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용이론

 

1. 개요
2. 역사
3. 내용
3.1. 기수적 효용
3.2. 서수적 효용
4. 비판
5. 같이 보기


1. 개요


Utility Theory.
사람이 느끼는 효용을 어떻게 표현하고 측정하여 다루는가에 대한 이론이다.
과거에는 제레미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사용한 기수적 효용이 주로 쓰였다. 기수적 효용(cardinal utility)이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어떤 수준의 효용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서수적 효용(ordinal utility)은 효용수준은 몇배 더 높다가 아닌 높다와 낮다를 나타내는 지표로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에는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서수적 효용(ordinal utility)을 주로 사용한다. 이쪽이 더 다양한 상황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배 한 갑은 나에게 4의 효용이 있고, 피자 한 조각은 나에게 8의 효용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때 기수적 효용을 가정/사용하면, 담배 2갑은 피자 1조각과 같아진다. 그러나 서수적 효용을 채택한다면 피자 한 조각이 담배 한 갑보다 낫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 이것이 담배 몇 갑과 교환되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2. 역사


19세기 후반기에 발생하여 노동가치론과 대립하였다.
이것은 윌리엄 제본스(William Javons; 영국), 레온 왈라스(Léon Walras; 스위스), 칼 멩거(Carl Menger), 프리드리히 폰 비저(Friedrich von Wieser), 와 오이겐 뵘바베르크(Eugen Böhn-Bawerk; 오스트리아)등의 저작들에서 상술되었다.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소위 오스트리아학파라 불리는 학파를 형성했다. 이들의 분석은 사용가치나 효용 그리고 그것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해석에 중심을 둔다. 모든 것의 가치는 그것의 ‘한계효용’, 즉 주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마지막 단위의 효용으로부터 추론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교환은 교환가치가 아니라, 유용물과 직접적으로 상관관계를 맺을 자격을 갖는 사용가치에 기반한다.
그 후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두 분파로 갈라졌다. 전통적 입장을 고수하는 ‘기수적 효용이론파’는 ‘한계효용’의 절대적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1], ‘서수적 효용이론파’는 한계효용의 절대적 크기를 즉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호의 서수적 배열을 조사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를 주장했다.[2]

3. 내용


효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기 위해선 먼저 경제학적인 가정, 즉 '합리적 인간'에 대한 가정을 먼저 알아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인간이란 완비성(completeness)과 이행성(transitivity)을 충족하는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다. 이때 완비성은 서로 다른 상품조합 A와 B 중에서 자기가 둘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는 가정이고[3], 이행성이란 A, B, C의 상품묶음 중에 A를 B보다 더 좋아하고 B를 C보다 더 좋아하면 A를 C보다 더 좋아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이러한 두 가정을 하에서, 그럼 사람들이 상품묶음 A를 B보다 우선시하게 만들고 또한 A,B,C 사이의 이행성을 만들어내는 그 어떤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효용이라는 개념으로, 사람들이 어떤 상품묶음 A와 B 중에서 A를 선택하는 행위, 또는 사람들의 선호, 선호도에 대한 판단, 가치 또는 그와 유사한 식으로 표현되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바로 효용 이론이다. 즉 효용이란 용어는 소비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서 얻는 만족, 기쁨, 희열과 같은 것이라고 나타낼 수 있다.

3.1. 기수적 효용


그런데 이는 실제로는 성격상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한계효용학파들은 분석의 편의를 위하여 효용의 측정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였다. 예를 들어, 사과와 배를 하나씩 먹을 때 그로부터 얻은 만족감을 각각, 10단위, 5단위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를 비교하여 사과로부터 얻은 효용이 배로부터 얻은 효용의 2배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계효용이다. 그들은 소비자가 사과를 1개, 2개, 3개를 먹을 때 각각의 효용이 감소한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어 예시를 들어보겠다.
'''효용표'''
소비량
1개째
2개째
3개째
4개째
5개째
각각의 효용
20
15
10
5
0
총효용
20
35
45
50
50
그러면 이때 한계효용은 무엇인가. 극도로 단순화시켜보자. 만약 한국에서 사과를 3개만 생산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3개만을 먹을 수 있다. 이때 3개가 먹을 수 있는 한계량이 되고, 그리고 이것이 가치[4]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가령 사과는 10원에 팔린다고 치자. 소비하는 “마지막 단위의 효용의 크기”, 즉 한계효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5개가 공급이 되면 마지막 단위의 효용(한계효용)은 0이 되고, 가격도 0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이것으로 이른바 “아담스미스의 역설(효용이 큰 물이나 공기는 거의 공짜지만, 효용은 별로 없는 다이아몬드는 가격이 높다)”을 해명했다고 주장한다.
'물'을 예로 들자면 물이 주는 총효용은 크지만 존재량이 많아서 추가로 소비하는 데 따른 한계효용이 따라서 시장가격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다이아몬드는 희소하기 때문에 한계효용이 높아서 가격이 높다는 것이다.[5]
이를 다시 설명해 보자. 위에서 제시한 효용표를 물의 효용표라고 가정하자. 물은 효용이 크지만 풍부해서 5단위(개) 이상 공급된다. 따라서 5단위 이상을 소비할 수 있고 그때 총효용은 50이 된다. 그러나 가격(가치)는 총효용이 아니라 마지막 단위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그것은 0이 된다.
'''효용표'''
소비량
1개째
2개째
각각의 효용
10
5
총효용
10
15
반면 이렇게 고유한 상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이아몬드는 희소해서 2개만이 공급된다. 따라서 마지막 2개째의 소비에 의해서 효용이 결정되고, 이것이 가격을 결정한다. 그것은 5이고, 가격은 이것에 의해서 가령 5원이 되어 물에 비해 가격이 높아진다.

3.2. 서수적 효용


또한 상술한 기수적 효용 개념이 아닌 서수적 효용 개념을 통해 더욱 폭 넓은 분석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노동가치론의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의 투입이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필수불가결적인 요소라고 가정하는 상황에서 역시 상술한 물과 다이아몬드의 가격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물은 생산하는 비용이 지극히 적은 반면 다이아몬드는 생산하기 힘든 자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다이아몬드가 널려있고 물이 희소한 경우,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급락하고 물이 희소해진다는 설명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예를들어 앤디 워홀의 팝아트나 극단적으로는 샘(마르셀 뒤샹) 같은 경우는 노동가치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공장에서 수천수만개씩 찍어 나오는 변기에 마르셀 뒤샹의 서명 하나만 더해졌을 뿐인데 가격이 수십억으로 치솟는 경우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서수적 효용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 물건에 대해 특정 상품묶음 조합보다 더 월등한 선호를 나타내기 때문에 그만큼의 효용을 지닌다고 표현할 수 있다. 가령 사과를 몇 백 상자를 가져다 줘도 마르셀 뒤샹의 샘을 사과 몇 백 상자와 바꾸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과 몇 백 상자라는 상품묶음보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상품묶음 하나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가 더 높다. 또한 이런 선택은 같은 상황이 몇 번을 반복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셀 뒤샹의 샘이 그만큼의 효용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으며, 사과 한 상자가 가지는 선호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기수적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예술 작품의 효용표를 임시의 수치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효용표'''
현대예술
1작품
각각의 효용
100
총효용
100
사과박스와 같은 두 상품에 대한 효용표가 있다고 할 때, 현대예술 1작품이 가져다 주는 효용이 100이라고 해서 사과 4상자가 가져다주는 효용의 2배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현대예술이 가져다주는 효용이 사과 4상자의 효용보다는 높다는 것 뿐이며, 또한 사과 4상자의 효용과 5상자의 효용 간에 차이가 없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효용함수적으로 나타내는 효용의 크기상으로는 2배 차이일 뿐인 사과상자와 현대예술이 사과 4상자의 가격은 몇 만원 수준에 불과하고 현대예술은 몇십억 원에 달하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도 한계효용에 따른 가격결정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현대예술 작품이라도 그 작품이 수백수천개씩 찍어져 나온다면 개별 예술작품의 가치는 점점 내려갈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생산하기에는 무지막지한 노동이 투입되나 막상 큰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우도 설명할 수 있다. 가령 한때 논란이 된 적 있는 슈즈 트리의 경우, 설치에 들어간 비용을 따로 생각하고 봐도 신발이 3만여 족이나 들어가는 초대형 작업물이다. 신발 3만 족의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자원은 분명 막대한 양이다. 그러나 시민 개개인이 그 완성품에 대해 느끼는 효용수준이 낮은 경우 - 즉, 슈즈트리를 내 집 마당에 설치할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사과나무를 심을것인가?에 대해서 개개인이 사과나무를 선호하는 경우 - 결과적으로는 슈즈 트리의 효용이 사과나무만도 못하다는 설명을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정량적인 비교는 불가능할지언정 최소한 둘 사이에 어느 쪽의 효용이 더 높은지에 대한 비교는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수적 효용 개념을 채택함으로써 효용함수는 '단조증가 변환이 가능하다'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효용함수가 선호관계를 왜곡시키지 않고 제대로 나타내기만 하면 함수의 형태를 다른 함수로 바꾸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즉, 어떤 사람의 x재와 y재에 대한 효용함수 f(u) = (xy)^1/2라고 할 때, f(u) = xy라고 적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상단의 기수적 효용으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x재 10개와 y재 10개를 소비할때 전자의 효용함수는 10이 나오고 후자의 효용함수는 100이 나오는데, 10배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 둘이 같은 효용을 나타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수적 효용에서는, x재 10개와 y재 10개의 효용이 x재 9개와 y재 10개의 효용보다 크다는 것을 나타낼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함수를 바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현대예술이나 슈즈트리에 대한 '개개인이 느끼는 효용'이 전부 제각각이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대해선 아래 두 가지 비판 문단에서 서술한다.

4. 비판


상술한 '합리적 인간'의 가정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람이 언제나 완비성과 이행성의 가정을 만족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행성의 가정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짜장면을 짬뽕보다 좋아하고, 짬뽕을 군만두보다 좋아하면 그 사람은 짜장면과 군만두라는 선택지만 주어졌을 때 항상 짜장면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느껴본 적 있듯 그러한 상황 하에서도 군만두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6] 또한 주어진 예산 안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상 가능한 모든 상품묶음을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완비성을 충족시키는 선택을 항상 내리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가령, 한달 월급이 250만원인 한 직장인이 그 25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고려하여 그 중에서 최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걸 잠깐만 고민해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결국 그 250만 원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상품조합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7]
효용이라는 개념 자체는 분명 강력한 도구이나 위의 두 가지 개념이 충족된 상황에서만 가능한 설명이기에, 이에 대한 도전이 계속 있어왔고 최근에는 행동경제학이 합리성 가정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인간은 여러 심리적 영향을 받아 제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며, 따라서 합리성이 언제나 지켜진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기존 경제학계에서는 개별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그 개별 인간들의 편향성이 인간 집단의 측면으로 확대할 경우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모델을 세울 때는 합리적인 인간을 가정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종의 큰 수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디까지나 '개인'의 측면에서 판단하는 선호에 따른 개념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는 이론이다 보니, 사회 전체적으로 가치가 구성되는 무언가에 대해선 제대로 된 측정을 하기 어렵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주로 예술계나 복지 등 여타의 사회과학 학문과 접촉한 경제학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경제학이 타 학문과의 학제간 연구, 비판적으로는 타 학문에 대한 침범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생기는 논란.

5. 같이 보기




[1] 영국의 알프레드 마샬 Alfred Marshall 등[2] 영국의 존 힉스 John Hicks, 미국의 폴 사뮤엘슨 Paul Samuelson 등[3] 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 위해 주로 상품 a와 b라는 두 가지 상품으로 환원하여 설명하지만, 상품 a,b,c,...,x,y,z의 일정 갯수만큼의 상품묶음 A와 B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경제학은 상품 두 가지에 대한 단순한 상황만을 가정하므로 상품 여러개가 놓인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박은 가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잘못된 비판이다. 다만 '현실의 상품조합이 무수히 많은 상황이므로 현실에서 완비성을 만족하는 선택을 내리기 어렵다'는 비판은 비슷해보이지만 타당한 비판이 될 수 있는데, 이는 하술.[4] E. K. 헌트 외,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홍기빈 역, 시대의창, 2015, p. 970. 원문은 미제스, 미제스, ≪반-자본주의 정신(The Anti-Capitalistic Mentality )≫, 뉴욕: Van Nostrand, 1956, pp.40-41.[5] 최인식, ≪경제학 원론≫(개정판), 청목출판사, 2013, p.110[6] 물론 이에 대해 ceteris paribus하지 않았기에 선택이 달라졌다는 변명은 가능하지만, 서술 편의상 그 부분은 생략하고 넘어가도록 한다.[7] 물론 이 역시 정보 검색비용을 고려하면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마찬가지로 서술 편의상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