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원
1. 개요
大觀園 / 大观园
청나라 소설 홍루몽의 주요 배경인 원림.[1]
2. 소설에서의 모습
가보옥의 누나인 가원춘은 일찍이 후궁이 되어 입궁했는데, 16회에서 현덕비로 책봉되면서 귀비로 불린다. 동시에 황제로부터 특별히 친정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친정인 영국부 가씨 집안에서는 귀비를 맞이할 원림을 새로 만들고 이름을 대관원으로 지었다. 건설에 필요한 부지는 영국부 저택에 있던 정원 부지와 녕국부 가씨 저택의 회방원 부지를 합쳐서 두 저택을 하나로 연결하는 효과도 있었다.
17회와 정원 공사가 끝나가자 가보옥의 아버지인 가정은 아들을 불러 편액과 현판에 붙일 글귀를 짓도록 시켰지만 마음에 들지않는 눈치를 보였다. 그 후 가정은 가보옥이 작성한 글귀를 귀비에게 보냈고 그대로 채택됐다. 18회에서 나온 속사정에 따르면, 가보옥이 늦둥이였던 탓에 후궁이 되기 전에 가원춘은 어머니 역할도 맡아 글을 가르치기도 하는 등 친한 사이였고 입궁한 뒤에도 틈날 때마다 안부를 물었었다. 그러던 중에 대관원 현판에 쓸 문구를 지었다는 소식을 듣자 동생이 누나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의의를 기려 채택한 것이다.
아무튼 가원춘은 18회에서 정월 8일에 친정을 찾았고, 으리으리한 대관원 전경을 보며 너무 사치스럽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며 속으로 걱정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사가에서 만난 김에 그 동안 쌓인 회포도 풀었고, 전각들을 돌아보며 새로 편액을 썼는데 기존 편액과 같이 쓰도록 했다. 또한 편액을 주제로 한 명씩 한 수의 오언율시를 쓰도록 했다.
가보옥은 이홍원을 주제로 시를 쓰다 실수로 이홍원 시에 녹옥을 넣을 뻔 했지만 다행히 설보차의 조언으로
그 후 23화에서 가원춘은 대관원을 활용할 방법을 생각한 끝에, 가보옥을 포함한 동생들이 대관원의 전각들에 들어가 살도록 하면 남는 전각들도 쓸 수 있고 놀이터와 거처로 쓸 수 있도록 친정에 명을 내렸다. [3] 그렇게 대관원 사람들은 시도 짓고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71화에서 가영춘의 하녀인 사기가 연인인 반우안에게 선물받은 수춘낭[4] 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고, 73화에서 태부인 사씨의 하녀인 사대저[5] 가 무심코 수춘낭을 주웠다가 가영춘의 계모인 형부인에게 혼나며 엉뚱한 방향에서 문제가 터졌다. 형부인은 이런 건 애들이 갖고 노는 게 아니라며 수춘낭을 압수했고, 이 일은 가보옥의 어머니인 왕부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왕부인은 처음에 수춘낭을 대관원 관리를 맡던 가련의 처 왕희봉이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지만, 왕희봉은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했는데 근거는 아래와 같다.
- 발견된 수춘낭은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물건이다.
- 수춘낭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용도가 아니며, 괜히 들고 다녔다가 떨어뜨리면 망신감이다.
- 대관원에서 일하는 하인 중에서 젋은 부부들도 있기에 대관원 안에서 누군가 쓰던 물건일 것이다.
- 자신(왕희봉)뿐만 아니라 녕국부의 우씨 부인이나 시어머니(형부인)도 대관원에 출입할 때 시첩을 동행하는데 그 중에 주인이 있을수도 있다.
- 대관원에서 일하는 많은 하녀 중에서 주인이 있을 것이다.
한편 설보차는 수색은 피했지만 친정 일을 이유로 대관원을 떠났다. 수색 후 대관원은 한동안 조용했지만, 80화에서 가영춘이 아버지의 빈객이었던 손조조와 결혼해서 떠나고, 98화에서 임대옥이 죽고, 가보옥도 설보차와 혼인하면서 영국부에 딸린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며 가석춘, 이환도 녕/영국부 내로 거처를 옮기면서 대관원에 상주하는 사람은 비구니 묘옥만 남았다. 그리고 묘옥도 112화에서 도적떼에게 유괴당하며 대관원에는 묘옥을 따르던 비구니 몇 명만 남았다가, 가석춘이 비구니가 되어 농취암으로 옮기면서 텅 빈 공간은 아니게 되었다.
이 무렵 대관원 내부 시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곤 해서[9] , 대관원 관리인으로 하인 포용이 뽑혔다.[10] 가정은 후반에 대관원을 황실에 헌납하려 했지만 황제가 반려하면서, 대관원은 계속 가씨 문중이 관리하게 된다.
3. 구조 및 전각 설명
참고자료: 최용철·고민희·김지선, <붉은 누각의 꿈>. 나남
- 이홍원: 가보옥의 거처. 기암괴석과 꽃나무로 장식했으며 가보옥도 빨강색을 좋아한다. 후반에 설보차와 혼인하며 영국부에 딸린 새 저택으로 이사간 뒤에는 빈 집이 된다.
- 소상관: 임대옥의 거처.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으며 조용히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라 임대옥은 처음부터 소상관에 머물고 싶어했다. 대나무가 많은 특징과 평소에 임대옥이 잘 우는 편이라 요 임금의 아내인 아황, 여영[11] 이 떠오른다며 가탐춘은 해당시사 때 소상비자라는 별호를 붙였다. 임대옥 사후에는 빈 집이 되었고, 108화에선 바람에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탓에 사람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괴담이 퍼져서 가보옥이 한탄하는 장면이 있다.
- 형무원: 설보차의 거처. 주변을 향초로 장식했고 사치스러운 걸 싫어하는 설보차의 성격이 반영되어 간단한 가구와 생필품을 제외하면 장식이 거의 없고 검소한 곳이다. 사상운이 소설 중반에 머물기도 했고[12] 79회에서 설보차가 본가로 돌아간 후에는 빈 집이다.
- 자릉주: 가영춘의 거처.
- 추상재: 가탐춘의 거처. 세 칸짜리 집이며 방 사이는 문으로 막지 않고 연결했다. 37회에서 해당시사가 처음 열린 곳이다.
- 난향오: 가석춘의 거처. 대관원 그림을 그릴 겸 화실도 설치했다. 가까운 우향사와 세트로 취급되기도 하며 해당시사 때 지은 가석춘의 별호도 우향사에서 따왔다.
- 도향촌: 이환과 가란 모자의 거처.
- 농취암: 비구니 묘옥이 머무는 암자.
- 심방교: 이홍원과 소상관을 잇는 다리.
- 모란정: 24회에서 임대옥이 가보옥과 함께 연애소설 <서상기>를 읽은 곳.
- 대관루: 대관원의 큰 누각.
- 성친별서각: 가원춘이 사가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시설.
- 요정관: 77회에서 중추절 연회가 열린 곳,
4. 기타
베이징과 상하이에 홍루몽 테마파크를 겸해 만들어진 대관원이 있다.
[1] 정원과 저택을 섞은 공간.[2] 원래 판액은 홍향녹옥이었으나 가원춘이 이홍쾌록으로 고쳐서 이홍원이다. 설보차는 가원춘이 뺀 녹옥을 다시 시에 넣는 건 결례니 당나라 시인 전후가 쓴 '파초시'에 들어간 구절을 인용해 조언했다(출처는 나남출판사역 홍루몽 1권 402페이지).[3] 대관원 식구들 중에 남자는 사실상 가보옥뿐이었으나, 또래 여자애들과 친하니 위화감 없이 지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가보옥은 또래 여자들과 친하지만 색욕을 탐한다는 묘사는 없다.[4] 성인용 그림이 그려진 향주머니.[5] 성이 사(史)씨는 아니며 멍청하다고 붙은 이름이다.[6] 청문 외에도 평소에 싫어했던 하녀들을 전부 고자질했다.[7] 왕부인의 인척이라 처음부터 수색 대상에 없었다.[8] 녕국부로 재배치됨.[9] 102회에 따르면 귀신은 아니고 꿩을 잘못 본 하인이 귀신이라고 소문을 냈고, 영국부에서 도사를 불러 굿을 했다.[10] 포용은 107회 때 평소에 영국부와 녕국부의 은혜를 입은 가부윤(가화)이 가산을 거의 몰수당한 녕영 부중을 외면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화를 찾아가 두들겨팼다. 하지만 평소에 그를 시기하던 동료 하인이 가정에게 모함하는 바람에 포용은 한직인 대관원지기로 밀려났다. 다행(?)히 111회 때 영국부에 도둑이 들었을 때 포용이 활약했다.[11] 요임금이 죽자 대나무숲에서 울며 슬퍼했다는 전설이 있다.[12] 사상운은 대관원에 상주하진 않으며, 찾아올 때는 형무원과 소상관을 번갈아 가며 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