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청

 


1. 개요
2. 생애


1. 개요


여몽전쟁 시기 고려의 무장. 생몰년 미상. 함경남도 정주[1] 출신이다.

2. 생애


고종 45년(1258년) 몽골군이 대거 침입하자, 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장주(長州)·의주(宜州)·문주(文州) 등 15주의 사람들이 저도(猪島)로 들어가 지켰다. 동북면병마사 신집평(愼執平)은 저도에 설치된 성이 크지만 사람 수가 적어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고 판단하여 15주의 사람들을 죽도(竹島)로 옮기도록 했다. 그러나 죽도가 협소하고 험악하며 우물이 없어서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자, 신집평은 강제로 사람들을 몰아넣으니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들어간 사람은 열에 한두 명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축한 식량이 떨어지자, 신집평은 별초를 파견해 조정에 곡식을 요청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도 조운(漕運)을 재촉하니 점차 수비가 느슨해졌다.
이때 탁청은 조휘와 함께 등주, 문주의 여러 성 사람들과 논의해 몽골군을 끌어들이고 빈틈을 노려 신집평과 등주부사 박인기(朴仁起), 화주부사 김선보(金宣甫), 경별초(京別抄) 등을 죽이고 고성을 공격하여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탁청은 조휘와 함께 화주 이북의 영역을 몽골에 바쳤고, 몽골은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으로, 탁청을 천호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조휘의 후손들은 공민왕 대에 축출될 때까지 4대 99년간 쌍성총관부 총관을 맡았고, 탁청의 후손들 역시 대대로 천호를 세습했다.
[1] 현재의 정평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