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재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홍길재는 1888년 4월 20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전도사로, 1919년 3월 1월 수안읍 천도교구장 안봉하 및 나찬홍, 김영만(金永萬), 최용식, 이영철(李永喆), 홍석정, 한청일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이를 파악하고 주동자를 검거하자, 그는 몸을 피한 뒤 3월 3일 다시 천도교 교구 앞에 모여 2개의 대형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130여 명을 모아 만세를 부르며 금융조합 앞 큰 길을 지나 헌병분견대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흐르자 시위군중은 점점 증가했고 각지에서 천도교인 시위행렬이 읍내로 들어와 속속 합류하였다. 시위 군중들은 다시 헌병분견소로 진출하여 빨리 물러나라고 요구하였다. 결국 헌병이 무차별 발포를 하면서 시위대열이 무너졌다. 그러나 오후 1시경 다시 만세시위가 감행되었다. 헌병대가 다시 발포를 시작하면서 이날 9명이 죽고 18명이 다쳤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는 원판결 중 소요는 취소되었으나 징역 1년 3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1월 29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홍길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