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

 


韓説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숙유(叔儒).
회계군 산음현 사람으로 오경에 정통했고 예언학에 통달했으며, 효렴으로 천거되어 의랑 채옹과 교제했다. 수 차례에 걸쳐 재해가 일어날 것을 얘기했고 이에 부, 송, 연주 등을 상표했으며, 승진해서 시중이 되었다. 175년에는 당계전, 양사, 마일제, 장순, 선양 등과 함께 육경의 문자를 바로잡겠다고 상주해 영제가 이를 수락했다.
178년 10월에 영제에게 30일에 필시 일식이 일어날 것이라 백관에게 정장을 차려 입어야 한다고 청했으며, 영제가 그 의견에 따르자 그의 말에 따라 일식이 실제로 일어났다. 185년 2월에 밀봉한 문서를 올렸고 그 내용은 궁중에 화재가 일어날 시기를 적어 올린 것인데, 또다시 그 말대로 그 날에 남궁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한설은 강하태수로 승진되었다가 공무에서 일어난 불상사로 면직되었다가 70세에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노식이 여강태수로 임명되면서 공손찬, 유비와 헤어질 때 노식의 옛 벗으로 채옹, 양표, 마일제 등과 함께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