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목졸린 레드

 

1. 개요
2. 내용
3. 해석

※이 괴담은 Diamond Ove Blog님의 을 가져왔다. 하지만 현재 글을 볼 수 없다.

1. 개요


크리피파스타 위키에서는 댓글이 200개가 넘어가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정작 포켓몬 유저들에게는 포켓몬스터 블랙 버전이나 포켓몬스터 로스트실버에 인지도가 밀린다.

2. 내용


포켓몬 해킹롬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 저곳에 굉장히 많이 널려있다. 그 중 몇몇, 예를 들면 유령이 스타팅 포켓몬인 버전 같은 것들은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다. 몇몇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게임을 하고 나서 사람이 죽거나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말을 거는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들이다. 정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이런 류의 이야기를 적을 때는 좀 간결하고 깔끔할수록 좋다는 걸 모르는 건가? ..뭐, 이쯤 해두자.
나는 이베이같은 중고시장에 나와있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작위로 노숙자들이 준다고 하는 해킹롬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애석하게도 이런 기분나쁜 사람들과 직접 만날 기회를 누리진 못했고 쓰레기차가 이웃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쓰레기통에서 이 카트리지를 발견했다.
이 게임을 처음 발견했을 때 쓰레기 청소부에게 이걸 가져가도 되나고 물어봤는데, 그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어쨌든 버려질 것이었으니까. 물론 이웃에게도 이 게임을 정말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봤는데, 그들은 꼭 그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게임 커버의 리자몽을 본 이웃집 아들이 "포켓몬! 엄마 저거 갖고 싶어!" 하면서 잡아채려고 했지만 그의 엄마가 저건 내가 찾은 거라며 안 된다고 했다. 그 아인 게임보이조차 없었는데, 그냥 포켓몬이 좋았던 것 뿐이었던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난 카트리지의 스티커를 보며 집으로 향했다. 그냥 단순히 오래된 레드 버전으로 보였고, 리자몽의 목 주변 부근의 스티커가 살짝 찢어져 있었지만 그 정도는 오래된 게임에선 있을 법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 블루 버전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아주 작으나마 있을 터인 레드 버전의 차이점을 보고 싶었다. 타이틀 화면이 나타났을 때 난 꽤나 실망했다.
"포켓몬스터: Strangled Red."
젠장, 해킹판이었다. 해킹판도 물론 대부분 잘 만들어져있지만,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된다. 원판 게임들이 지금은 꽤나 가치있었고, 난 레드버전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지, 이런 쓰레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뭐, 공짜니까 한 번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이상했다. 목 졸리는 레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사람이 질식당하는 것에 대한 아주 끔찍하고 사실적인 묘사에서 조차 사람이 숨 막혀 죽어갈 땐 얼굴이 파랗게 질리지, 붉게 되진 않는다. 누가 알까, 이 해킹판이 원래 두 개가 하나로 세트였는데 우연히 내가 빨간 걸 가지게 된 걸지도.
그러나 이에 대해 계속 생각할수록 나는 점점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 느꼈던 실망감은 호기심으로 바뀌어, 제작자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졌고, 나는 내가 본 것을 전부 기록할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알아챈 이상한 점은 타이틀 화면에서 트레이너 옆에 있어야할 포켓몬이 파이리가 아니라 리자몽이었고, 또한 원래대로라면 그 포켓몬이 하나하나 돌면서 바뀌어야하는데 여기선 5분을 기다려도 그냥 리자몽인 채였던 것이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는데, 원래는 들렸어야 할 리자몽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험을 계속한다" 옵션이 있길래 난 한 번 이전에 플레이되어있던 게임을 보면 누구나 그럴 듯이 전 주인이 뭘 해놨을까 알고 싶었다.
"…안 돼…"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안 된다고? 뭐? 아무리 버튼을 눌러대도 모험을 계속하기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네 번째 시도에 아주 작아 들릴듯 말듯한 리자몽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깨를 다시 으쓱하며, 예전 파일을 본 후에 했을 것 처럼 그냥 새 게임 옵션을 선택했다. 오박사도, 시작 테마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채 한동안 화면이 검게 나가 있다가 마침내 화면이 다시 돌아왔다. 두 개의 침대, 두 개의 TV, 그리고 구석에 컴퓨터 하나가 있는 침실이었다. 내 트레이너 도트는 원래의 레드 버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직 이름을 묻지 않았기에 궁금해진 나는 얼른 메뉴창을 열어 트레이너의 이름이 "스티븐"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아니, 이건 내 진짜 이름도 뭣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인공지능을 가진 것도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귀신이 씌인 것도 아닐텐데. 이상하군, 돈은 원래 게임을 시작할 때 있는 만큼 있었고, 뱃지도 없었다. 허나 트레이너 자체는 레드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었다. 머리가 등 가운데쯤에 머무를 정도로 길었고, 레드의 평범한 미소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자신감에 찬, 허나 어딘가 기분 나쁘기도 한 썩소미소가 차지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도트가 레드보다 더 멋지다고 느꼈다.
다음으로 포켓몬을 체크했는데, "미키"라고 이름지어진 레벨 5의 파이리가 하나 있었다. 이름도 평범했고, 어쨌든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시작할 때 파이리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고, 할퀴기와 꼬리 흔들기같이 기본적인 것밖에 모르고 있었다. 꽤나 평범해 보이는 임이었다. 본 게임으로 돌아와서,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캐릭터가 뒤로 돌 때 스티븐의 긴 머리가 도트그림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챘다. 집은 그다지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더 둘러볼 생각에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또 다른 트레이너가 있었는데, 내가 내려오자마자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마이크 : 준비 됐어?
스티븐 : 그래.
난 이 "마이크"라는 녀석이 블루를 대신해서 나온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침실에 침대가 두 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둘은 단순히 라이벌인 게 아니라 형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둘은 서로 포켓몬 마스터가 되겠다느니, 포켓몬을 전부 잡겠다느니 하는 기본적인 포켓몬 이야기에 관해 말을 주고받은 후 파이리와 꼬부기 중 누가 더 좋냐는 것에 대해 살짝 말싸움을 했다. 그리고 이 말싸움은 당연하게도 연구소에서 블루와 하던 것과 같은 배틀로 이어졌다. 할퀴기, 몸통박치기, 할퀴기, 몸통박치기, 내가 선공이었으므로 이길 때까지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스티븐의 도트가 배틀에서 레드의 그것보다 얼마나 더 멋진지 눈여겨보았다. 레드와는 다른 포즈로 서있던 그의 머리카락이 꼭 바람에 날리는 듯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데 역시 멋져보였다.
승부가 끝난 후 내 "형"과 몇 마디 더 잡담을 한 뒤 태초마을 테마가 흘러나오는 집 밖으로 발을 옮겼다. 동쪽으로 가면서 나는 이 곳이 정말로 태초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집은 마을의 서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또한 원래의 태초마을에는 있었던 풀숲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느 정도 돌아다니다가, 레드의 집에 들어가보기로 결정했다. 그의 엄마가 집 안에 있었는데, 내가 말을 걸자 그녀가 곧 스티븐이 얼마나 잘생겼는지에 대해 칭찬하며 그녀의 아들이 내년에 트레이너가 되면 그를 꼭 롤모델로 삼았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여기서 나는 이 게임의 스토리가 오리지널 포켓몬 게임의 1년 전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드는 위층 그의 방에 있었는데, 슈퍼 패미컴을 플레이하며 "내 차례가 되면 나도 최고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난 점점 이 해킹롬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완전히 새로운 모험, 다른 캐릭터, 게다가 스티븐은 그의 마을에서 꽤나 유명한 듯했달까, 평판이라던지 성격이 단순한 말없는 주인공과는 아주 달라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와 얘기할 때 단순히 조작법에 관련된 쓰잘데기없는 것들을 내뱉는 게 아니라 정말 사람에게 얘기하듯 대화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블루의 누나마저 원판과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는데, 대화가 키스와 그녀 머리에 떠오른 하트로 끝나는 걸로 보아 그 둘은 사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박사는 내 모험에 도움이 될 도감을 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다른 포켓몬 게임들과는 다르게 도감을 채워달라고 주는 것이 아닌 단순히 나를 돕기 위한 친절심의 선물로서 준 것이었다. 난 시간이 갈수록 이 게임이 더더욱 좋아졌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내가 생각하던 보다 사실적인 이야기였다. 난 누구나 될 수 있는 단순히 찍어낸 듯한, 조금 바뀌어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그런 별 특징 없는 주인공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누군가였다.
실제 게임 플레이는 바뀌지 않았지만 스토리는 달랐다. 나는 우선 북쪽으로 향하여 타운과 타운을 옮겨다니며 뱃지를 모으고 관장들의 칭찬을 받았다. 몇몇 NPC들이 스티븐을 안다는 듯 얘기하는 걸로 보아 그는 점점 유명세를 타는 듯했다.
모든 배틀에서 난 항상 미키를 썼고, 그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웅이도 쉽게 이기고, 이슬이마저 문제없었다. 그에게 효과가 좋은 기술들에 대해 다른 포켓몬들만큼 심하게 데미지를 받지 않았고, 보통의 파이리들보다 더 강했다. 정말로 강했다! 심지어 레벨이 아직 25밖에 되지 않았을 때 리자몽이 되었는데, 뭐, 전혀 나쁘지 않다고 해야겠지.
그러나 내가 보라타운에 들어설 때에 점점 무언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안다. 보라타운은 모든 괴담들의 배후 핵심이지. 하지만 이 곳이 유일하게 눈에 확 띄도록 달라져있었다. 이 게임의 배경이 레드의 시기보다 1년 전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도 로켓단이 아직 이 곳을 점령하려 오지 않은 것을 보고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다. 고오스를 잡으려고 포켓몬 타워에 들어갔을 때, 그 때 다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
스티븐 : 난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스티븐은 아무리 시도를 해도 포켓몬 타워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군. 아니, 그러니까 와나 진짜 관동 지방에 쪼끄만 어린애 NPC밖에 없는 작은 집들처럼 있을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스티븐이 들어가지 않으려는 곳이 여긴 건데? 어깨를 들썩이며, 미키가 어떤 승부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걸 생각해내곤 고오스가 그다지 필요없겠다 싶어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제 보라타운은 단순히 포켓몬센터가 있는 지나가는 마을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게임은 다시 그곳에서부터 평범하게 진행되어 나머지 체육관 관장들을 무찌른 후 드디어 사천왕에 다다라 승리를 손에 넣었다. 블루와 마찬가지로 내 "형"이 나보다 먼저 그 곳에 있었고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겨루는 배틀은 나의 미키로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승부가 끝난 뒤에도 레드와 블루의 승부 후에 만연하던 그런 긴장감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형과 동생이 성장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며 악수를 했다. 화면이 하얗게 나가기 직전까지도 명예의 전당이나 엔딩 크레딧따윈 나오지 않았다.
화면이 다시 돌아왔을 때 두 형제는 집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티븐 : 싫은데…
마이크 : 에이, 도감을 완성하기 위해서 잠깐만 빌려달라는 것 뿐이야. 미키가 잠깐동안이라도 나를 주인이라고 인정해야 도감에 포켓몬이 채워지는 거니까.
스티븐 : 하지만 미키는 내…
마이크 : 꼭 돌려준다고 약속할게. 그러니까 응?
→ 예
아니오
이 때의 나는 뭐가 갑자기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니오를 선택했다.
마이크 : 부탁해 제발, 응?
아니오
마이크 : 부탁해 제발, 응?
예를 누를 때까지 단순히 이 대화가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기 위해 예를 선택했다.
마이크 : 좋아, 아주 잠깐이면 우리 둘 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거야!
스티븐 : ……
포켓몬 교환을 할 때 나오는 애니매이션이 나오고 거기서 난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교환하는 트레이너가 나 혼자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뭐, 상관 없나, 원래 이렇게 되는 걸테니까. 미키가 먼저 트레이딩 튜브
안으로 들어가 마이크 쪽으로 가는 것을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짤깍!
조용한 침실에서 크게 올려놓았던 볼륨때문에 갑작스러운 소리에 당황한 나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화면을 보니 게임이 멈춘 것 같았다. 미키는 여전히 교환되는 중에 있었지만 게임은 그 상태로 멈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난 세이브 파일이 걱정되어 한숨을 쉬며 게임을 껐다 켰다. 게임을 다시 켰을 때 난 한동안 타이틀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트레이너 옆에 있던 리자몽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작버튼을 누르니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선택지는 온데간데 없고 모험을 계속한다 밖에 있지 않았다. 이건 매우...이상했다. 모험을 계속한다 옵션을 선택하니 나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도 없이 바로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뒤 화면에 떠오른 것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일 년 후
보라타운의 테마곡이 먼저 흘러나오고 화면이 암전에서 점점 밝아졌다. 스티븐은 포켓몬 타운에 있었는데, 원래 이 곳은 타워 혼자만의 테마곡이 따로 있었기에 이 음악이 더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묘비 앞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며 A버튼을 누르자,
스티븐 : …
여전히 혼란스러운 채로 돌아다니다가 비로소 내가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메뉴를 열어 포켓몬들을 체크했다. 미키가 없었다. 아니, 미키뿐만 아니라 내가 여태껏 가지고 있던 포켓몬 전부가. 어떤 포켓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포켓몬 도감 메뉴는 메뉴에서 아예 사라져 있었으며 그의 가방은 텅 비어있었다. 정말로 걱정스러워진 나는 그의 트레이너 카드를 열어보았다.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었고, 뱃지도 없었다. 플레이 시간이 8795 시간이었는데 지금까지 30시간밖에 플레이하지 않은 나였기에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의 도트, 잘 생기고 자신감 넘쳐보이던 젊은 트레이너가…아니었다. 그의 두 눈은 텅 비어있었고 얼굴은 살짝 슬퍼보였으며 그의 특유의 미소마저 사라져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잘 정돈되어있던 그의 긴 머리마저 지금은 빗질이 제대로 안 되어 이리저리 헝크러져있었다. 그를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었던 나는 메뉴를 닫고 타워에서 나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하지만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묘비에서 멀어질 때마다 화면이 깜빡거렸다. 그래, 마치 포켓몬이 독에 걸렸을 때처럼 말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트레이너 카드를 다시 보니 그의 그림은 상태가 더 나빠져 있었다.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그는 머리를 점점 더 떨구어갔으며 어깨도 축 처져가 점점 구부정한 자세가 되어갔다. 내가 타워를 나왔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으며 손은 얼굴을 감싸쥔 채 머리카락이 그의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이미 추측하고 있었던 나는 이로서 확신을 얻었다.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는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게임에서 왜 레드의 라이벌 이외에 다른 챔피언은 보이지 않는지 항상 궁금해 해왔던 나였다. 어째서 꼭 주인공이 그의 라이벌을 이겨야 하는 것인지. 그가 리그에 들어섰을 때 어째서 블루 이외에 다른 챔피언은 없었던 것인지. 그래. 이제야 알았다. 답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전의 챔피언은 포기한 것이다.
그의 소중한 미키는 확실히 죽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그의 한 부분도 같이 죽어 버렸다. 그의 도감, 다른 포켓몬, 그의 뱃지, 그의 명성, 그 모든 것을 그는 버렸다. 그 한 해 동안, 내가 건너뛰어버린 한 해 동안. 플레이 시간에 있었던 8795시간은 바로 1년의 시간에 내가 지금까지 플레이했던 실제 시간을 합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보통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외에 또 따로 할 게 있다는 건가? 도감도 없고, 포켓몬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다. 대체 뭘 해야 하는 거지? 마을에 있던 사람들 전부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다들 비슷비슷한 것들만 말해댔다.
"괜찮아요?"
"아직도 기운 내지 못하고 있네…"
"괜찮아질 거야..."
"제발…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스티븐은 그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들도 똑같은 것을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너무나도 이상했기에 나는 여기서 게임을 그냥 포기해버릴 수가 없었다. 호기심으로 풀숲에 들어가 돌아다니던 끝에 꼬렛과의 배틀이 시작되었다. 내 쪽에선 아무 포켓몬도 나오지 않고 스티븐의 그림이 있는 채였다. 여기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야생의 꼬렛은 스티븐을 내버려 두었다.
배틀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끝나버렸다. 흥미로웠다. 내가 만나는 모든 포켓몬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야생의 구구가 스티븐을 무시했다.
야생의 포니타는 스티븐을 본체만체 가버렸다.
음악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어딜 가던 간에 보라타운의 노래가, 가끔씩은 느려진 템포로 나를 따라다녔다. 모든 곳을,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며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해야 한다는 수작인지 알아내려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은 이 우울한 모든 것과 섞여 게임의 분위기를 더더욱 기운 빠지게 하고 불안한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끝내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도 내게 힘내라는 그런 단순한 애도의 표현밖에 하지 않았고 레모네이드나 커피 따위에 아이템만을 주려는 그들에게 점점 나는 화가 나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스티븐은 사람들이 아이템을 주려고 할 때마다,
스티븐 : …됐어…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태초마을!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내가 정말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곳으로 돌아가는 길은 굉장히 오래걸렸다. 하늘을 날 포켓몬도, 타고 갈 자전거도 없었고 스티븐이 걷는 속도는 보통의 걸음걸이의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아보였다. 태초마을에 다다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오박사였다.
"너에게 일어났던 일…네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그 다음으로 블루의 누나를 찾아갔다.
"제발…이제 더 이상 집을 떠나지 말아줘…"
레드의 엄마는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달리 갈 만한 곳이 더 이상 없었기에 서쪽으로 걸어가 맨 처음 게임을 시작했던, 태초마을을 떠난 뒤에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나의 집을 발견했다. 안에는 마이크가 있었지만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만큼이나 쓸데 없었다.
마이크 : 정말 미안해…
나는 이게 정말 끝인 건지 한동안 생각했다. 단순히 관동지방을 슬픔에 잠겨 돌아다니고, 추억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람들의 걱정어린 소리를 듣는 것으로, 여기서 끝인 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침실의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스티븐 : 좀 자야겠어…
화면이 잠시 동안 까매졌다가 다시 천천히 돌아왔다. 화면에 검은색이 조금 더해져 있었고, 마이크의 도트가 다른 침대에 있었다. 나는 이게 지금이 한밤중이란 뜻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븐 : 그걸 해야겠어…
뭘 하는데? 또 다시 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방에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해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또 다른 대화창이 떠올랐다.
스티븐 : "그건" 그녀를 돌아오게 할 수 있어… "그건" 뭐든지 할 수 있어…
시발 "그게" 대체 뭔데? 응?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것이 뭔지 난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잠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을 위에 나 있는 길로 태초마을을 떠나려고 했는데,
스티븐 : 이쪽이 아니야.
이 쪽 길로는 스티븐이 이 이상 가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집에 들어가보려고 했다.
스티븐 : 죽여버릴거야…
순간 이 게임이 원래 포켓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잊은 채였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말에 정신을 갑자기 차린 나는 계속 주위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갈 만한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의도하지 않게 바다에 발을 내딛었을 때 스티븐은 그의 상체만 보이는 채로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래, 블루시티 체육관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트레이너들처럼. 그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 따위 난 몰랐었다.
스티븐 : 잃어버린 것… 결번…
결번? 나는 멈칫했다. 아냐, 그걸 뜻할 리가… 그러고보면 이 해킹판에서 미싱노 글릿치를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졌다. 그가 방금 말한 "결번"이라는 게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나는 홍련섬까지 "헤엄쳐서" 갔다. 그리고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어느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있었다. 침묵. 보라시티의 테마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포켓몬도 나타나지 않았다. 홍련섬에 다다라 동쪽 해안가에 이제 막 올라서려던 참이었는데, 하. 이것봐라.
야생의 미싱노가 나타났다!
스티븐 : 내 거야…
야생의 미싱노를 잡았다!
시발 이게 뭐야? 스티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단지 저 기분 나쁜 깨진 데이타에게 자신의 것이 되라고, 그래, 단순히 명령만 했을 뿐인데 순순히 말을 듣다니. 기분이 더욱더 이상해진 난 포켓몬 창을 열어 확인했지만 미싱노는 거기에 없었고 그 대신 아이템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혼란스러움이 가중된 채로 혹시하는 마음에 트레이너 카드를 열어봤다. 스티븐은 등을 돌린 채 그의 긴 머리가 그의 등 뒤로 늘어뜨러져 있었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가 오늘 밤 잠에서 깨어날 때 뭐라고 했는지 떠올린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 깨달았다.
육지로 헤엄쳐 가 북동쪽을 향했다. 따로 갈 데가 어딨나, 물론 보라시티지. 가는 도중에 발견한 트레이너들은 이상하게도 이 시간에도 밖에 나와있었는데, 스티븐이 지나갈 때마다 모두 등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마저 그랬는데, 내가 도로 사이에 있는 건물에서 경비원에게 말을 걸려고 하자,
"그냥 가…"
모두 다 똑같은 말 뿐이었지만, 그 중 하나의 말이 걸렸다.
"죽은 자는 그냥 두는 게 좋아."
내 두 손은 땀으로 가득 적셔져 있었다. 스티븐은 불가능 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손가락질할 짓을.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이야, 라고 내 자신을 안심시키려 하며 어서 끝내버리려고 했다.
매우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포켓몬 타워에 다다랐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묘비로 향했다. 스티븐이 예전에 묘비 앞에 멍하니 서있던 그림을 떠올려 나는 어떤 것이었는지 찾아내었다. 그리고 A버튼으로 조사를 해보았다.
스티븐 : 미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며 메뉴를 열어 가방에서 미싱노를 선택했다.
오박사 : 스티븐, 안 돼!
이 때 나는 오박사가 중요한 물건을 쓸 수 없을 때, 예를 들면 건물 안에서 자전거를 사용하려고 할 때에 신기하게도 나에게 바로 알려주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전혀 달랐고, 더 나빴던 것은 스티븐이 그것에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스티븐 : 나를 속이고 망친 세계에서 나는 왜 똑같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스티븐은 "그것"을 사용했다!
………………………
………………………
………………………
………………………
스티븐은 M@#$를 얻었다!
뭐?? 내가 뭘 얻었다고? 나는 여기서 그게 무엇인지 가방을 열어 확인할 수도 없었다. 게임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티븐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타워를 나서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타워를 나섰을 때 보라시티의 테마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어쨌든 원하지 않았던 그의 미칠듯이 느린 여행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바뀌는 곳에 다다를 때마다 음악은 느려지고 점점 더 기분 나쁜 소리로 변해 가, 블루시티에 다다랐을 즈음엔 악마의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가 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하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해답은 점점 더 확실해져갔다. 그는 태초마을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음악은 거의 멈춰서, 한 번에 한 음씩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내가 생각한 바로 그 곳, 그의 집의 위층 침실로 갔다. 이 때 음악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스티븐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그의 형의 침대에 다다라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이 때 난 게임이 멈춘 줄 알았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여기서 내가 어떻게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메뉴를 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말로 두려웠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던 나는 그의 트레이너 카드를 선택했다.
카드를 열 때 왜곡된 포켓몬의 소리같은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스티븐은 구부정한 자세로 다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앞머리가 그의 얼굴을 가릴 듯 말듯 하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헝크러진 채로였다. 앞머리 사이엔 얼굴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있었다. 단순히 까만 바탕에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빨간색의 두 눈, 그리고 암흑과 대조적으로 하얀색의 씨익 웃는 입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image]
그의 이름은 이제 S!3v3n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모습에 두 눈을 차마 뗄 수가 없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야가 흐려지고, 얼굴이 눈물에 젖고 있었다. 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시작부터 이 녀석과 함께했으며, 내가 이 녀석을 최고의 자리에 앉혀놓았다. 그리고... 그리고 비극 이후의 그의 추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이런 끔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가 미쳐버리는 것을 봐 버렸다.
울음을 그치고 눈을 비비면서 트레이너 카드 메뉴에서 나와 게임을 저장하려고 했다. 게임을 끄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이 나를 가로막았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저장될 수 없습니다."
시작 메뉴는 어떤 짓을 해도 닫히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달리 선택이 없었으므로 가방을 확인해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포켓몬란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 하나가 보였다. 나를 반겨준 도트 하나. HP가 0이었고, 상태는 "죽음"인 M@#$였다. 이걸 선택하니 네 가지 옵션이 떴다.
→포켓몬 상태
"그녀야…"
→자리 바꾸기
"절대로 안 돼."
→닫기
"…안 돼…"
→ 목을 조른다
손가락이 덜덜 떨려오는 채로 "목을 조른다"를 선택했다. 메뉴가 닫히고, 방에 우두커니 서 있던 스티븐이 다시 보였다.
S!3v3n : 잘 가…
삑!
게임이 저절로 꺼졌다. 난 무섭다기보다는 너무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게임을 다시 켜니 타이틀 화면에 뜬 것은 광기어린 S!3v3n과 끔찍하게 일그러진 모습의 리자몽이었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모험을 계속한다를 선택했다.
태초마을의 전체 모습이 보였다. 마을 서쪽의 풀 숲으로 주위가 뒤덮인 스티븐의 집이 보였고, 마을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그 곳으로 가는 길이 돌로 인해 막혀 있었다. 화면은 그 상태로 정지한 채였다. 음악도 미동도 전혀 없었다. 잠시 후 화면이 하얗게 변하며 타이틀 화면으로 돌아갔다.
내가 맨 처음 게임을 켰을 때의 그 타이틀 화면이었다. 트레이너와 리자몽. 모험을 계속한다를 선택해 봤다.
"…안 돼…"
칩을 빼고 다시 꽂고 전원을 켰을 때에는 주인공의 리자몽. 미키가 옆에 서있었다..
스티븐이 처음으로 포켓몬 마스터가 된 것은 이전의 포켓몬 마스터들이 포켓몬을 잃은 좌절과 슬픔, 절망으로 자살하고 만 것이다.

3. 해석


플레이어 이름은 스티브, 스타팅 리자몽 이름은 미키, 동생 이름은 마이크다. 스티브는 포켓몬 리그를 돌파했고, 마이크의 부탁으로 미키를 빌려줬지만 그는 죽고 스티브는 미쳐버린다. 결국 슬픔을 이기지 못한 스티브는 미싱노가 가진 버그의 힘(?)으로 미키를 부활시키려 했지만 부활은 불완전했고, 결국 스티브는 미키의 목을 졸라 죽이고 자살한다. 레드, 그린 이전의 관동지방 챔피언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착안한 스토리이다. 위에서 소개한 두 네임드 괴담 못지 않게 매우 소름돋고 충격적인 스토리가 특징이다. 어떻게 보면 포켓몬 괴담 중에서도 탑급에 드는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