지가 활발히 간행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