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황후 왕씨

 





孝景皇后 王氏
전한 경제의 2번째 황후이자 다음 황제인 무제의 어머니. 이름은 왕지(王)이다.
아버지는 왕중(王仲)이고, 어머니는 고조 시기에 연왕으로 있다가 반란을 일으켜 죽은 장도(臧荼)의 손녀 장아(臧兒)다. 장아는 왕중의 처가 되어 아들 왕신(王信)과 딸 왕지, 왕아후(王兒姁) 자매를 낳았는데 왕중이 요절했다. 그래서 장릉 전씨에게 재가하여 전분(田蚡)과 전승(田勝) 형제를 낳았다.
왕지는 젊어서 김왕손(金王孫)이란 사람과 결혼하여 속(俗)이라는 이름의 딸을 낳았다. 그런데 어머니 장아가 어느 날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가 '당신의 두 딸이 모두 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장아는 왕지를 데려온 뒤 김왕손에게 왕지와 이혼하라고 요구했으나, 김왕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장아는 왕지를 태자궁에 입궁시켜서 자동으로 이혼하게 만들어버렸다(...). 당시 황태자였던 경제는 왕지를 대단히 총애하여 세 딸을 낳았고, 다음으로 태양이 왕지의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마침내 황자를 낳으니 그가 무제이다. 왕지보다 먼저 입궁한 왕지의 친여동생 왕아후도 경제의 후궁이 되어 황자 4명을 낳았다.
원래 경제의 황후였던 효경황후 박씨는 슬하에 소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총애를 받지 못하다가 마침내 폐위되었다. 새 황후로 가장 유력한 건 경제의 장남이자 태자인 유영(劉榮)을 낳은 후궁 율희(栗姬)였는데, 그녀는 경제의 동복누이인 관도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공주는 경제에게 '율희가 황후의 자리를 멋대로 넘보고 있다'고 고발하면서 왕지가 황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경제 전7(기원전 150)년, 마침내 왕지는 황후가 되었고, 교동왕이었던 아들 유철도 황태자가 되었다. 이후 경제가 사망하고 무제가 즉위하자 왕지는 황태후가 되었고, 왕지의 어머니 장아도 평원군(平原君)으로 봉해지고 형제들도 봉작을 받았다. 특히 전분은 이후 무안후로 봉해지고 승상이 되었다.[1]
한편 왕지가 김왕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속은 민간에 숨어살고 있었는데, 무제가 즉위한 이후 한언(韓嫣)이 속의 존재에 대해 알렸다. 무제는 속을 몸소 맞이하여 데려오려고 하였는데, 속이 두려운 나머지 숨자 어렵게 찾아내어 "누님은 어찌 그리 숨어버리셨습니까."라며 달래어 황태후에게 알현시켰다. 또한 속에게 재산과 수성군(修成君)이라는 칭호를 주어 예우하였다.
왕지는 원삭(元朔) 3(기원전 126)년에 사망하였고, 경제와 양릉(陽陵)에 합장되었다.

[1] 그러나 무제의 뜻을 받들어 무제의 형인 율태자를 지지했던 위기후 두영(효문황후 두씨의 조카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웠다)을 모함해 죽였는데, 전분이 그후 병들었다가 두영의 귀신이 복수하러 왔다며 잘못했다고 울부짖다가 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