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2세

 

'''폴란드의 공작'''
헨리크 1세

'''헨리크 2세'''

콘라트 1세 마도비에츠키
'''Henryk II Pobożny'''
(1196 ~1241)
조국 폴란드의 통일을 바랬던 성군이자 몽골군이 조국 폴란드로 쳐들어오자 폴란드의 안위를 자신의 목숨과 바꿔 지키려고 했던 폴란드의 영웅.
헨리크 2세는 슐리지엔 공국의 주인인 헨리크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슐리지엔 공국은 헨리크 1세의 통치 아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도 잠시 폴란드가 여러 공국들이 난립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이자 그는 아버지와 있으면서 폴란드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재위에 오른 뒤 그는 폴란드의 재통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꿈은 어이없게도 몽골이라는 외부세력에게 가로막혔다. 그는 조국인 폴란드를 지키기 위해 공국들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고 자신의 휘하 중장보병 4만과 각 공국의 지원군을 이끌고 레그니차에 방어선을 쳤다. 그리고 주치와 수부타이가 이끄는 몽골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몽골군은 당시 이미 러시아의 맹주인 키예프 공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단련된 강군이었고 여러 번의 전투를 치룬 만큼 베테랑들이었다.[1]
결국 몽골군의 공격에 헨리크 2세와 그 휘하 유럽 연합군은 전멸하여 모두 몽골군에게 귀가 잘리고 헨리크 2세는 머리가 잘려 창에 꿰뚫어졌다. 헨리크 2세라는 지도자를 잃은 폴란드는 사기 저하로 더 허약해졌다. 하지만 성과도 있었는데, 헨리크 2세 휘하 군사들의 처절한 저항으로 몽골군 역시 큰 피해를 입어 몽골군은 더 이상의 진군을 멈추고 돌아갔다.
(위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몽골군은 본국에서 몽골 대칸인 오고타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물러난 것이다.
레그니차 전투에서 몽골군은 폴란드에 대승을 거두었고 헨리크 2세를 참수하였다.
레그니차 전투 후 1241년 말, 몽골군 사령관 바투는 신성로마제국을 침공할 계획을 마무리지었지만, 1241년 12월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이 계획은 실행이 보류되었다. )
현재 폴란드에서 헨리크 2세는 폴란드의 통일을 위해 힘쓴 훌륭한 군주중 하나이자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폴란드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폴란드인들이 그를 부르는 명칭도 '''헨리크 2세 경건공'''이다.

[1] 재미있는 건 유럽의 군대들이 몽골군에게 당한 패턴을 보면 상당부분 유사하다. 이세환 기자에 의하면 전투를 치룬 대상만 좀 바뀌었지 이름만 떼고 전투의 내용만 보면 정말 흡사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