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시사
1. 개요
청나라 소설 홍루몽에서 열린 시 모임. 두 번 결성했으며 문서에서는 편의상 두 모임을 한 문서에서 다룬다.
2. 해당사
37화에서 가탐춘은 가보옥에게 편지를 보내서 시 모임을 열자고 제안했고, 이에 대관원 식구들은 가탐춘의 처소인 추상재에 모여 시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자리에서 일행은 저마다 별호를 짓고 규칙을 정한 후, 가탐춘의 제안에 따라 즉석에서 작시 대회를 열었다.
가탐춘은 첫 작시대회에서 압운은부회장으로 릉주(가영춘), 우사(가석춘)을 임명하고, 두 사람은 시제와 시운을 내며 필사, 감독을 맡는다.
회장(이환)과 부회장들은 시 짓기가 의무는 아니나 내킬 때 지을 수도 있다.
나머지 네 사람(임대옥, 설보차, 가탐춘, 가보옥)은 시 모임 때 조건(시제, 각운 등)에 맞춰 시를 지을 것.
매월 2일, 16일에 시 모임을 개최하며, 시제와 압운은 회장이 결정한다. 정해진 날이 아니더라도 내키는 날이면 비정기적으로 모일 수도 있다.
출처는 홍루몽 37회에서 이환이 정한 규칙.
한편 사상운은 시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고 싶었지만 전달이 늦었던 탓에 그 날은 오지 못했고, 다음 날 참석해서 해당화를 주제로 시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열 시 모임을 주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막상 돈이 없어서 곤란해했다. 다행히 설보차가 오빠 설반을 통해 꽃게를 공수해 왔고 국화를 주제로 시를 짓자고 제안해서 무사히 끝났다. 이 날은 임대옥이 우승했다.
- 국몽(국화의 꿈): 칠언율시로 작성함
- 순서: 이환→향릉→가탐춘→이기→이문→형수연→사상운→설보금→임대옥→가보옥→설보차→사상운→설보금→사상운→설보차→임대옥→가보옥→설보금→사상운→형수연→사상운→임대옥→사상운→임대옥→사상운→설보금→임대옥→사상운→설보금→사상운→임대옥→설보금→사상운→임대옥→설보금→이환
3. 도화사
50화 이후 한동안 시모임 인원들의 개인사정 때문에 모임이 열리지 않다가, 70회 후반에 임대옥이 회장을 맡아 도화사가 열렸다. 임대옥은 기념으로 새로 지은 시인 <도화행>을 썼으며 이 날인 3월 1일은 남은 시간이 애매해서, 2일은 가탐춘의 생일이어서 5일로 미뤄졌다. 그 후 늦봄까지는 가보옥이 아버지의 명에 따라 글공부와 서예를 하느라 시모임 이야기는 없지만[1] , 늦봄에 사상운이 버드나무를 주제로 <여몽령>이라는 시를 짓자 모임이 열렸다.
가보옥과 가탐춘은 시간초과로 다 쓰지 못했고, 가보옥은 아쉬운 대로 가탐춘이 시간 때문에 다 쓰지 못한 시를 이어쓰는 걸로 만족했다. 그 후에는 수춘낭 춘화 사건, 대관원 수색 사건 등으로 대관원 분위기가 뒤숭숭해진데다가 설보차도 집안일 때문에 본가로 돌아가고, 이문·이기·형수연도 집안사정 때문에 본가로 돌아갔으며[2] 가영춘·가영춘은 결혼했고 임대옥도 98화에서 죽어서 대관원 식구들이 준 탓에 시 모임이 다시 열리지 못했다.
4. 모임 구성원
향릉, 이문, 이기, 형수연도 한 번씩 시를 쓴 적이 있다. 왕희봉은 문맹이라 시를 짓지 못하나 시의 주제를 선정할 때 잠시 참가했었다.
[1] 혼자 힘으로는 무리여서 임대옥, 설보차, 가탐춘이 일부 분량을 대필했다. 또한 임대옥도 가보옥이 공부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공부가 끝날 때까지 시모임을 열지 않았다.[2] 형수연은 설반의 친척인 설과와 약혼했고 114화 무렵에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