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하르멜

 


하인츠 하르멜 (Heinz Harmel)
(1906년 6월 29일 생 - 2000년 9월 2일 사망)
보불전쟁 후 독일령이던 프랑스 메츠에서 태어난 하르멜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병사로 근무했지만 시험에서 사관으로 승진하는 길이 막혀 군대를 나왔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하르멜은 독일의 수상이 된 히틀러의 명령으로 재군비가 선언된 1935년에 친위대 특무부대(무장친위대의 전신)인 <게르마니아>연대에 입대했다. 1940년 서방전격전에서 <디어 퓰러>연대에 소속된 중대장으로 종군한 하르멜은 1941년에 독소전이 시작되자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다. 1941년 12월, 모스크바 공략전에서 자동화 보병연대 <도이칠란드>연대의 연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분전했다. 1943년 2월의 제 3차 할리코프 공방전, 7월의 크르스크 전투에서도 크게 활약한 하르멜은 1944년 4월 27일부터 1945년 4월 28일에 걸쳐 <프룬츠베르크>사단의 사단장으로 일했다. 프룬츠베르크 사단은 소련군과 싸우던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공격해 온 영국군과 다시 전투를 벌였다. 세느 강 철수에서 하르멜의 사단은 중심부대가 되어 싸우다가 다시 네덜란드로 이동해 부대를 재편했다. 1944년 9월에 마켓 가든작전이 연합군에 의해 실행되자 하르멜은 빌헬름 비트리히 장군의 지도하에 영국군을 격퇴했다. 1945년 1월에 알자스에서 종군한 하르멜은 이후 소련군과 다시 싸웠는데 히틀러의 사수명령을 거부하다가 1945년 4월 28일에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하르멜은 이 결정에 불복해 오스트리아에 있던 육군인사국에 항의를 했는데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의 방위책임자였다. 그러나 곧 독일이 패배하자 하르멜은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2년간의 수감생활 후에 독일로 이송된 하르멜은 이후 판매업에서 일하다가 94세의 나이로 크레펠트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