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AFC 아시안컵 이란

 


1. 개요
2. 예선전
2.1. 서부지역 예선 1그룹
2.2. 서부지역 예선 2그룹
2.3. 중부지역 예선
2.4. 동부지역 예선
3. 결승 리그
3.1. 1경기 이란 2 - 0 홍콩
3.2. 2경기 중화민국 1 - 1 버마
3.3. 3경기 홍콩 1 - 6 이스라엘
3.4. 4경기 이란 4 - 0 중화민국
3.5. 5경기 버마 1 - 0 이스라엘
3.6. 제 6경기 홍콩 1 - 1 중화민국
3.7. 제 7경기 버마 1 - 3 이란
3.8. 제 8경기 이스라엘 4 - 1 중화민국
3.9. 제 9경기 버마 2 - 0 홍콩
3.10. 제 10경기 이란 2 - 1 이스라엘
4. 결과
5. 이야깃거리


1. 개요


1968년 5월 10일부터 5월 19일까지 이란 제국의 수도인 테헤란에 위치한 샤히드 쉬루디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대회 방식은 리그전으로 유지되지만,본선 진출국은 4개국에서 5개국으로 증가하였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아시안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대회이자 이스라엘이 AFC회원국으로 참가하는 마지막 아시안컵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최국 이란은 개최국 자격으로 처음 본선에 올랐다.

2. 예선전


지난번과 같이 총 4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예선이 진행되었으나, 지난번 대회와 동일하게 한 지역이 여러가지 이유로 사라지게 되어서, 결과적으로는 3개의 그룹으로 진행되었다.
취소선은 기권국가, 첫 예선 출전은 진한표시
  • 서부지역 1그룹 : 이란, 이스라엘, , [1]
  • 서부지역 2그룹 : 버마, 캄보디아 왕국, 인도, 파키스탄,
  • 중부지역 :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공화국, 태국
  • 동부지역 :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중화민국, 대한민국

2.1. 서부지역 예선 1그룹


이란은 개최국이라 애초에 참가가 결정되었고,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왕국, 그리고 AFC신규가입국인 쿠웨이트가 처음으로 예선 참가를 했으나, 아프가니스탄 왕국과 쿠웨이트가 기권하면서, 디펜딩 챔피언 이스라엘이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2.2. 서부지역 예선 2그룹


영국령 실론이 기권하여 4팀의 풀리그로 본선진출국가가 결정되었다.
대회는 1967년 11월 12일~19일까지 버마 랑군에서 개최되었다.

경기결과
원정
버마
2 - 0
인도
캄보디아
1 - 0
파키스탄
파키스탄
1 - 1
인도
버마
1 - 0
캄보디아
캄보디아
3 - 1
인도
버마
2 - 0
파키스탄
홈팀 버마는 지난 대회 준우승팀 인도를 첫경기부터 완파, 캄보디아와 파키스탄도 내리 꺾으며 홈버프를 제대로 업은채 3승으로 첫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2] 당초 기대를 모았던 인도는, 첫경기에서 지고, 라이벌 파키스탄과도 비기더니, 캄보디아에게도 3-1로 지는 졸전을 펼치며 최하위로 예선탈락. 캄보디아는 버마에 당한 패배로 첫진출이 실패했다. 파키스탄은 뭐....인도랑 똑같은 상황.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승점
'''1'''
버마
3
3
0
0
5
0
6
'''2'''
캄보디아
3
2
0
1
4
2
4
'''3'''
파키스탄
3
0
1
2
1
4
1
'''4'''
인도
3
0
1
2
2
6
1
버마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2.3. 중부지역 예선


지난 대회에 이어 홍콩은 여전히 중부지역에 속했다. 절대 이곳에 있어야할 인도네시아가 오히려 동부지역에 속하게 되었고, 초대 대회 개최도 홍콩에서 한 만큼, 초창기 홍콩의 행정력이 매우 강했음이 시사되었다.
지역예선 대회도 1967년 3월 22일에서 4월 2일까지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경기결과
원정
홍콩
2 - 0
베트남 공화국
말레이시아
0 - 0
싱가포르
태국
0 - 1
베트남 공화국
태국
4 - 1
싱가포르
홍콩
3 - 1
말레이시아
베트남 공화국
0 - 1
말레이시아
홍콩
2 - 0
싱가포르
태국
1 - 0
말레이시아
홍콩
2 - 0
태국
베트남 공화국
3 - 0
싱가포르
홈팀 홍콩은 첫경기부터 베트남 공화국에게 완승을 거두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까지 연이어 격파를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본선에 진출한다. [3] 나머지 네 나라는 그야말로 들러리. 이중에서도 말레야 연방이 말레이시아로 바뀌면서 앙숙이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경기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승점
'''1'''
홍콩
4
4
0
0
9
1
8
'''2'''
태국
4
2
0
2
5
4
4
'''3'''
베트남 공화국
4
2
0
2
4
4
4
'''4'''
말레이시아
4
1
1
2
4
5
3
'''5'''
싱가포르
4
0
1
3
2
10
1
홍콩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2.4. 동부지역 예선


일본이 처음으로 기권을 하지 않으며 예선에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역시 석연찮게 첫 출전을 동부지역에서 하게 되었다. 예선은 1967년 7월 27일~8월 7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장소는 중화민국의 수도 타이페이였다.

경기결과
원정
중화민국
2 - 2
일본
대한민국
1 - 1
인도네시아
중화민국
9 - 0
필리핀
일본
2 - 1
대한민국
대만
3 - 2
인도네시아
일본
2 - 0
필리핀
일본
2 - 1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7 - 0
필리핀
중화민국
1 - 0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6 - 0
필리핀
예선 개최국의 홈버프를 듬뿍 받은 중화민국과 드디어 아시안컵에서 모습을 드러난 일본과의 대결은 2-2 무승부로 끝났고, 대한민국은 어이없게도 인도네시아와 1-1로 비기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중화민국이 필리핀을 9-0으로 대파했고, 같은날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한일전에서 2-1로 패배하는 굴욕을 맞보게 되면서 본선진출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일본과 대한민국은 승승 장구했으며, 대한민국은 필리핀을 7-0으로 꺾으면서 드디어 첫승리를 거뒀지만, 중화민국에게 패배하며 처음으로 아시안컵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3승 1무 승점 7점의 동률을 이뤘으나, 9-0승리 덕분에 중화민국의 골득실차가 압도적으로 높았기에, 중화민국이 드디어 첫 본선무대에 발을 디뎠고, 일본은 아쉬움을 뒤로한채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4]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승점
'''1'''
중화민국
4
3
1
0
15
4
7
'''2'''
일본
4
3
1
0
8
4
7
'''3'''
대한민국
4
1
1
2
9
4
3
'''4'''
인도네시아
4
1
1
2
10
6
3
'''5'''
필리핀
4
0
0
4
0
24
0
중화민국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3. 결승 리그


5개팀의 풀리그로 진행되었으며 모두 테헤란의 샤히드 쉬루디 경기장에서 열렸다.

3.1. 1경기 이란 2 - 0 홍콩


1968년 5월 10일
개최국 이란과 행정력으로 본선에 올라온 홍콩의 경기는 전반전까지는 무득점으로 진행되었으나, 후반에 베자디와 자바리의 연이은 골로 홈팀이 승리를 거뒀다.

3.2. 2경기 중화민국 1 - 1 버마


1968년 5월 11일
양팀다 대회 첫 출전이었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도 경험해본 팀이라 기대를 모은 경기. 버마의 마웅 라 떼의 선취골에 중화민국은 림 류 슈어의 골로 응수했고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며 대회 첫 승점 획득에 만족하게 되었다.

3.3. 3경기 홍콩 1 - 6 이스라엘


1968년 5월 12일
디펜딩 챔피언 이스라엘은 정말 강력했다. 스파이글러와 슈피겔, 로마노가 각각 2골씩 몰아치며 행정력 만땅의 홍콩을 박살내며 위용을 과시했다. 유안 콴 이크의 골로 영패를 모면했을 뿐.

3.4. 4경기 이란 4 - 0 중화민국


1968년 5월 13일
홈팀 이란은 숨겨왔던 실력을 전 아시아에 내뿜었다. 베자디, 칼라니, 에페카리, 파자미의 릴레이골로 50년대 아시아 최강팀이었고 60년대 다시 부활의 기지개를 펴던 중화민국을 그야말로 박살냈다.

3.5. 5경기 버마 1 - 0 이스라엘


1968년 5월 14일.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지난 대회 챔피언과의 대결이었고, 우승 1회 준우승 2회의 엄청난 성적을 보여준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못하고 버마에게 패배하게 되었다. 전반 종료직전 터진 수크 바하두르의 골을 잘지킨 버마는 대회 첫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3.6. 제 6경기 홍콩 1 - 1 중화민국


1968년 5월 15일.
중국 없는 중국더비. 중화민국의 로 콱 타이, 홍콩의 리 쿽퀑의 골로 승점 1점에 만족해야했다.

3.7. 제 7경기 버마 1 - 3 이란


1968년 5월 16일
결과적으로 보면 우승이 결정난 무패팀간의 대결로, 홈팀 이란이 칼라니, 에페카리, 베자디의 연속골로 아웅 키가 한골로 분전한 아시안 게임 금메달 리스트 버마를 잠재웠다.

3.8. 제 8경기 이스라엘 4 - 1 중화민국


1968년 5월 17일
지난 경기의 충격패를 극복한 이스라엘은 로마노의 두골, 로젠탈, 슈피겔의 연속골로 승리를 따냈다. 리 환 옌의 한골에 그친 중화민국의 성적으로 알수 있는건, 동부지역의 암흑기가 도래함이었다. 중화민국은 이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본선 진출이 되었다.

3.9. 제 9경기 버마 2 - 0 홍콩


버마는 홍콩을 싱겁게 꺾으며, 준우승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 승점 5점을 쌓게 되었고, 10경기의 결과에 따라서, 2위냐 3위냐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대회가 버마의 마지막 본선 경기가 되었다.

3.10. 제 10경기 이란 2 - 1 이스라엘


이란은 승점 6점, 이스라엘은 승점 4점. 이란은 9득점 1실점, 이스라엘은 10득점 3실점으로 이란이 득실도 1점 앞서는 상황이었다. 이스라엘로서는 두골차 승리를 하면 역전우승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후반 56분 슈피겔의 대회 4호골이 터지며 이란의 3만관중은 침묵에 빠지고, 이스라엘은 역전우승을 위해 한골을 더노리게 되었다. 그러나 홈팀의 호마윤 베자디 역시 대회 4호골을 터뜨리며 이스라엘을 압박했고, 겔리치카니가 한골더 보태며 개최국의 완벽한 전승우승을 이끌어냈다.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승점
'''1'''
이란
4
4
0
0
11
2
8
'''2'''
버마
4
2
1
1
5
4
5
'''3'''
이스라엘
4
2
0
2
11
5
4
'''4'''
대만
4
0
2
2
3
10
2
'''5'''
홍콩
4
0
1
3
2
11
1
<color=#373a3c> '''1968 AFC 아시안컵 우승'''
[image]
'''이란'''
첫 번째 우승
이란이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4.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color=#373a3c> 1
<color=#373a3c> 이란
<color=#373a3c> 4
<color=#373a3c> 4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11
<color=#373a3c> 2
<color=#373a3c> +9
<color=#373a3c> '''8'''
<color=#373a3c> '''우승'''
2
버마
4
2
1
1
5
4
+1
'''5'''
준우승
3
이스라엘
4
2
0
2
11
5
+6
'''4'''
3위
<color=#373a3c> 4
<color=#373a3c> 대만
<color=#373a3c> 4
<color=#373a3c> 0
<color=#373a3c> 2
<color=#373a3c> 2
<color=#373a3c> 3
<color=#373a3c> 10
<color=#373a3c> -7
<color=#373a3c> '''2'''
<color=#373a3c> 4위
5
홍콩
4
0
1
3
2
11
-9
'''1'''
5위
  • 득점왕 : 호마윤 베자디(1942~2016)(이란), 기오라 슈피겔(1947~)(이스라엘), 모셰 로마노(1946~)(이스라엘) 4골

5. 이야깃거리


  • 이란, 버마, 대만이 첫본선 진출을 하게 되었다. 이란은 개최국으로서 첫 진출이라는 머쓱한 진출이었지만, 4전 전승의 압도적인 경기내용으로 우승을 했다.
  • 버마의 최전성기로,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1968년 이대회 준우승,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의 강호로 군림한다.
  • 일본은 골득실로 인해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대한민국을 이길 정도로 전력이 좋았고, 이점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 획득으로 확인 사살.
  • 상기했듯이 이스라엘이 마지막으로 본선진출한 대회다. 이후 1970년 월드컵에 진출하며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고, 1972년 대회는 불참. 그리고 1974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은 치뤘으나, 1976년 AFC에서 퇴출되어 OFC에서 활동하다 1991년에아 UEFA에 소속이 된다. 1978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은 AFC에 소속되었고, 이게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AFC기록이다.
  • 상기 했듯이 홍콩은 지난 대회부터 지역예선에서 꼼수를 쓰기 시작해서 본선에 진출했지만, 본선에서 실력 자체가 부족함이 드러났고, 다음 대회에도 중부지역으로 출장하지만, 거기서도.....홍콩은 이후 단 한번도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1] 1961년 독립이후, AFC에 가입하여 첫 출전을 했으나, 기권으로 첫 경기는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2] 버마는 1966년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딴 신흥 강호였고, 다음 아시안 게임인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딸정도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3] 과연 이팀이 동부지역에 있었으면 본선에 진출했을까 의심이 드는건 분명하다. 이미 초대대회 본선이나, 2회대회 예선에서 홍콩은 동부지역의 팀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음이 드러났다.[4] 그러나 1년뒤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