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서보 가보르
[image]
1. 생애[4]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서보 가보르는 1926년 부다페스트를 연고로 하는 우이페슈트 FC에서 데뷔하였다. 서보는 팀의 리더로서 그리고 득점원으로서 우이페슈트에서 8시즌 동안 리그에서 160경기에 출전했고 100골을 득점했다.
서보는 1930년 리그에서 17골을 넣었고 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우이페슈트는 사상 첫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우승을 차지하였다. 위페슈트는 서보가 있던 1934년까지 5년간의 전성기를 누렸고 이 5년간 리그에서는 3차례의 우승과 2차례의 준우승, 컵 대회에서도 1차례의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당시 우이페슈트는 유럽에서도 상당한 전력을 갖추던 팀이었고 헝가리에서 라이벌 플래그를 세우던 페렌츠바로시 TC의 뒤를 이어 1929년 미트로파 컵에서 우승하여 이를 증명해냈다. 4강에서는 SK 라피트 빈을 상대로 단판 플레이오프까지 치르며 이겼고 결승에서는 SK 슬라비아 프라하를 합계 7대3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서보는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우루과이에서 월드컵이 열릴 때 우이페슈트는 제네바에서 열린 쿠프 드 나시옹에 참가했다. 결승 상대는 또 슬라비아 프라하. 여기에서 위페슈트는 슬라비아 프라하를 3대0으로 다시 꺾으며 복수의 기회를 허락지 않았다.
1934년, 서보는 우이페슈트를 떠나 같은 부다페스트를 연고로 하는 푀부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푀부스는 우이페슈트만큼 강팀은 아니었고 서보는 우승컵을 새로 들지 못했다. 리그 4위가 최고 성적이었고 1936년엔 미트로파 컵에도 출전했지만 8강에서 AC 스파르타 프라하에 발목을 잡혔다.
서보는 리그 통산 255경기에 출전, 131골을 넣었고 미트로파 컵에서는 총 14골을 넣어 통산 득점 12위에 올라있다.
1.1.2. 국가대표팀
서보는 1926년 6월에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첫 득점은 10개월 후인 유고슬라비아전에서 기록하였다.
하지만 리그에서의 성공과 다르게 서보는 국가대표팀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는데 코후트 빌모슈, 히에르서 페렌츠 등과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주전 경쟁이 매우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그 경쟁 가운데 193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서보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2경기 3골을 기록하여 헝가리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본선에서는 1라운드 이집트전에 출전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빠르고 득점력 있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페널티 킥도 잘 찼다고 한다.
3. 수상
3.1. 클럽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우승 3회: 1929–30, 1930–31, 1932-33(우이페슈트 FC)
- 미트로파 컵 우승 1회: 1929(우이페슈트 FC)
- 쿠프 드 나시옹 우승 1회: 1930(우이페슈트 FC)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3회: 1926-27, 1931–32, 1933–34(우이페슈트 FC)
- 마자르 쿠파 준우승 2회: 1926-27, 1932–33(우이페슈트 FC)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서양식 이름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