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매클린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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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별명은 'The Boy(꼬마)'. 그는 토니 아담스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2. 일생
2.1. 데뷔 이전
1939년 12월 28일에 글래스고의 고발스(Gorbals)에서 막노동일을 하는 아버지 아치 매클린톡과 청소부인 어머니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살 때 쇼필드 FC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축구와 미장이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2.2. 레스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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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17세의 나이로 레스터 시티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 1958년에 맷 길스 감독의 지휘 아래 실력이 올라 1961년과 1963년에 FA컵 결승전에 두 번 진출했으나 토트넘 핫스퍼와 맨유에게 각각 패배의 쓴맛을 보고 말았다. 그나마 1964년 풋볼 리그 컵 우승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2.3. 아스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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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8만 파운드라는 기록적인 이적료로 아스날에 입단하여 1960년대 말부터 그가 합류한 거너스는 포텐이 오르기 시작했다. 1968년과 1969년 리그 컵 결승전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와 스윈던 타운(당시 3부 리그 팀)에게 각각 패배한 뒤 1970년 인터-시티 페어스컵에 진출하여 결승에서 RSC 안데를레흐트에게 1차전에서 3-1로 패배했는데, 2차전에서 가망이 없었던 상황에서도 그는 팀을 독려하여 우승까지 이끌어냈고, 마침내 1971년에는 리그-FA컵 더블까지 기록하여 기쁨을 이어나갔다.
특히 1970/71 시즌에서 매클린톡이 센터백을 맡은 시기의 아스날은 47경기 중에 29골만을 허용했고, 리그 우승을 하려면 스퍼스를 꺾어야 했는데, 레이 케네디의 헤딩골+밥 윌슨의 선방으로 이겨 1위 경쟁을 다투던 리즈 유나이티드를 꺾어 1위를 지켜내게 되었다. 그 해의 FA컵 결승전에서는 연장전에서 리버풀 FC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매클린톡은 선수들을 독려하여 포기하지 않고 거짓말같이 2골을 더 넣어서 더블을 성사시켰다. 이 공로로 그는 잉글랜드축구기자협회(FWA) 선정 올해의 선수에 뽑혔다.
2.4.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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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PR 시절
거너스에서 영광의 시절을 보냈던 매클린톡은 1974년에 QPR로 이적해 1976년에 팀을 리그 준우승까지 끌어올렸고, 1977년에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친정팀인 레스터 시티 감독(1977~1978)과 브렌트포드 감독(1984~1987)을 거쳐 현재 축구해설가로 활동중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