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clearfix]
1. 개요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 수도는 바르샤바.
지정학적으로 서쪽에는 독일, 남쪽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동쪽으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쪽에는 발트 해와 러시아,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댄, 말 그대로 유럽 한복판에 있는 국가다. 국토 총면적은 312,679km²으로 유럽연합 6위[1] 이며,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3,785만 명으로 유럽연합 5위[2] 인 어느 정도 규모있는 국가다. 인구는 유럽에서 폴란드 다음으로 많은 루마니아나 네덜란드와도 2배, 2천만 명에 근접한 차이를 보이는 등 유럽의 주요국에 속한다.
민족 구성이 극단적으로 단일화되어 있는 바, 인구의 97% 이상이 폴란드인(Poles)으로 분류되어 대한민국이나 일본에 버금가는 단일민족국가에 해당한다. 원래 역사적으로는 상당한 다민족국가였지만 폴란드 땅에 대대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대부분 사망하거나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2차대전 이후에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들이 많이 살던 동부지역 영토를 소련에 내어주는 한편, 그 대신 보상으로 패전국 독일의 동부 영토를 새로 얻었는데 거기에 원래 살던 독일인들은 전범국에 대한 페널티로 가차없이 독일 땅으로 쫓아내어 남은 폴란드 영토에는 폴란드인만 남게 되어 민족의 순수성이 매우 높아진 사례. 종교적으로도 인구의 90%가 가톨릭을 믿는다.
냉전 이후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그나마 발전된 축에 속한다. 폴란드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함께 비세그라드 그룹(Visegrád Group)이라 하여 지역협력기구를 창설했는데, 이 네 나라는 옛 공산권에서 체제 전환을 경험한 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성장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역시 비교적 성공한 사례들 중 발트 3국은 인구가 적은 편이고,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은 천연자원 위주 경제인 반면, 비셰그라드 그룹은 인구도 적지 않고[3] 제조업 위주 경제구조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여겨진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서유럽의 부국들은 물론이고 한국보다도 소득 수준이 많이 낮은 편이다. 대략 한국의 절반 정도 수준.[4] 그래서 주변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유럽연합으로 묶인 덕에 국민들의 노동이주가 쉬우며, 소득 수준이 높은 서유럽으로 잔뜩 몰려가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주로 3D 육체 노동에 종사한다고. 게다가 다른 옛 동구권 국가들처럼 출산율이 1.3명대에 불과해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2020년대가 되면 노동력 부족 현상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 인해 동남아 등지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들이고 있으며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받아들이는 추세.
외교적으로 동구권 붕괴 이후에 빠르게 서방 진영으로 노선을 바꿔 유럽연합과 NATO에 가입했으며, 오늘날에는 유럽 안보의 핵심을 담당하는 국가이다. 지리적 위치가 나토의 최전선이고, 인구와 경제력도 새롭게 서방권에 편입된 동부 유럽 국가들 중[5] 양호한 편이다.
군사력 또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소련 다음 가는 군사강국이었던 역사가 어디 가지 않아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러시아에 의한 안보 위협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모스크바와 가깝다). 냉전 종료 이후 나토 회원국들의 군축 바람으로 미국을 제외하면 군사적으로 다 맛이 간 지 오래라 폴란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친미적인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 또한 폴란드를 유럽의 중요한 안보 파트너로 간주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15년에 법과 정의당 정권이 들어선 후로는[6] 유럽연합과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서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지만.[7]
2. 국가 상징
2.1. 국호
폴란드는 영어 명칭이고, 폴란드어 표기는 Polska(폴스카). 폴란드 혹은 폴스카라는 이름은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부족 중 하나인 '폴란인(Polanie)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6세기에 오늘날 폴란드 바르타 강 인근에 정착했던 부족이다. 헝가리 등 주변국 일부에서는 슬라브 신화의 민족 이름이자 폴란드의 신화적 건국자의 이름인 레흐(Lech)의 이름을 딴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헝가리에서 폴란드를 부르는 이름인 Lengyelország 나 오스만 제국시기에 폴란드를 지칭했던 Lehistan이 있다.[8]
한자 음차로는 파란(波蘭/波兰/Bōlán)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편 폴란드의 정식 국명은 Rzeczpospolita Polska로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폴란드(폴스카) 공화국'인데, rzeczpospolita라는 말은 '공화국'의 어원인 라틴어 res publica(인민의 것)을 폴란드어로 직역한 것으로서 '공화국'이라는 뜻의 일반명사가 아니라 폴란드 민족이 세운 공화국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쓰이며, 영어의 commonwealth와도 맥락이 닿는 표현이다. 오늘날 폴란드어로 공화국은 다른 유럽 언어들과 비슷하게 republika이다. 이는 민국이 공화국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한국만 대한"민국"으로 부르고 다른 공화국은 "~공화국"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2.2. 국기
폴란드 국기는 백색과 적색을 위아래로 배치한 이색기로, 전설적으로는 폴란드의 신화적 건국자의 이름인 레흐(Lech)가 석양을 배경으로 날고 있는 흰독수리를 보고 깃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의 국장의 흰독수리 역시 같은 연원을 가진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19세기에 아예 나라가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넘어가 독립운동을 펼칠 때 백색은 공화국의 존엄함을, 적색은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공식적으로 국기로 채택된 것은 1919년에 폴란드 제2공화국이 건국되었을 때이다.
위아래를 뒤집으면 인도네시아 또는 모나코[9] 국기가 되지만 종횡비율이 저 두 국기와는 약간 다르다.
2.3. 국가
3. 역사
4. 경제
5. 정치
6. 문화
7. 외교
8. 주민
폴란드인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소수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독일계 폴란드인, 유대인, 러시아계 폴란드인들도 거주하고 일부 립카 타타르, 루신인들도 거주한다.
9. 언어
서슬라브어파에 속하는 폴란드어를 쓰며, 동슬라브어파에 속하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와는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격변화가 복잡한 것도 유명하다. 라틴어 뺨칠 정도.
지역적으로는 서슬라브어파의 소수 언어인 실레시아어(실롱스크어), 카슈브어, 게르만어파의 소수 언어인 비미소리쉬어[10] 를 쓰는 사람이 있다. 동부에는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루신어를 쓰는 사용자도 존재한다.
주요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순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러시아어는 공산주의 시절 이래 가장 널리 교육해서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은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안다. 하지만 러시아어가 통용되는 벨라루스나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러시아어를 쓰면 좀 싫어한다 카더라.[11] 반러감정이 심한 편이지만, 그래도 인접 강대국의 언어인지라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또한, 냉전 이후에 잠시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다.#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 및 벨라루스 서부와의 접경지대는 러시아어가 모어인 이들도 거주한다. 201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12] 은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젊은 사람들은 발음도 괜찮다. 그리고 독일어 역시 잘 통하는 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프랑스어도 배우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으로도 가입되어 있다.
10. 지리
폴란드는 북위 49도에서 55도에 걸쳐 있다. 북부와 서부는 해양성 기후, 동부와 남부는 대륙성 기후를 띤다지만, 국토가 평평해서 지역 간 기후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폴란드 대부분은 냉대습윤기후에 속하며 여름철 기온은 지역에 따라 18℃~30℃로 쾌적한 편이고, 겨울 기온은 3℃~-6℃도로 조금 춥다. 연평균 7℃~10℃ 정도이다. 참고로 영하 20도를 밥먹듯이 찍는 우리나라 강원도 철원군의 위도는 38도 정도 된다. 가장 더운 지역은 남서부의 돌니실롱스크 주이며(체코와 접한 지역) 가장 추운 지역은 남쪽 마워폴스카 주의 산악지대인 하이 타트라 지역, 그리고 러시아 한랭전선의 영향을 받는 북동부의 포들라스키에 주(벨라루스와 접한 지역)이다. 1년 강수량은 약 500mm~600mm대로 폴란드 대부분 지역이 거의 비슷하다(바르샤바 515mm, 크라쿠프 688mm, 그단스크 499mm, 포즈난 515mm).[13]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른 가운데 여름철 강수량이 조금 더 많지만 흐린 날은 겨울이 더 많다.
상술했듯 폴란드 국토의 90%는 평지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높이 200m를 넘어가는 언덕도 찾아보기 힘들며 구글지도에서 지형탭을 켜고 폴란드 지역을 보면 지형탭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맞나 싶을 만큼 전체적으로 평탄한 지형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밋밋한 와중에도 재미있는 지형들이 있는데, 국토 전역에 숲과 습지 호수가 많이 흩어져 있고 북쪽의 발트해와 면한 지역에는 석호와 길고 가늘게 뻗은 사주(spit, 곶)가 발달해 있다. 동쪽 벨라루스와 면한 지역에는 유럽 최후의 원시림인 비아워비에자(Białowieża) 숲이 있고, 남쪽의 비옥한 곡창 지대를 지나 슬로바키아 접경으로 가면 2,000m가 넘는 산들이 있는 하이 타트라 산맥이 있다.
세계 지도에서 프루시(프로이센) 지역을 보면 마치 인공 방파제마냥 육지가 길고 가늘게 뻗어서 바다에 면한 호수를 가두고 있는 지역이 2곳 있는데, 이 중 남쪽에 있는 것이 폴란드와 러시아가 공유하는 비스툴라 사주(spit, 곶), 비스툴라 석호이다.[14] 비스툴라 사주는 인공물이 아닌 자연 지형이며 길이는 55km나 되면서 폭은 500m~1km에 불과하다. 폴란드의 낮은 고도, 발트해의 얕은 수심이 어우러져 비스툴라 호 외에도 폴란드의 발트해 연안에는 크고 작은 석호와 사주들이 여럿 있다.
또 의외로 사막이 존재한다. 브웬도프스카 사막이라는 곳인데, 길이 10km, 폭 4km 정도로 규모는 굉장히 작으나 유럽에 존재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비아워비에자(Białowieża) 숲은 한때 유럽 평원으로 뻗어나간 원시림이 현재까지 남은 마지막 부분으로서 폴란드와 벨라루스에 걸쳐 141,885ha의 면적을 자랑한다. 이곳은 유럽의 가장 육중한 육상 동물인 유럽 들소의 거의 유일한 서식지이기도 한데, 유럽 들소는 거의 멸종했다가 폴란드 정부의 노력으로 복원된 뒤 현재 800마리 정도가 이 숲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거대한 전나무, 죽은 나무에 서식하는 12,000종에 달하는 생물 등 수많은 동식물의 보금자리이며, 197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2016년부터 폴란드 정부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이 숲의 일부를 벌채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EU는 폴란드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이 타트라 산맥(타트리 비소키에, Tatry Wysokie)은 카르파티아 산맥의 서쪽 일부로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이다. 산맥 상당부분이 슬로바키아에 속한 데다 산맥 자체의 규모도 크진 않아서, 평지 투성이인 폴란드 영토 내에서 이 산맥이 차지하는 면적은 매우 작다. 그러나 하이 타트라가 유럽 내에서 꽤 높은 산맥이다보니 이 산맥의 일부를 영유하는 폴란드에는 고도 2,000m 이상인 고봉들이 70개나 있다. 이 중 최고봉이자 폴란드의 최고봉은 리시(Rysy)산으로 높이가 2,503m나 된다. 이 지역에 있는 자코파네(Zakopane)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하나이며, 하이 타트라의 고봉들과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 같은 아름다운 호수들을 여행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도시 자체도 매력적이라 크라쿠프를 찾는 사람들이 이곳까지 여행하기도 한다.
폴란드의 큰 강은 폴란드의 젖줄인 비스와 강(비스툴라 강), 그리고 일부분이 독일과의 국경이 되는 오드라(오데르) 강이 있다. 비스와 강은 남부 실롱스크의 베스키디 산맥에서 발원하여 크라쿠프, 바르샤바, 토룬 같은 주요 도시들을 지난 뒤 1,022km를 흘러 그단스크 근처에서 발트해로 흘러들어간다.[15] 오데르 강은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발원하지만 거의 발원하자마자 폴란드로 흘러들어가 브로츠와프, 슈체친을 지난 뒤 835km를 흘러 역시 발트해로 들어간다. 오데르 강 전체 구간 중 약 30%가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이다. 하지만 슈체친은 오데르 강 서쪽에 있음에도 폴란드 영토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오데르-나이세 선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자원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실롱스크 지방은 유럽의 대표적인 탄광 지대인데, 이 지역을 보유한 폴란드는 무연탄, 갈탄 매장량 세계 9위, 생산량 세계 9위를 자랑한다. 지금까지도 석탄은 폴란드 경제에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폴란드 발전소의 대부분은 이 저렴한 석탄으로 가동된다.[16] 또 폴란드는 2010년 기준으로 레늄 생산량 세계 4위, 은 생산량 9위, 구리 생산량 10위를 자랑하며[17] 이 밖에도 황, 암염,[18] 석회석 등 여러 광물들이 매장되어 있다. 2011년엔 폴란드에서 셰일 가스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당시엔 채굴 가능 매장량도 5조 입방미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추정치는 갈수록 줄어들어 현재는 약 380억 입방미터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장밋빛 예상과는 달리 갈수록 줄어드는 추정치, 더딘 탐사, 법적 논쟁 등으로 인해 외국계 회사들이 하나 둘 발을 빼고 떠났지만, 여전히 폴란드 정부의 개발 의지는 확고하다고 한다.
11. 마천루
세계 최고층 구조물을 두고 있던 나라였다. 1973년에 완공된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이 바로 그것. 하지만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저런 아쉬움만 가득했고 1991년 일련의 실수로 무너졌으며, 이후로 재건계획이 세워졌지만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백지화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름은 "바르샤바"라지만, 실제 위치는 바르샤바에서 멀리 떨어진 콘스탄티노우.
2010년 이후로 폴란드에 미친듯이 높이 200m 이상 마천루를 짓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라가 멸망당하고, 2차대전 이후로는 소련의 위성국 신세에다, 민주화 이후에는 바로 옆 나라인 독일의 성장에 주눅든 폴란드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마천루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유럽연합 역내국 중에서 200m 이상 마천루 발주를 가장 많이 한다. 2030년까지 폴란드에 지어지는 높이 200m 이상 마천루만 20여 동이다.
주로 수도인 바르샤바에 짓지만 폴란드 침공의 원인인 그단스크(구 단치히 자유시), 폴란드 최대의 관광도시 크라쿠프 세 군데가 주도하고 있다.
12. 행정 구역
크게 총 16개 주[19] 로 구성되어 있다. 주 밑으로는 군[20] , 군 밑으로는 코뮌[21] 이 있고, 군 개념에는 시도 들어간다. 주의 중심지인 주도는 보통 1개 포비아트로 되어 있지만, 루부시나 쿠야비-포모제처럼 주 정부와 주 의회 소재 포비아트가 동시에 주도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17개 주로 구분되었는데, 1975년에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49개로 세분화한 것이 1998년까지 사용되다가 1999년에 현재의 16개 주로 다시 조정되었다.
12.1. 독일어 명칭
2차대전 후 독일 영토에서 편입된 지역이 많다 보니,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들은 몇몇 지명을 지금도 독일어로 부르는 일이 많다. 딱히 독일인이 아니더라도, 19~20세기 독일사/폴란드사를 공부한다면 2가지 명칭을 모두 알아야 한다. 자세한 것은 프로이센/행정구역 참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데르-나이세 선에 의해 폴란드령이 된 곳은 굵은 글씨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폴란드령이 된 곳은 굵은 글씨에 밑줄을 더했다.
12.2. 국토 변화
[image]
[image]
현재 폴란드 국토의 서쪽 부분은 과거 프로이센 지역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에 대한 완충구역을 더 두고 자신들의 영토는 더 넓히려 했던 소련에 의해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독일 동부 영토들이 폴란드에 넘어간 대신, 독립 당시의 영토 중 커즌 선 동쪽은 또 소련에 넘어갔다. 그래서 폴란드의 국토 크기는 원래 크기의 80% 수준으로 줄었고(폴란드 제2공화국 38만㎢ → 폴란드 제3공화국 30만㎢), 원래 국토 살짝 서쪽에 있던 수도 바르샤바는 원래보다 국토의 동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1945년 폴란드로부터 소련에 할양되었던 지방은 현재 많은 부분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귀속되어 있다.
폴란드 제3공화국의 영토는 폴란드 극초기(폴란드가 국가 성립을 선언한 서기 960년)의 영토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폴란드 극초기의 영역이 죄다 오랜 기간(500년 이상) 프로이센의 영역이었고, 이른바 우리가 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의 영토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의 영토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의 부분집합인 반면, 폴란드 제3공화국의 영토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역사와도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센이었던 지역에 대해서는 프로이센 문서와 프로이센/행정구역 문서를, 이 지역의 복잡한 영토 문제에 대해선 2차대전 후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 문제 문서를 참조할 것.
이 나라는 자국의 역사교사들에게 특별 수당을 지급한다는 농반진반인 유머가 있을 정도로 국경선 변화가 심했다. 한 때 폴란드-리투아니아라는 이름으로 에스토니아 중부와 흑해 연안까지 지배하고,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스웨덴과의 동군연합을 이루던 시절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13. 군사
14. 폴란드 출신 유명 인물들
어두웠던 근대 역사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유명인을 배출한 나라이다. 16세기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있었고, 17세기에는 서구 문명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48] 와 오늘날 별자리의 탄생 주역들 중 하나인 천문학자 헤벨리우스[49] 가 있었다.
19세기~20세기에 들어와서는 피아니스트 쇼팽, 쿠오 바디스 등을 지은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노벨문학상 수상자),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흔히 퀴리 부인으로 한국에 알려진 마리 퀴리(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수상자),[50] 폴란드 자유화의 기수 레흐 바웬사(노벨평화상 수상자), 제264대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천재 물리학자 테오도어 칼루차, 첫 외계행성을 발견한 알렉산데르 볼시찬 같은 사람들이 있어 약소국으로 파묻힐 폴란드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외국에 지배당하고 핍박당한 역사가 길어서 애국심이 굉장히 강하다. 다만 이런 애국심이 오히려 국수주의로 번져 조롱과 비판을 받는 일도 종종 있다. 가령 위키백과의 경우 거의 모든 폴란드 관련 항목들이 폴란드인들의 POV 편집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으며, 폴란드인 편집진 여럿과 폴란드인 관리자 1명이 메신저를 통해 조직적인 편집 및 러시아인 편집진 추방 공작을 벌였던 것이 발각되면서 역으로 연루자 전원이 추방되는 등 온라인상의 흔한 비웃음거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런 국수주의는 폴란드볼의 성립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미국에 약 950만명의 폴란드계 미국인들이 거주하며 폴란드인 혹은 폴란드계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해외 국가가 미국이다. 폴란드계 미국인 참조.
14.1. 폴란드식 이름
폴란드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것은 폴란드 특유의 작명 관습 때문이다. 폴란드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아기가 태어난 날이 축일인 가톨릭 성인#s-2의 이름을 그대로 따다 짓는다. 만약 해당일이 축일인 성인#s-2이 없다면, 축일 날짜가 가장 가까운 성인 이름을 따다 짓는다.[51] 즉, 생일이 같으면 이름도 같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녀의 대다수는 '마리아'인지라, 폴란드의 학교에서 '마리아!'라고 외치면 여자아이들의 1/3가량이 뒤를 돌아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서 작명을 하므로 이름이 조금만 독특하면 대다수가 유대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서도 대세를 따르거나, 기독교식 이름의 대다수는 유대계에 뿌리를 둔 이름이기도 해서 너무나 평범한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가톨릭에 크게 매여 있지 않아서 자유롭고 덜 동구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러시아인에게 ~스키(ski)식의 성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스키 성씨(Nazwisko)는 폴란드에 훨씬 많다. 사실 러시아의 "~스키" 들 역시도 대체로 폴란드계가 많고 본래 성씨에서는 ~스키라는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데다가,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니 당연하다. 루카스 포돌스키 역시 폴란드계 독일인으로 본래 폴란드 국가대표 자격이 있었으나 독일을 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폴란드 여자가 '~스키'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어미 변화가 이루어져 ~스카로 성이 변화된다.[52] 딸을 낳으면 딸도 성이 이렇게 변화된다고 한다.[53] 이유인즉 ~ski/~ska는 슬라브어 전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형용사 어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 형용사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슬라브 이름의 특징으로 러시아어도 마찬가지이다. ~프는 ~바로(고르바초프-고르바초바), ~스키는 ~ 스카야(차이코프스키 → 차이코프스카야)로 변한다. 물론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ózef Wojtyła,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이름)처럼 형용사를 성으로 따온 경우가 아니라면 변화하지 않는다.
폴란드식 이름에는 오프스키(-owski), 츠키(-cki 혹은 -dzki), 치크(-czyk), 비치(-wicz)도 많이 쓰이는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는 폴란드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폴란드계 성씨하면 코왈스키(폴란드어로는 코발스키)라고 답할 정도로 폴란드에는 코발스키 씨들이 많다. 폴란드에서 2번째로 많은 성씨가 코발스키 씨며, 가장 많은 성씨는 노바크(Nowak) 씨다. NHL의 전설적인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조상도 폴란드 출신.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 성씨 중에 가장 흔한 것이 대장장이를 뜻하는 스미스(Smith)인데, 코발스키에서 코발의 뜻도 대장장이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코발스키를 그대로 번역하면 "대장장이네 아들"이다.
언어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라틴알파벳과 비슷하면서도 자음에 해당하는 문자가 많이 들어가 외국인들은 제대로 읽기가 난해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옝드제이첵(Jędrzejczyk)이 있다.
15. 종교
15.1. 가톨릭
폴란드인들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다. 폴란드는 국교#s-2가 없는 세속 국가이지만, 2014년 기준 총 인구의 85.8%가 가톨릭을 믿고 있어[54] 바티칸(100%), 이탈리아(83%)[55] , 리투아니아(77.2%), 크로아티아(86.3%)[56] , 포르투갈(81~88%), 아일랜드(78.3%) 등과 함께 가톨릭이 주류인 곳이다. 서기 966년에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가톨릭 신앙은 폴란드의 문화 정체성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리고 가톨릭 역대 교황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 출신이다.
폴란드는 단순히 가톨릭의 교세가 큰 나라인 것 뿐 아니라 종교성과 신앙심도 매우 깊은 국가이다. 일반적인 서유럽 국가들의 정기적 성당 출석율이 고작 10~20%인데, 폴란드는 1달에 1번 이상 정기적으로 성당에 출석하고 고해성사까지 정기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인구의 70~80%에 달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영성체하는 사람들의 수와 사제 수도 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느님을 믿거나 매우 독실하게 믿는다'고 답한 사람도 인구의 94%나 된다.[57] 2010년대 들어서 성당 출석율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이는 국민들의 신앙심이 약해져서가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교적을 폴란드에 남겨둔 채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서유럽으로 노동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세속화 경향이 더 강한 영국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영국인 신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영국으로 오는 폴란드 출신 외국인들과 이민자들 덕택에 가톨릭 교세는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비서구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한창 성장 중인 그리스도교 신자의 열렬한 종교성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런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현재 유럽 교회 가운데서 가장 '비유럽적'이다. 유럽 전역을 휩쓰는 성소자(聖召者)[58] 부족 사태가 폴란드에는 없다. 사제와 수도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다른 유럽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몇 년 전, 크라쿠프 교구에서는 신학교가 꽉 찼으니 성소자들은 다른 교구나 수도회를 알아보거나 1-2년 뒤에 입학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폴란드의 성소자 부족 사태는 가톨릭보다는 오히려 폴란드 정교회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으며, 가톨릭 교회 중에서도 동방 가톨릭 교회만큼은 성소자 부족 사태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서는 소련 붕괴 전까지 정교회에 대한 경원시 풍조가 현재 많이 사라졌다. 폴란드 정부와 가톨릭교회가 동반 우경화하면서 정교회[59] 의 사회보수주의에 주목하고 이를 긍정 평가하는 시각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 가톨릭이 강세인 이유는 아일랜드의 경우와 비슷한데, 오랜 외세 침략과 시련의 역사 속에서 가톨릭이 국민적인 단합의 상징과 폴란드인들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이 섞이는 현상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영국과의 투쟁 속에서 '성공회=침략자 영국인의 종교, 가톨릭=아일랜드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인식하고 가톨릭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았다.[60]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는 '가톨릭=서유럽인들의 종교, 정교회=러시아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생각했다.
폴란드에는 공중파 방송이 5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각 교구마다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이런 교회와 일반 매체들에서 교황의 동정을 날마다 보도한다. 교황청에서 조그만 메시지나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폴란드 매체는 반드시 보도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톨릭교회를 변호하려고 한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읽을 때, 고난받는 예언자의 모습을 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떠올리곤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 교황에 대한 관심도 지대한데, 참고로 교황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폴란드어판 위키백과에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심지어 영어 위키백과에도 없는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이 따로 독립된 위키 문서로 만들어질 정도다.# 이게 문서로 만들어진 위키백과는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와 함께 폴란드어 위키백과뿐이다. 폴란드에서는 이것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걸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 교황이 사회 및 교회 내 문제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면에 교회와 일반 매체는 교황의 이런 자세에 이견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오히려 가톨릭 교회와 교황을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시각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난민과 타 종교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입장이 폴란드 가톨릭 교회 및 그와 유착하고 있는 여당 법과 정의당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난민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거듭 호소해온 현 교황과 달리 폴란드 가톨릭교회의 상당수 주교와 사제들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교회 운영 참여 확대 등 교회 내 성별 문제에도 상대적으로 논의 자세가 유연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훨씬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현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의 실정이다. 게다가 폴란드에서는 이미 90년부터 전통 가톨릭 단체들이 진출한 상황이었는데, 교회법상 합법적인 단체들부터 성 비오 10세회[61] 는 물론이고 교황공석주의자 단체까지 여러 전통 가톨릭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근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반감을 품은 천주교 신자를 중심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전통 가톨릭 단체들의 존재는 제도권 폴란드 가톨릭교회에 오른쪽으로 작용하는 압력 구실을 하여 가뜩이나 보수적인 폴란드 가톨릭교회의 우경화를 촉진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폴란드 전통 가톨릭 운동은 성 비오 10세회만 해도 60여 성당과 공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성 비오 10세회는 폴란드인 사제를 80년대부터 서품하기 시작했으며 동유럽관구 사무소도 바르샤바에 있다. 폴란드 성 비오 10세회 지부는 2000년 독자적으로 성모 기사회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편, 폴란드 내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는 곳은 실롱스크 주 쳉스토호바(Częstochowa)의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성당이다. 이곳에는 폴란드 최고의 성물인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Obraz Matki Boskiej Częstochowskiej)'라는 성화가 모셔져 있는데, 이 성화를 직접 보러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명이 야스나 구라 성당을 찾아 온다. 2011년 한 해 80개국에서 320만 명이 이곳을 찾았고, 그 중 14만 3983명은 폴란드에서 직접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성화의 제작 연도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1430년에 후스파에 의해 파손된 후 그 위에 손상된 부분을 다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녀 헬레나가 326년에 예루살렘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콘스탄티노플과 베우스(Bełz)를 거쳐 14세기 경에 오폴레 공작이 쳉스토호바로 모셔왔다고 한다. 이 성화는 여러차례 기적을 일으켜 야스나 구라 성당과 폴란드를 지켜주었다고 믿어진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대홍수'로 신음할 때, 연방을 침공한 스웨덴군이 쳉스토호바까지 내려와 1655년 야스나 구라 성당을 포위하자 수도자들과 지원자들 250명이 스웨덴군 4천을 막아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것이 검은 성모상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믿었으며 더 나아가 대홍수 시기 전쟁의 양상까지도 바꿔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국왕 얀 카지미에슈 2세는 이듬해 1656년 4월 1일에 르부프(리비우)의 성당에서 검은 성모 마리아를 폴란드의 여왕이자 수호성인으로 "대관"했다.
현재 성화의 얼굴에는 흉터 2개가 있는데, 이 흉터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1430년 후스파가 야스나 구라를 약탈할 때 이 성화도 가지고 가려 했다. 하지만 마차를 끄는 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자 열받은 일당 중 하나가 이 성화를 땅에 메다 꽂고는 칼질을 두어 번 했는데, 3번째 칼질을 하려던 순간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었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이 흉터를 없애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이 칼자국이 다시 드러나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공산국가 시절에도 가톨릭의 힘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불교를 장려한 라오스와 함께 공산권에서 몇 안되는 종교 장려 국가로 분류되었을 정도.[62]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었을 당시에도 폴란드는 엄연히 공산주의 국가였다. 폴란드 공산정부는 국가 무신론을 제창했지만 교황이 폴란드에 오면 귀빈으로 모시는 등 가톨릭을 통해 민중들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폴란드의 가톨릭은 공산국가 시절에 민주세력의 주요 일원으로서 탈공산화 및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에 사는 튀르크 혈통의 타타르족들 역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슬람 대신에 가톨릭을 믿는다. 이들은 '립카 타타르'라고 불리며 킵차크 칸국의 토크타미시가 망명할 때 따라 들어온 사람들인데 18세기까지도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다. 2차대전 이후로는 이들의 거주지였던 동부 폴란드가 대부분 러시아로 귀속되면서 폴란드 내 타타르인들은 수가 매우 줄어서 현재는 공식적으로 3천 명 정도로 파악된다. 현재도 이슬람교와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지만 일부는 폴란드에 동화되어 가톨릭을 믿고 폴란드식 이름을 쓴다. 이들은 그리스 로도스 섬의 터키계 주민들, 러시아 남부의 정교도 타타르인인 크랴셴, 몰도바의 자치공화국 가가우지아의 가가우즈인, 사하 공화국의 사하인과 함께 몇 안되는 기독교를 믿는 튀르크계 주민들이다.
물론 2010년대 들어서 폴란드 가톨릭 교세는 점진적으로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와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게다가 법과 정의당 집권 이후 더욱 더 행사력을 높이고 있어서 낙태 금지 법안 계기로 성당을 쳐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15.1.1. 동방 가톨릭 교회
한편 가톨릭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면서도 전례는 정교회식으로 하는 동방 가톨릭 교회 신자들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폴란드에서 동방 가톨릭 성당이 있는 지역으로는 쿠리우프카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폴란드에는 소수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믿기도 하지만 가톨릭이 대다수인 폴란드 현지의 영향을 받아서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면서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전례를 따르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를 믿기도 한다. 폴란드 민주화 이후에는 콥트 가톨릭, 마론파, 시리아 가톨릭 등 중동의 동방 가톨릭 교회가 폴란드의 가톨릭과 교류하는 일도 잦아졌다.
15.2. 개신교
폴란드 내에서 개신교를 보는 시선은 조금 복잡 미묘하다. 역사적으로 폴란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독일, 특히 프로이센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처럼 부정적인 시각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소수 종교로서 최소한 이해는 해주자는 시각도 공존한다. 폴란드에서 개혁교회는 약 2천여 명 정도가 믿고 있다(2007년 조사 기준). 대부분이 옛 독일령 지역이 아닌 원래부터 폴란드였던 중앙부에 신자가 분포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63] 시대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옛 독일령 지역에 있던 루터교회들은 폴란드로 넘어간 뒤로는 사라지거나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폴란드인들이 무조건 개신교를 독일색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루터교인들도 나치 독일의 만행에 분노해서 레지스탕스를 이끌다 수용소에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 중에는 목사[64] 도 있었다. 이들은 폴란드의 루터교회 신자들에게는 순교자로 추앙받으며, 가톨릭을 믿는 대다수 폴란드인들과 정교회를 믿는 폴란드인들에게도 침략자의 종교에서 배출한 폴란드의 애국열사라는 드라마틱함 때문에 종교를 초월하여 위대한 순국선열로 추앙받는다.[65] 현재 폴란드의 루터교 신자 수는 약 5만 명 정도로 신자 대부분이 치에신과 실롱스크[66] 에 몰려있으며 교단 명칭도 직설적으로 루터 교회라 부르지 않고 '아우크스부르크 고백 교회'라고 부른다.
15.3. 정교회
가톨릭 신자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동유럽 쪽에 있다 보니 정교회 신자는 그나마 조금(50만 정도) 있으며, 독립 교회가 설립되어 바르샤바 대주교가 폴란드 전체 대주교를 겸임한다. 10만을 간신히 넘는 개신교보다는 정교회 신자가 훨씬 많은 편.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폴란드에서 자국 개신교 신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너 독일빠지?" 하는 것처럼 정교회 신자는 "너 러시아빠지?" 하는 시선도 아직 조금 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도 정교회는 동쪽 변방의 농노들이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 강해서 이미지가 영 좋지 못했던 게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이다. 폴란드의 정교회 신자 대다수는 소수민족인 우크라이나계(카자크인 포함)나 벨라루스계 주민들이지만 토착 폴란드인 정교회 신자들[67] 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정교회 신자들은 대체로 러시아(정확히는 폴란드와 국경을 맞댄 칼리닌그라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에 많다. 특히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비아위스토크가 폴란드 내에서 정교회 신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러시아 치하에서는 수도인 바르샤바가 폴란드에서 정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나[68] , 폴란드의 독립에 따른 폴란드 가톨릭의 부흥과 공산국가 시절 국가 무신론[69] 의 영향으로 바르샤바를 포함한 폴란드의 중심지에서 정교회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그 때문에 바르샤바는 폴란드 정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명목상으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며, 앞서 말한 러시아(칼리닌그라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가 폴란드 정교회의 실질 중심지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폴란드 내에서 정교회는 러시아 식민지 시절보다 위상이 크게 추락한 상황이다. 유대교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70]
폴란드 내 정교회 신자들은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에는 가톨릭 신자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에는 무신론자로 위장하여 비밀리에 정교회 신앙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다르지만(전자는 반러 성향, 후자는 국가 무신론) 두 국가 모두 정교회를 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술한 이유에 따라 폴란드에서 반정교회 감정이 과거보다 많이 완화된 후에는 정교회 신자로 커밍아웃하는 폴란드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현재 폴란드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2018년 정교회 분열 당시에는 폴란드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를 옹호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폴란드 정교회 평신도들은 반러 성향인 경우도 존재하는데, 냉전 시절에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폴란드 정교회를 탄압한 것 자체가 사실상 소련의 주도에 따른 것이었으며, 우크라이나계 폴란드인과 벨라루스계 폴란드인은 우크라이나 본토인 및 벨라루스 본토인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인과는 엄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러 성향인 폴란드 정교회 신자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가톨릭 강요 및 정교회 탄압과 소련의 국가 무신론을 모두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폴란드 정교회 평신도들 중 친러 성향인 이들은 주로 러시아(칼리닌그라드)와의 접경지대에 거주하는데 이들은 러시아계 혈통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바르샤바의 프라가 지구에도 폴란드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거주한다.
15.4. 오리엔트 정교회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믿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대표적이다. 폴란드 민주화 이후에는 폴란드의 기독교계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뿐만 아니라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등 다른 오리엔트 정교회와 교류하는 일도 많아졌다.
15.5. 불교
불교는 극소수지만 여기에도 신자들이 존재한다. 의외로 한국불교가 널리 퍼져 있는데, 숭산스님이 미국 다음으로 해외포교를 많이 한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수도 바르샤바에는 도암사(구 관음선종 동유럽 본사)가 있으며, 폴란드 출신 승려 우봉선사(본명 야콥 펄, 현재는 입적)도 배출되었다. 불교 전래 자체는 1910년대부터 전래되었지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1991년부터이다. 가장 널리 퍼진 종파는 티베트 불교로 25개 도시에 법당이 있고 10개의 도시에 소모임이 있으며, 그 다음인 관음선종은 6개 도시에 법당이 있고 12개 도시에 모임이 있다. 참조 링크 다른 가톨릭 주류 국가들에 불교가 거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
15.6. 이슬람교
상술한 폴란드의 타타르인들이 주로 신봉하는데, 아무래도 폴란드의 타타르인들이 언어, 문화적으로 폴란드화가 엄청나게 진행된 탓에 이슬람교 세는 약하다. 타타르인 대다수가 이슬람교 신앙을 유지할 뿐더러 오히려 이슬람교가 최대 소수종교인 러시아와는 대조적이다.
폴란드 내 무슬림 대다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부터 대대로 살아온 립카 타타르인이지만 러시아령 폴란드 시절에 러시아 본토에서 이주해온 볼가 타타르인의 후손들도 있다.
15.7. 유대교
폴란드에서 유대교는 11세기 말부터 현 폴란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한 유서 깊은 종교였다. 10세기 후반부터 무슬림 통치 하 스페인의 유대인 상인들이 폴란드 영지를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 즈음해서는 유대인들이 폴란드 왕국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주요 정착지는 폴란드 왕국의 첫 번째 수도였던 그니에즈노였다.
폴란드 왕국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유대인 박해와 비교하여 관용적인 대(對) 유대인 정책을 견지했으며, 유대인 상인의 유용성을 인정한 볼레스와프 3세(재위 1102 - 1138년) 치세에 이르러서는 유대인의 폴란드 이주가 가속화되어 폴란드 전역에 유대인이 정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미에슈코 3세 치세에는 동전에 히브리어가 새겨지기도 할 정도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이렇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형성 전 이미 폴란드 주요 도시에 유대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기존 주민이 영주와 농민으로 양분되어있던 폴란드에서 상인·기술자 등 중간계급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런 폴란드 유대교의 낙관적인 상황은 독일 기사단국의 확장과 로마 가톨릭 교회 성직자 일부의 반유대주의 부추김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폴란드 왕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반(反) 유대주의에 반대하여 관용적인 대(對) 유대인 정책을 유지했으며, 14세기 말에는 편입된 리투아니아의 유대인에게도 기존 폴란드 유대인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였다. 유대인의 폴란드 이주도 계속되어 1492년부터 16세기 전반부 사이에는 스페인 유대인 일부가 폴란드로 이주했다.
유대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도 내내 폴란드 최대 소수 종교였는데 이 때는 리투아니아로부터 리트박 유대인이 유입되기도 했으며,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한 뒤에도 폴란드의 유대교 세는 약화되지 않았다. 여러 외침 속에 대체로 폴란드에 충성한 유대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들은 거듭해서 유대인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1764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유대인 수는 75만여 명으로 당시 전(全) 유럽 유대인 숫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폴란드 분할이 끝난 뒤에 유대교의 위치는 전보다 위태로워지게 되었지만 유대인의 수는 감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 포그롬으로 많은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그나마 덜 위험한 러시아령 폴란드나 안전한 독일령 폴란드로 이주하였으며, 독일령 폴란드 서부에는 폴란드 분할 전부터 이미 독일계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령인 크라쿠프 대공국에는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체코인 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민족에 제각기 (종교만 빼고) 동화된 유대인들이 이주하기도 했다. 전간기 끝 무렵인 1939년 당시 폴란드 유대인은 약 350만여 명으로 폴란드 인구의 10% 이상[71] 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로 인해 폴란드의 유대인들이 폴란드계·리투아니아계·러시아계·독일계를 막론하고 대거 목숨을 잃었을 뿐더러[72] 그나마 남은 생존자들도 전후(戰後)에 지속적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지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폴란드 내 입지가 거의 사라졌다.[73]
게다가 러시아와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폴란드 내에서 이미지가 영 좋지 못했던 정교회보다도 교세가 약해졌으며, 그로 인해 정교회가 폴란드의 최대 소수 종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졌다.[74] 400여 년 이상 유대교가 폴란드 최대 소수 종교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75]
폴란드 내 유대인 대다수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지만 실롱스크, 포즈난, 그단스크 등 구 독일령 지역은 소수의 독일계 유대인도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대인 폴란드령 갈리치아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도 있다.
[image]
1902년 건립되어 홀로코스트 기간동안 파괴되었다가 1983년에 재건을 마치고 다시 운영중인 바르샤바 노이지크(Nozykow) 회당
홀로코스트로 인해 바르샤바 대(大)회당을 포함하여 많은 유대교 회당이 파괴되거나 버려져 방치되었지만, 본격적으로 2000년대 접어들어 폴란드 유대인 문화 유산 보전 차원으로 방치된 시나고그 중 역사가 깊은 일부를 수리하고 다시 문을 열고 있다. 현재 폴란드 유대교 교단으로는 '폴란드 유대교 공동체 연합(The Union of Jewish Religious Communities in Poland)'[76] 이 있다.
폴란드 유대인 명사(名士)로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모티브가 된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바르샤바 게토 봉기 생존자이자 전후에도 반(反) 시온주의자로서 이스라엘 이주를 선택하지 않은 마레크 에델만(Marek Edelman) 등이 있다.
15.8. 무신론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의 영향으로 무신론자도 있으며, 최근에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무신론자가 되는 폴란드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16. 교육
대학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유사하게 학사 3년과 석사 2년으로 이뤄지며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석사학위까지 취득한다. 종합대학 체제보다는 경제대학, 생명과학대학, 공과대학 등 독립된 단과대학 형태가 많다. 비세그라드 그룹 국가 내 대학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자마자 적극적으로 외국 학생들을 유치하기 시작했으며[77] 의외로 상당히 많은 대학들이 영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폴란드 대학들에 다니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최근 경제발전과 외국인 투자 흐름 속에 국제학교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는데 수도인 바르샤바에 영미계 국제학교가 몇 군데 존재하며, 최근에는 브로츠와프에도 국제학교들이 설립되고 있는데 LG주재원의 자녀들 또한 브로츠와프에 있는 국제학교들로 들어가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국계 학생의 숫자가 비교적 다수에 속하고 졸업생 진학 대학 명단에 한국 대학들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다. 영국계 학교라고 못 박혀 있지 않는 한 대부분 IB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한 가지 특징이다.
17. 기타
등산이 매우 희귀한 취미에 속한다. 국토의 80%[78] 가 산인 한국과는 정반대로 폴란드는 국토의 90% 가량이 평야다. (그래서 농업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침략도 쉬워지기도 한다.) 고지대는 남부 끄트머리에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일부인 하이 타트라 지역이 전부이다.[79] 이 지역의 자코파네(Zakopane)는 폴란드 내에서 가장 붐비는 휴양지로 꼽히며, 주변에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하이 타트라가 유럽에선 상당히 높은 산맥인지라, 이 지역에 있는 폴란드 최고봉 리시(Rysy) 산은 높이가 2,503m나 되며, 다른 2,000m가 넘는 고봉들도 많다. 하지만 전체 국토에서 이 산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매우 작기 때문에 대부분의 폴란드인들은 살면서 산을 볼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등산 인구가 매우 적다.[80]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예지 쿠쿠츠카라는 희대의 먼치킨 산악인이 나오기도 했다.[81] 냉전 시절에는 폴란드인들이 등산을 하러 소련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82]
보드카의 원산지가 바로 폴란드. 현지에 가면 한국의 소주보다 저렴하며, 서유럽쪽의 와인처럼 흔하게 마신다.
아직까지 한국인들에게 관광으로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여행사를 통한다면 바르샤바, 크라쿠프 지역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들 중 비교적 치안이 안정적이며[83] , 볼거리도 있긴 하고 물가도 북쪽 국가들 중 그나마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인기 TV 프로그램 방영후 관심이 높아진 크로아티아 또는 체코처럼, 어느 순간 유행을 타고,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2018년 기준, 폴란드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4만4,007명이라고 한다.#
LOT 폴란드 항공에서 바르샤바-인천 직항 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2016년 개설)
동구권 국가들 중에서 젊은 세대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은 몇 안되는 나라들 중 하나다. 타 동유럽 국가들처럼 현지에는 한국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청년층도 제법 있으며, 한국으로 유학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간혹 한국의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폴란드산 도자기나 그릇 제품을 파는 행사를 볼 수 있으며,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폴란드산 멸균우유가 많이 보인다.
EBS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볼레스와비에츠(Boleslawiec) 도자기 마을'이란 곳이 있는데,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직후인 1990년대 초에 주독미군 가족들이 마을에 들러 도자기를 사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폴란드도 8월 15일이 공휴일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알겠지만 이 날은 성모승천대축일이다.[84]
버스 회사인 Solaris (구 네오플란) 가 있는 곳이며 폴란드 버스회사인 MPK에서 Citaro, MAN보다 네오플란 N4016/N4020/N4026/N4021/N4416/N4420/N4426/N4421이나 솔라리스사의 Urbino12/Urbino15/Urbino10.5/Urbino18가 널리 쓰이고 있다.
주한 폴란드 대사관은 경복궁 동쪽으로 바로 옆에 있다.
18.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폴란드
※ 해당국 작품 제외.
- 액티브 레이드 -기동강습실 제8계- - 에밀리아 에델만
-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 이클립스 - 에지 산다크
- 슈발체스마켄 - 실비아 쿠샤신스카
- 워게임 시리즈
- 폴란드볼 - 폴란드
- 풀 메탈 패닉! - 사비나 레프리오
- 블랙 서바이벌 - 루크
- Escape from Tarkov - 상인 피스키퍼
-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 맵 확장 DLC: Going East!
- 맵 모드: Poland Rebuilding, ProMods
- 레인보우 식스 시즈 - 조피아, 엘라
19. 설정상 폴란드와 관련이 있는 캐릭터
19세기말 러시아에 의해 분할통치되던 시기라 국적은 러시아였다.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1] 유럽 전역에선 9위. 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스페인-스웨덴-노르웨이-독일-핀란드-폴란드[2] 유럽 전역에선 8위. 러시아-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우크라이나-폴란드[3] 비셰그라드 4국의 인구는 6천만 명 가량으로서 독일을 제외한 다른 EU 대국들에 견줄 만하고 EU 총인구의 약 12%를 차지한다.[4] 이것도 엄청 성장한 것으로, 과거에는 중국보다 조금 낫고 멕시코와 비슷하던 시절이 있었다.[5] 옛 유고슬라비아는 인구는 되었지만 냉전 종식 이후 국가가 산산조각나면서 별 볼일 없는 동유럽의 약소국가들로 쪼개져 버렸고, 우크라이나도 인구는 많지만 경제력은 형편없다(물론 지하경제의 규모가 큰 것도 있다). 또 폴란드보다 잘 사는 체코나 발트 3국은 인구가 훨씬 적다.[6] 원래도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기는 했지만 성향이 확 깨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재집권 후로는 꽤나 골때리는 법을 통과시켜서 EU와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다만 복지정책을 확대하고 있고 경제도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라 구 사민당 성향 지지층을 대거 흡수한 덕택에 지지율은 나름대로 높은 편이다.[7] 이는 집권당인 법과 정의당이 강경보수정당이라 그렇다.[8] 현대 터키어로는 Polonya라고 하는데, 폴란드어는 여전히 Lehçe라고 부른다.[9] 종횡비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인도네시아와 모나코의 국기는 완전히 똑같다.[10] 폴란드 내에서 쓰이는 서게르만어파 언어로 독일어와 네덜란드어와 가깝다.[11]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폴란드는 유럽 지역 언어 및 소수언어 헌장에 서명했고 폴란드의 소수 언어에 러시아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12] 늙은 사람을 포함.[13] http://www.warsaw.climatemps.com/precipitation.php[14] 북쪽에 있는 것은 러시아와 리투아니아가 공유하는 쿠로니아 사주, 쿠로니아 석호이며, 길이가 약 95km에 달한다.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15] 발트해 근처에서 지류인 마르트바 비스와 강이 형성되어 그단스크로 흘러 들어간다. 이 강이 내륙으로 살짝 들어간 그단스크에 항구 기능을 부여한다.[16] 다만 대규모 석탄발전으로 인한 미세먼지 농도 증가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신문 (2017.01.02.) :´석탄 집착´ 폴란드 대기오염 중국 못지 않네[17] https://www.azomining.com/Article.aspx?ArticleID=126[18] 예로부터 폴란드는 유럽의 주요 소금 산지였는데, 1978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비엘리츠카(Wieliczka) 소금 광산이 유명했다. 이 광산은 700년 넘도록 채굴된 뒤 1996년 채산성 감소를 이유로 폐광하고 지금은 폴란드의 주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이 광산 외에도 이노브로츠와프(Inowrocław) 등에 현재까지 채굴하는 소금 광산이 여럿 있으며 2012년 기준으로 폴란드는 소금 425만 톤을 생산해 전 세계 소금 생산의 1.5%를 차지했다.[19] 폴란드어로 보예부츠트보(Województwo).[20] 포비아트(Powiat)[21] 그미나(Gmina).[22] 독일 슐레지엔의 서부 및 중부. 이후 슐레지엔 행정구역이 분할되었을 때는 그대로 니더슐레지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23]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동부 혹은 노이마르크(Neumark).[24]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갈리치엔(Galizien) 서부.[25]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 남부.[26]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포젠(Posen) 남부.[27] 폴란드어로는 '포모제 자호드니에'.[28] 독일에서는 그냥 포메른이었던 곳이다. 독일에서 의미하는 서포메른은 현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 속한 포어포메른(Vorpommern). 다만 현재 폴란드는 독일에서의 포메른을 서포메른으로,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이었던 곳을 포메른으로 부른다.[29] 독일에서는 슐레지엔 동부지방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에 우선적으로 뜯겼던 카토비츠(Kattowitz) 일대의 오버슐레지엔 남부기도 하다.[30] 독일의 도시명이기도 했고, 슐레지엔이 분할되었을 때 분할된 오버슐레지엔(Oberschlesien)전기 주도이기도 했다. 지역적으로는 슐레지엔 동부.[31]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 남부와 포젠(Posen) 북부가 합쳐져 있다.[32]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갈리치엔(Galizien) 중부.[33] 독일이 이 지역을 부르던 명칭은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이다. 독일 시절 포메른은 폴란드에서 '''서'''포메른으로 부르는 중.[34] 독일 브란덴부르크 동부, 특히 노이마르크의 중심도시였다.[35] 베스트프로이센의 주도였다.[36] 이 지역은 원래 폴스카 분할 당시에는 프로이센의 쥐트프로이센(Südpreußen)이었으나, 나폴레옹 몰락 이후 프로이센이 작센 왕국을 합병하는 대가로 로마노프 제국에 할양했다. 다만 주위 열강의 반대로 작센을 전부 합병하지는 못했는데 그래서 포젠이 1919년까지 도이칠란트 소속이었다.[37] 독일 슐레지엔, 이후 니더슐레지엔의 주도였던 도시다.[38] 독일 포젠의 북부 중심도시였다.[39] 독일 포메른의 주도이자 베를린의 외항이었던 도시다.[40] 독일 오스트프로이센의 남부 중심도시였다.[41] 독일 슐레지엔 서부의 주요도시였다.[42] 독일 슐레지엔 동남부의 국경도시이자 부유한 공업도시로 소문났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로 떨어져 나갔고,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재점령했을 때는 오버슐레지엔의 후기 주도를 맡기도 했다[43] 오스트리아-헝가리 갈리치엔의 주요도시였다.[44] 독일 베스트프로이센의 주요도시였다.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기도 하며, 그의 이름을 딴 코페르니쿠스 대학이 이곳에 있다.[45] 독일 제국 시대 포젠 시의 독일어 명칭.[46] 과거 베스트프로이센의 도시.[47] 나치의 수용소가 있었던 그 곳 맞다. 크라카우의 동쪽에 있다.[48]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헤벨리우스가 방패자리를 만들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소비에스키의 방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49] 현재 쓰이고 있는 공식 별자리 88개 중 육분의자리, 방패자리, 작은사자자리, 사냥개자리, 도마뱀자리, 살쾡이자리, 여우자리가 그가 탄생시킨 별자리들이다.[50] 특히 폴로늄은 폴란드의 이름을 따왔다.[51] 한국 가톨릭 신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세례명을 짓는 경우가 많다.[52] 이는 슬라브어권의 공통적인 문화적 특성으로, 꼭 폴란드만의 특징은 아니긴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아내도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면서 '푸치나(Poutina)'로 성이 바뀐 것도 한 예.[53] 잘 알려진 퀴리 부인도 결혼 전의 성은 스쿼도프스카였다. 이름은 역시 마리아.[54] http://stat.gov.pl/files/gfx/portalinformacyjny/pl/defaultaktualnosci/5515/2/9/1/rocznik_statystyczny_rp_2014.pdf[55] 2011 기준, http://www.pewforum.org/2011/12/19/table-christian-population-as-percentages-of-total-population-by-country/[56] 2011 기준, https://www.dzs.hr/Eng/censuses/census2011/results/htm/E01_01_10/e01_01_10_RH.html[57] 이 때문에 폴란드공은 만화에서 가톨릭 광신도로 자주 묘사된다. 해당 문서 참고[58] 사제나 수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59] 폴란드 정교회는 정교회 분열 사태 당시에도 러시아 정교회 측 입장을 지지했고 전부터 페미니즘·성소수자 관련 이론·운동에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폴란드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비유럽적' 성향이 강하다.[60] 폴란드에는 성공회 교세가 거의 없다. 주로 폴란드 체류 영국인을 위한 성공회 성당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통 가톨릭 성향 가톨릭 신자보다 숫자가 적을 정도로 미미하다. 사실 서유럽에서도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정교회나 심지어 전통 가톨릭보다도 교세가 약한 교단이 성공회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잉글랜드와 거리상 가까운 프랑스 북부 쪽이 가톨릭 신자보다는 적지만 그나마 성공회 신자가 많은 편이다. 성공회 신자들의 인구 자체로만 따지면 오히려 유럽보다는 다른 대륙들의 구 영국령 국가들이 훨씬 많은데, 미국과 영연방 왕국들을 제외한 다른 구 영국령 국가들의 성공회 신자들을 합쳐도 서유럽의 성공회 신자들보다 더 많다. 무슬림 인구가 중동보다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더 많은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61] 전통 가톨릭 단체 중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62] 사실 다른 공산국가들도 종교의 힘을 완전히 막는 데는 실패했다. 그나마 있었던 성과는 공산화 이전보다 세속주의자나 무신론자가 늘어난 것 정도. 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도 세속주의의 영향력이 특히 강하기로 유명한 체코와 에스토니아조차도 종교를 믿는 국민들이 0%가 되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은 상태다.[63] 그래서 리투아니아에도 의외로 개혁교회 예배당이 좀 있다.[64] 대표적인 인물이 율리우시 부르셰다.[65] 독일 제국은 자국 치하의 포젠에 사는 폴란드인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루터교회로 개종하도록 강요하였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때 러시아령 폴란드를 점령한 뒤에는 가톨릭을 믿는 대다수의 폴란드인들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실제 목적은 구 러시아령 폴란드 지역을 포젠처럼 독일화하려는 것이었지만) 구 러시아령 폴란드의 정교회 신자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폴란드의 가톨릭 신자들과 정교회 신자들이 조금의 이견도 없이 일치단결로 의견을 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독일 제국의 비개신교인 탄압에 대해 치를 떠는 것이다.[66] 지역 루터교단이 따로 존재하며 예배도 실롱스크 방언으로 진행된다.[67] 이들은 조상이 러시아 제국에 부역했거나, 부역까지는 아니지만 끝내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순응하고 정교회로 개종한 경우다.[68] 다르게 말하자면 당시 바르샤바가 러시아령 폴란드의 러시아화에 중추적인 곳이었던 셈이다.[69] 가톨릭의 힘을 막지 못한 폴란드 인민 공화국도 정교회, 개신교 등 다른 기독교 종파에 대한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70] 폴란드 내에서의 세가 정교회보다도 더욱 약해진 유대교가 한때 폴란드의 최대 소수 종교였고 정교회와 달리 폴란드 내에서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음을 감안하면, 정교회는 폴란드 내에서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 치고는 의외로 적지 않은 폴란드 국민들이 신봉하는 셈이다.[71] 그 중 이디시어를 구사할 줄 알고 유대인 정체성을 자각하고 있던 유대인은 약 325만여 명.[72] 9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73] 0.1% 미만. 현재 폴란드 내 유대인은 2만여 명이다.[74] 상술한 것처럼 폴란드의 정교회 신자는 약 50만 명인데, 약 2만 명인 폴란드 내 유대인보다 무려 25배나 많다![75] 1985년 제작된 홀로코스트 관련 다큐멘터리 쇼아를 보면 전쟁 때 버려진 채로 촬영 당시까지 다시 문을 열지 못한 채 방치된 유대교 시나고그를 볼 수 있다.[76] 폴란드어로는 'Związek Gmin Wyznaniowych Żydowskich w RP, and abbreviated, ZGWŻ'.[77] 이전 서술에 헝가리를 벤치마킹 하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체코, 폴란드, 헝가리 모두 비슷한 시기인 90년대 초반부터 외국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78] 그런데 산림청에서는 64%라고 발표했다. 이는 북한을 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산지 비율은 북한이 더 높다.) 그나마도 동고서저인 지형 때문에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도의 산지 비율이 수도권보다 높으며, 수도권의 산들은 신도시 개발로 사라져 가고 있다. 또한 카포스에서는 300m 이상에 지역기복량 300m 이상만 산지로 인정하므로 남한의 산지 비율은 31%밖에 안 된다.[79] 하이 타트라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이기도 한데, 하이 타트라의 대부분은 슬로바키아에 속한다.[80] 마르지에서는 집 주변에 산이 없어서 눈썰매를 타려면 멀리 가야 된다고 불평하는 장면도 나온다.[81] 예지 쿠쿠츠카는 하이 타트라에서 북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광산 도시 카토비체에서 태어났다.[82] 구소련의 산지로는 우랄 산맥, 캅카스 산맥, 알타이 산맥이 대표적이다.[83] 사실 EU-27 중에서도 치안이 꽤 좋은 편이다.[84] 폴란드와 같이 해당일에 휴일인 나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