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K 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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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전역 이후 30톤이 넘는 전차의 효용성이 부적합하다는 전훈을 받아들인 독일군은 당시 개발중이었던 VK 65.01과 80톤급 '포전차'의 개발을 중단하고 대신 종전에 헨셸이 개발했던 VK 30.01(H)의 차체를 강화하고 거기에 80톤급 포전차의 10,5cm 곡사포 포탑을 경량화해 탑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1941년 10,5cm 주포의 대전차화력이 지적되면서 구경감소포 탑재시도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포르셰의 VK 30.01(P)에 패배했으나 VK 30.01(1939) 계획과 VK 36.01 계획이 종료되고 이를 계승한 VK 45.01 계획에서 헨셸의 VK 45.01(H)가 포르셰의 VK 45.01(P)를 누르고 제식화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2. 제원
3. 상세
1939년 독일군은 B1 전차 등을 위시로 하는 프랑스군의 중전차전력에 대응코자 3가지 중전차개발계획을 세웠다. 우선 앞서 1937년부터 진행되었던 헨쉘사의 전선돌파차량을 VK 30.01 (H)로 도입했고, 50mm급 대전차포에 대응코자 80mm의 장갑을 두른 VK 65.01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10,5cm 28구경장 곡사포를 탑재하고 100mm의 장갑을 두른 80톤급 알틸레리바겐(Artilleriewagen), '포전차'의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프랑스 침공에서의 전훈으로 30톤급 이상의 전차들은 전술적으로 무용지물이라고 판단한 독일군은 VK 65.01과 '포전차' 계획을 모두 파기하고 대신 포전차의 10,5cm 곡사포 포탑을 경량화하여 장갑을 강화한 VK 30.01 (H)의 차체에 탑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1940년 7월 VK 36.01 계획을 시작하였다. 독일군은 측후면의 장갑을 종전의 VK 30.01 (H)처럼 50mm로 유지하되 전면장갑을 80mm로 보강하고 주포로 '포전차'의 10,5cm 곡사포를 탑재할것을 주문하였다.
헨쉘사는 30.01의 설계를 개수하여 개발에 착수했으나, 1939년 말 VK 30.01(1939) 계획에 뛰어든 포르쉐사가 8,8cm 주포를 도입한 VK 30.01 (P)를 내놓으면서 곤경에 처했다. 10,5cm 주포의 대전차화력이 지적되었지만 VK 36.01의 포탑은 1939년의 '포전차' 계획에서 가져온 구형으로 포르쉐사처럼 8,8cm 주포를 탑재할수 없었고, 호구지책으로 7,5/5,5cm 구경감소포가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나 히틀러가 '자원수급이 가능하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여버리면서 사실상 VK 36.01은 각하되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헨쉘과 포르쉐 양사에 전면장갑을 100mm로 증강할 것, 주포의 관통력을 보강할 것등의 주문과 함께 개발을 계속 진행하도록 지령하면서 헨쉘사는 VK 45.01 계획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VK 36.01을 바탕으로 티거 전차를 개발한다. 한편 VK 36.01가 VK 45.01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10,5cm 주포의 탑재는 포기되었고 전면장갑이 100mm, 측면장갑이 60mm로 보강되었다.
4.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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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탱크에서 6티어 중전차로 등장.
평균 데미지 220(Flak 8,8cm/56 기준) / 체력 950(PC), 1100(모바일). 블리츠 기준으로 6티 탱크중에서 쿠로모리미네와 더불어 체력이 2위다. 1위는 1400 체력의 토 오그
[1] 문서마다 PaK 41 또는 Waffe 0725라고 다르게 지칭함. 포 자체는 같은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