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질라 학파

 

1. 개요
2. 유래
3. 주장
4. 쉬아파로의 흡수
5. 몰락


1. 개요


المعتزلة‎ (알 무타질라)
영어 Muʿtazila
중세 이슬람의 여러 학파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통보다는 이성을 중시 여겼고 이성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지지자로는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과 9세기 아랍의 대학자인 알 자히즈 등이 있다. 이슬람 황금기 시대 (9 ~ 10세기)의 자유로운 분위기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비록 848년 압바스 조에게 버려졌지만 북아프리카의 아글라브 왕조에서는 909년 그가 파티마 왕조에게 멸망하기 전까지는 주류 학파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 인에게 정치 권력을 잃은 아랍인들의 종교적 보수화, 십자군기 이슬람 원리주의의 득세 등으로 인해 이슬람권에서 이단시되어 사라졌다. 다만 이성을 중시하는 면모는 아슈아리 등 중도 절충적인 학파에 의해 일정 계승되었고, 쉬아 울라마 중에서는 자이디 (다섯이맘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1]

2. 유래


우마이야 왕조 대의 학자인 하산 알 바스리 (642 ~ 728년)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죽음만이 확실하기에 사후 세계 를 위해 선을 행하고 신을 경외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의 시대로부터 800여년이 흐른 16세기 서유럽의 신학자 장 칼뱅이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한 것과 대조되는 발언이었다.
알 바스리는 이슬람의 적은 이교도가 아닌 위선자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마이야 조의 칼리파 압둘 말리크에게 비판적인 논조의 편지를 부치기도 하였다. 바스리의 제자 중 와실 이븐 이타 (700 ~ 748년)라는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쿠란 주해를 비롯한 여러 저작을 남기고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중세의 무타질라 학파를 확립한다.
무타질라 학파는 원자론을 심도 있게 공부했는데,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 대신에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원자론을 받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중앙아시아 대승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이 원자론이었다. 7세기 브라흐마 굽타가 쓴 천문연구서 "브라흐마스푸타-싯단타(Brahmasphuta-Siddhanta)"가 무함마드 빈 이브라힘 알 파자리[2]에 의해 신드힌드(Sindhind)라는 책으로 편역되면서 이슬람 천문학과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3. 주장


대체적으로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3]와 유사하다. 플로티노스는 우주 만물이 단일 유기체의 여러 부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신비로운 존재가 되는데, 바로 그 존재에서 만물이 발산해 나왔으며 결국에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무슬림 철학자들은 신플라톤주의의 단일 존재 개념이 신의 유일성 타우히드 개념과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이슬람의 계시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시도하였다. 따라서 무타질라 학파는 고대 그리스 철학 및 가톨릭 교리, 우파니샤드 철학과도 흡사한 부분이 좀 있다.
알라와 인간 간의 유사성은 없으며 알라가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데 반해 인간은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 후 그에 책임을 져야한다. 따라서 천국에 가기 위해선 믿음과 함께 선행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슬림이 큰 죄를 지으면 그/그녀는 진정한 신앙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신자로 취급할 수는 없으며 그 중간에 위치한다.

4. 쉬아파로의 흡수


서기 995년 호라산 서부 투스에서 태어난 아부 자으파르 알 투시가 쉬아파 부와이 왕조에 봉사하면서 무타질라파 철학과 쉬아파 교리에 입각하여 하디스 편집본을 만들고 꾸란 주해서 타프시르를 편찬한다. 아부 자으파르가 쓴 꾸란 해설서는 아랍어 문장이 매우 유려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아부 자으파르는 아랍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었다. 그의 꾸란 해설서 앗 타비얀 피 탑시룰 꾸란은 당시 절정에 달했던 고전 아랍어 문학의 걸작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사파비 왕조 출현 이후 순니와 쉬아 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이후 현재는 아부 자으파르의 꾸란 해설서를 언급하는 것이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5. 몰락


무타질라 학파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을 그리스어에서 아람어 (시리아어)로 번역하고 다시 아람어에서 아랍어로 번역해야 하는 고비용의 투자를 통해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타질라 학파를 후원하던 아바스 왕조 역시 우마이야 왕조와 다를 바 없는 타락한 세속 왕조라는 인식이 생기며 무슬림 대중은 무타질라 학파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무타질라 학파에 대한 지원이 급감한 상황에서 알 가잘리와 이븐 타이미야의 공격을 받으면서 순니 이슬람 세계에서 무타질라 학파의 영향력은 사멸한다. 이븐 루슈드가 남긴 마드하브 분류체계에 관한 책 외에 무타질라 학파의 책 대부분은 순니 이슬람계에서 퇴출되었다. 다만 아쉬아리 학파에 영향을 주어 수니파가 이성을 고려할 여지는 남겨두게 되었다.

[1] 애초에 무타질라 파의 학자가 자이디 이맘들 중 한명의 스승이었을 정도[2] Muhammad ibn Ibrahim al-Fazari, 서기 806년 사망[3] 서기 3~4세기 로마 제국에서 유행했던 사변 철학 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