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계 전동차
1. 개요
国鉄73系電車
73계 전동차는 일본국유철도에서 개발한 직류 가선 집전식 통근형 전동차이다.
73계 전동차는 63계의 후속형이라는 의미와 함께 63계의 체급인 20미터 4도어 규격을 채용하는 전동차 형식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흔히 알려진 72계 전동차도 사실상 73계에 해당한다.
2. 개발 배경
전쟁 말과 전쟁 후의 일본에서는 갑자기 올라간 철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63계 전동차를 마구잡이로 생산한다. 다만,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가능한 자재라는 자재는 다 모아서, 심지어 목재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며 전동차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것들을 굴린다. 오히려 초기형의 경우에는 그럭저럭 쓸만한 물건이었으나, 전쟁 후 생산 분량은 목재로 땜빵을 해가며까지 운행을 했고, 일본국유철도는 "사정이 더 여유로워지면."만을 계속 타령하던 때였다.
그런데 1951년, 당대 최악의 열차 참사인 사쿠라기초 사고가 터지고, 연이어 온갖 결함으로 인한 사고란 사고는 다 나면서, 결국 돈이 많이 들어도 어떻게든 신성능 전동차를, 제대로 만든다는 이념으로 63계의 개수형인 73계의 개발에 성공한다.
63계에도 적용된 사항이긴 하지만, 전쟁 이후의 급부상한 철도 수요로 인한 통근형 전동차의 필요로 인해, 롱시트 배열 및 화장실을 설계에서 빼는 등 여러모로 일본 통근형 전동차의 기초라고 볼 수 있는 차량.
3. 세부 형식
3.1. 초기형, 반(半)금속 차량
초기 생산분은 완전한 금속으로 만든 차량이 아니었다. 내부에는 여전히 목재 내장재를 사용하는 등, 여전히 전쟁 직후의 63계 제작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조 차량 기준으로 72000번대는 모하 72형(모터차량), 79000번대는 쿠하 79형(객차)로 명명되었다.
모하 72형에는 팬터그래프가 설치되었으며, 오직 한 쪽만 설치되었다[1] .
3.1.1. 1952/1953년 생산분
차량 번호 모하 72500~72512번, 그리고 쿠하 79300~79314번(짝수 번호만), 총 21량이 1952년 생산분에 해당된다. 창틀, 전두부 형태 등이 목재를 사용하였고, 그 이외의 차체는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하였다.
차량 번호 모하 72513~72552번, 그리고 쿠하 79316~79352번(짝수 번호만), 총 59량이 1953년 생산분에 해당한다. 전두부 창틀 및 측면 유리창에 처음으로 고무 테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 중 79350번, 79352번은 전두부 창이 약 5도 가량 경사지게 설계되는 테스트를 거친다[2] .
두 해간 총 80량이 생산되었다.
3.1.2. 1954/1955년 생산분
차량 번호 모하 72553~72609번, 쿠하 79354~79390번(짝수 번호만), 그리고 쿠하 79301~79335번(홀수 번호만), 총 94량이 1954년 생산분에 해당한다. 모하 72형에 해당하는 모하72553번~72609번의 총 57량은 1953년 이전 생산분에 장착되던 2kW 전동기 대신 3kW 전동기를 장착하였으며, 외관은 크게 바뀐 점이 없었다. 쿠하 79형의 경우에는 1953년 생산분 2량에 테스트하던 5도 경사 전두부 유리창을 정식으로 채용하였고, 경사도 5도가 아닌 10도로 덜 가파른 모습으로 나왔다. 이 형태는 이후에 개발된 신성능 전동차인 101계 전동차와 103계 전동차들에도 적용된다.
차량 번호 모하 72610~72648번, 쿠하 79392~79420번(짝수 번호만), 그리고 쿠하 79337~79387번(홀수 번호만), 총 80량이 1955년 생산분에 해당한다. 1955년 생산분부터 선풍기가 객차 내에 설치되었으며, 모하 72형의 경우에는, 차량기지 내에서 편성에서 차량을 분리 한 후에도 이동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간이운전대를 설치했다[3] .
두 해간 총 174량이 생산되었다.
3.1.3. 1956년 생산분
1956년에는 159량이 생산되었으며, 총 2차례에 걸쳐서 생산되었다.
1차차에는 차량 번호 모하 72649~72685번, 쿠하 79422~79436번(짝수 번호만), 그리고 쿠하 79389~79419(홀수 번호만), 총 61량이 해당된다. 1955년 생산형과 비교하자면, 전두부 헤드라이트가 약간 위로 조금 올라간 점을 제외하면 큰 차이는 없다.
2차차에는 차량 번호 모하 72686~72718번, 모하 72850~72864번, 쿠하 79438~79448(짝수 번호만), 그리고 쿠하 79421~79467번(홀수 번호만), 총 98량이 해당된다. 1차차 및 그 이전 생산분과 비교하면, 천정 곡면의 곡선이 약간 완만해지면서 평천장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고, 일부 차량은 타카오역 근처에 있는 터널의 건축 한계로 인한 좁은 터널에 대응하기 위해 차체 천정이 약간 더 낮아진 형태로 만들어졌다. 또한, 모하 72형의 경우 DT20형 대차로 교체 장착되었다.
3.2. 63계 개수형
사쿠라기초 사고 이후로 일본국유철도는 차량의 취약점에 대응하기 위해 엄청난 대수선을 실시했고, 이들을 73계로 편입시킨다. 행해진 개조는 팬터그래프 및 전원장치 등 회로에 절연장치를 더 설치하는 것, 그리고 천정에 얹은 나무 합판(!)을 떼고 철판으로 교체한 것, 그리고 차량 중간 문을 설치하고 슬라이딩 도어를 장착한 것이다. 그 이외에도, 급하게나마 출입문 수동개폐장치 조작법을 적어 놓는 등 다시는 사고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절실함을 보여가며 개조를 행하였다. 개조 후 이들은 사하 78형 300번대(사하 78300번대), 그리고 쿠하 79형 (79100번~79250번)으로 이적되었다.
3.3. 후기형 - 1956~1957년 최후 생산분(72계 920번대)
최후 생산분들은 차체에 노출된 리벳이 줄어들고, 전두부를 강철로 만듬으로서 사실상 완전한 금속 차량이 되었다. 이런 차량들은 사실상 외형 및 조괘식 전동차라는 점만 제외하면 사실상 101계와 103계에 가까운 형태를 띄는 차량들이었다.
1956년에 9량의 차량이 시작차(試作車)이자 양산 선행차로서 만들어졌으며, 모하 72920~72924번, 쿠하 79920~79923번이 이에 해당했다. 시운전 및 영업 운전 후, 1956년 말부터 1957년까지 68량의 양산형들이 생산되었고, 모하 72925~72963번, 쿠하 79924 - 79948번, 쿠하 79949~79955번(홀수 번호만)이 이에 해당했다.
3.4. 개수형(72계 970번대)
1974년에 등장한 73계의 개조 형식이다. 다름이 아닌, 이들이 받은 개조는 103계 고운전대 차량의 전두부와 측면 출입문 개조를 통해, 사실상 103계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등장 초창기에는 센세키선에서 주력으로 운행하다 1985년 카와고에선으로 이적하여 폐차된 101계의 대차 및 부품을 재활용하여 103계 3000번대로 개조되어 2005년(...)이 돼서야 퇴역하였다.
3.5. 그 이외의 개조형들
지방에서 이용하기 위해 2비차 단편성(양면 전두부 장착)으로 개조를 하거나, 우편 전용 또는 우편 및 여객 겸용 차량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그 이외에도, 미노부선에서 운행하기 위해 113계와 같은 형태를 가진 모하 62형, 그리고 쿠하 66계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외부 형태 개조 이외에도, 모터카나 팬터그래프를 장착한 차량의 전력장치를 철거하고 사하(무동력객차)형식으로 개조한 경우도 있었다.
쿠모하 84계는 무려 '''JR화 이후'''인 1988년에 등장한 72계의 개조형이다. 72계를 개조한 소화물용 차량이었던 쿠모니 83계를 다시 여객용으로 개조시켜 우노선과 혼시비산선에서 운행되었으며, 1996년까지 운행하였다.
매우 당연하게도 등장 시기가 1950년대 초반인 만큼, 오래된 차량답게 현재는 모든 개조형들이 운행에서 퇴출된 상황이다. 만약 지금도 운행했다면...
4. 같이 보기
[1] 서울 지하철 극초창기인 1974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운행하던 차량인 초저항 차량의 경우에도 이를 따라 차량의 한쪽에만 팬터그래프를 한 대만 설치했다.[2] 마치 103계 전두부 운전실 유리창 유리가 뒤로 약간 기울어진 형태와 같다.[3] 팬터그래프가 없는 한쪽에만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