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노스
Πλωτῖνος
1. 개요
'''Plotinus''' (204/205 ~ 270)는 라틴어와 영어 표기다. 본래 그리스어의 음역은 "플로티노스"다. 그의 작품(엔네아데스)이 모두 그리스어로 전해져 오기 때문에 비록 중세 초기에 활동했을지라도, 고대후기 그리스철학자로 분류한다. 참고로 독일어로는 Plotin으로 쓴다.
3세기 로마 제국의 철학자로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학파로 이어진다. 플로티노스의 (수)제자였던 Prophyrios의 제자 Ἰάμβλιχος를 위시하여 아테네에서 학파를 구성하여 신플라톤주의 사상체계를 완성했다고 평가하는 Proklos에 이르기까지 신플라톤주의 학파는 가깝게는 그리스도교의 교부 Augustinus와 교회 학자들은 물론 이슬람 무타질라 학파에, 특히 아비첸나 등 이베리아 반도로 영향을 주었고, 독일 및 영국 등 유럽 전역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2. 생애
로마 제국의 이집트 속주(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는데, 28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당대에 알려졌던 암모니우스 삭카스(Ἀμμώνιος Σακκᾶς) 밑에서 11년 간 수학했다. 암모니우스 삭카스는 플라톤의 철학을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직접 남긴 저술이 없어 플로티노스가 그에게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로부터 플로티노스는 플라톤 사상에 매력을 크게 느꼈다고 볼 수 있다. 후에 고르디아스(3세) 로마황제의 인도원정에 동행했다가 황제의 암살로 겨우 몸을 피해 다시 로마에 와서 가르쳤는데, 그때 나이가 40세로 추정한다. 거기서 그에게서 가르침을 듣고자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플로티노스가 플라톤의 사상을 당시 재해석하고 집대성하는 데에 힘써왔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충돌하거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부분들과 조화를 도모해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남긴 작품(54권의 논문)의 내용에 근거한다. 물론 그의 작품을 54권으로 분류한 것도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에 의한 것이다. 이 제자는 6년간 스승을 직접 모셨고, 뒤에 몸이 좋지 않아 휴양차 스승을 떠남으로써 스승의 죽음을 목격하진 못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를 신뢰했으며, 그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맡겼다. 포르피리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형이상학, 자연학 등)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라 그의 작품으로 중세에 교과서처럼 사용된 '형이상학 입문서(범주론의 주요개념: 류, 종, 종차, 고유성 및 우연성 개념과 서로의 관계에 관하여 설명한 책)'의 성격을 띤 <이사고게>를 남겼다. 아무튼 그를 통해 새롭게 편집된 플로티노스의 작품들 전체가 오늘날 <엔네아데스>란 이름으로 전해져 온다. 전체 6집으로 전해져오는데, 각 집마다 9권의 논문들이 실려 있다. 각 집마다 유사한 성격의 논문들을 모아놓은 셈이다. 다소 인위적으로 9권의 분량을 맞춘 듯한 인상이 들지만, 거의 모두 플로티노스의 사상이 깃든 작품들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승의 작품을 고스란히 전하려는 포르피리오스의 정성이 남달랐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자의 수고와 정성으로 플로티노스의 특이한 사상은 '신플라톤주의'라는 이름의 사조를 낳아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연히 그는 신플라톤주의 사조를 계획하지 않았다. 이 사조의 이름은 18세기 독일에서 정신사를 통찰한 이들에 의해서 붙여졌다. 그럼에도 이 사조의 특징은 뚜렷하다.
3. 사상
플로티노스의 철학은 오늘날 형이상학에 가깝다(좀더 바르게 말하자면, 만물의 원천을 살피는 점에선 '형이상학적'이지만, 존재의 목적 및 만물의 목표[행복]를 신중하게 따지는 점에선 '윤리적, 곧 매우 실천적'이다). 흔히 "헤놀로지"(Henology)라고도 일컫는다. 헨(ἕν)은 "하나"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철학은 이 "헨"(하나)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그의 철학의 시작(원천)이자 끝(목표)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하나>에서 시작되었으니, 정작 되돌아가야 할 곳(?) 또한 바로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모든 (정신적인) 통찰 및 이해는 (실천적인)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렇지 못한 통찰 및 학문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그는 어떻게 저 <하나>에게 되돌아갈 수 있을까? 고심했으며, 그렇게 <하나>와 일치하는 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의 완성이라고 생각한 철학자다.
플로티노스는 고고한(초월적인) <하나>가 이 세상의 비루한 것(존재)들과 뒤섞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하나>는 변함없이 완전무결한 것이어서 아쉬운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버젓이 경험되는 이 세상의 만물들과 <하나> 사이를 잇는(중재하는) 것들을 고려했으니, 그것이 <정신>과 <영혼>이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고대그리스철학 안에서 활용되고 이해되어온 개념들이다. 특히나 이 개념들은 그가 흠모해마지 않던 플라톤에게서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렇게 플로티노스에게는 세 가지 주요 개념, 곧 "하나"(the One), "정신"(the Spirit or Divine Mind or Nous), 그리고 "영혼"(the Soul)이 등장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를 연상시키지만, 기독교의 성부(the Father), 성자(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은 모두 신적인 동일성(divinitas)을 갖는 반면, "하나", "정신", "영혼" 사이에는 위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절대적인 것이고, "정신"은 그 아래에 놓여있다(왜냐하면 <정신>은 항상 사유주체와 사유대상으로 구분되는 점에서 절대적인 하나-됨을 누릴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신>이 누리는 하나-됨(통일성)은 "영혼"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왜냐하면 <영혼>은 마치 정신세계와 감각세계라는 두 세계에 양쪽 다리를 각각 담근 모습을 취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플로티노스는 그래서 <영혼>을 가리켜 "암피비오스"[두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라고 부른다). 그렇듯 <정신>은 <영혼>보다 훨씬 더 하나-된 모습을 취하지만, 앞선 <하나>보다는 못하다는 점에서 이 세 개념이 위계를 이룬다. 한 마디로 "하나" 혹은 "하나-됨"(Unity) 개념이 핵심개념인 셈이다. 플로티노스는 그와 같이 '하나'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였으니, 오늘날 다채롭게 분화되고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흐름과는 분명 다른 길을 걸었던 인물인 셈이다. 물론 플로티노스는 무작정 '다양성 및 다채로움'을 평가절하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가치는 <하나>로부터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행복은 각자의 <영혼>에게 달려있다. 플라톤이 <영혼>의 상기(기억)를 통해 본향인 '선의 이데아'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플로티노스는 그와 같이 <영혼>의 정화를 통해 <정신>을 회복하고, 그런 순수 <정신> 속에서 마침내 <하나>와 일치하는 길을 소개한다. <하나>와 하나되는 길! 그것이 플로티노스가 욕심내어 가르치고자 하는 바였던 셈이다.
'''"하나"'''플로티노스에 따르면 "하나"는 존재(Being)도 아니고 비존재(not Being)도 아니다. "하나"는 존재(Being)와 비존재(not Being)를 넘어서는(transcend) 무엇이기 때문에 정의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정신"'''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하나"가 발산하는 것이 "정신"이라고 한다. 플로티노스는 "하나"가 자기 자신을 볼 때 이 "정신"을 통해 본다고 한다.
잘 알려진 비유에 따르면 이렇다: "하나"를 태양이라고 할 때 "정신"은 빛이다.
플라톤이 주창한 이데아가 플로티노스에서 "정신"의 한 축을 구성한다.
존재(Being)도 아니고 비존재(not Being)도 아닌 "하나"가 어떻게 존재(Being)인 "정신"을 발산시킬 수 있냐고 하는 질문에 플로티노스는 이렇게 답한 것 같다: 태양은 빛이 아니다. 그럼에도 빛을 발산하면서 태양임을 유지한다.
이데아는 여러 가지인데 어떻게 그 여러 가지가 "하나"에서 나올 수 있나라는 질문에 플로티노스는 이렇게 답한 것 같다: 무지개를 이루는 빛이 "하나"라면 다 수의 이데아는 여러 개의 색이다.
'''"영혼"'''
플로티노스가 설명하길 "정신"이 "영혼"을 만들어내는데 그 "영혼"이 우리 인간의 영혼들과 물질(matter)들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고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혼"이 만든 세상이다(그에게는 우리에게는 생소할 듯한 개념으로서 <세계영혼>이 존재한다. 마치 플라톤의 데미우루고스[창조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은 "<세계영혼>의 누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정신"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방법은 이렇다: 육체, 우리의 영혼 중 육체를 만들어낸(mould) 부분, 그리고 욕구와 충동을 다 떨쳐내고 나면 "정신"의 이미지가 남는데 그걸 탐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