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02
'''F-102 델타 대거(Delta Dagger)'''
1. 제원
2. 개발
냉전 초기 소련의 전략폭격기 전력은 미국 본토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위협이였고 미 공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각종 폭격기들을 개발하는 한편 본토로 들어오는 폭격기 편대를 요격하는 방공공군을 창설하여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였다. F-102 델타 대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 공군 최초로 순수 요격을 목적으로 개발된 전투기이다. 이 뾰족하고 날카롭게 생긴 삼각날개를 가진 전투기는 1949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F-86/89, F-94 등의 제공전투기와 요격기가 개발되던 시기였다. 미 공군은 이들 전투기의 차세대급 전투기는 15,000m 이상의 운용고도와 초음속 요격능력이 있는 기종이었다. 이랬던 것이 1950년 9월에 운용고도 20,000m, 마하1.3에서의 요격이 가능하도록 성능을 상향조정하라는 요구와 1955~59년 사이에 개발을 완료하라는 미 공군의 압박이 있었다.구체적인 후보선정에 앞서 휴즈사는 XM-1179라 명명된 FCS의 개발을 시작하였고 공군은 총 19개사가 제시한 기종들을 살펴보며 고심하였다. 결국 1951년 Convair사의 F-102 요격기 안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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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air사의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1948년 9월에 최초비행한 XF-92A라는 전투기가 모체였는데 이는 델타익 전투기로서 세계최초로 비행한 델타익 전투기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1] Convair사의 안은 이 XF-92A보다 1.5배 대형화되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이런 수평미익이 없는 델타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또한 Convair사는 미 공군의 성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사일을 내부에 수납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3. 시제기
미 공군은 YF-102 2대와 양산형 25대를 발주하여 1959년 안에 후딱 해치우려는 의지를 보여 시제1호기가 1953년 10월 24일에 첫 비행을 성공시키지만 정확히 8일후에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직후 추락하는 바람에 1954년 시제2호기가 완성되기까지 시험비행은 지연되었다. 여기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는데... 시제2호기의 시험비행에 앞서 풍동시험 도중 F-102의 외형 때문에 초음속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Convair사의 설계팀은 F-102의 재설계에 착수하였다. 구체적인 개수사항은 이렇다.
- 동체 2m 연장
- 캐노피 형상 변경 (3각형)
- 주익과 수직미익의 후퇴
- 앞전후퇴각 60도로 변경
- 주익 앞전에 코니컬 커버 신설
- 주익 상면에 경계층 패널 신설
- 좀더 추력이 높은 P&W사의 J57 엔진 채택
- 면적법칙의 적용
왼쪽은 면적법칙 적용 이전 모델인 YF-102, 오른쪽은 면적법칙이 적용된 YF-102A. 콜라병처럼 동체 가운데가 오목하게 설계된 것을 볼 수 있다. 항공역학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기체기도 하다.
특히 이 면적법칙은 YF-102의 속도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것은 항력이 동체와 날개의 단면적의 합으로서 이루어저야 한다는 법칙이다. 따라서 면적법칙을 적용시키면 큰 항력이 발생하는 날개와 동채의 연결부위를 오목하게 만들어서 동체의 단면적에 날개의 단면적을 흡수시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대수술 끝에 재탄생한 F-102는 다시금 1954년 12월 20일 첫비행에 성공하고 이윽고 초음속 비행에도 성공하여 원래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4. 양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F-102A는 시제기에 비해 업그레이드 된 곳이 많은데 살펴보면 휴즈사에서 개발한 MG-10 FCS가 기수에 장착되었다. 이것은 광역수색성능과 완전자동추적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캐노피에는 IR센서가 장착되었고 방공공군에 투입되는 기체들은 SAGE와의 링크를 위해 ARR-39 링크 시스템을 장비하였다. 무장을 보면 내부의 미사일 수납고에 빔 라이딩/적외선추적방식의 GAR-1(AIM-4A/C)공대공 미사일 3발과 미사일 창의 측면 안쪽에 2.75인치 공대공 로켓탄 24발을 수용하였다. 그러다가 2.75인치 로켓탄은 폐지되고 AIM-4E/F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AIM-26 지니 1발을 탑재하게 된다. F-102A는 1956년 제327요격비행대대에 최초로 배치되어 총 875대가 양산된다.
훈련형은 조종훈련과 기량유지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하게 Side by Side의 형태이다. 기수의 FCS는 제거되어있고 길이는 19.21m로 축소된 반면 중량은 12,600 kg으로 증가하였다. 훈련형의 제식명칭은 TF-102A이고 총 111대가 양산되었다.
5. 실전
1968년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면서 남한/미국과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일본의 나하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제82요격비행대대의 F-102가 오산 공군기지로 임시 파견되기도 하였고 1971년 까지 일본과 남한을 오가며 북한의 견제세력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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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위장 도색을 칠한 F-102
F-102는 단일목적 전투기인 관계로 주로 요격임무에만 투입되었는데 나중에는 B-52를 엄호하는 호위기로 점차 변경되어서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다. 북폭임무를 맡은 B-52와 함께 들어가던 F-102가 MiG-21에 격추되어 버리자 F-102는 고성능의 요격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되어 점차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편 그리스와 터키는 F-102를 가지고 서로 공중전을 하기도 하였다.
6. 퇴역
F-102는 1970년에 전 기체가 모두 일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후계기 성격으로 등장한 F-4 팬텀과 F-106 델타 다트의 요격성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이후 F-102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 QF-102로 활약아닌 활약을 하며 AIM-120의 표적이 되어 하나둘씩 사라져 버렸고 일부는 F-102를 보유한 터키와 그리스의 후속지원용 부품으로 하나 둘씩 뜯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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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세계 최초로 AIM-120에 격추된 전투기가 바로 무인 표적기로 개조된 QF-102A이다. 1982년 뉴멕시코 White Sands에서 F-16이 발사한 AIM-120 암람에 격추되는 모습.
7. 둘러보기
[1] 그러나 마하의 벽은 못 넘겼다(...) 결국 엔진을 바꾸어 초음속 비행에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