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
[image]
2006년
[image]
2016년
공식 홈페이지
'''데뷔 후 최단기간 NHK홍백가합전 출연 기록과 최다 길거리 라이브 관람객 동원 기록에 빛나는 싱어송라이터 듀오'''[1]
'''2000년대 쟈니스의 견제에 맞서 활동할 수 있던 유일한 남성그룹'''[2]
일본의 남자 2인조 포크밴드.
그룹이름은 둘의 이름인 Wentz and Teppei의 머릿글자에서 따왔으며 와트라고 읽는다.
작사작곡을 직접 하는 싱어송라이터 듀오로 주로 작사는 웬츠 에이지, 작곡은 코이케 텟페이가 맡는다.
일본에서 멀티 엔터테이너는 흔하디 흔하긴 하지만, 둘 다 밴드가 메이저로 올라오기 전에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다.
ウエンツ 瑛士. 1985년 10월 8일생. 아버지가 독일계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으로 혼혈. 아역 배우로 데뷔했으며 메이저 데뷔이전에 고쿠센등의 드라마에 출연했었다.
小池 徹平. 1986년 1월 5일생. 2002년에 드라마로 데뷔했으며 2005년 고쿠센2로 인지도를 크게 높였고 같은 해, 와트가 메이저 입성을 하게 된다.
코이케 텟페이와 웬츠 에이지에 의해 결성되어 매주 일요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길거리 공연를 시작한다.
여름합숙 이후부터 작사작곡을 시작해 오리지널 곡으로 활동하게 되고 이후 WaT라는 그룹명을 만들게 된다.
길거리 공연으로 1000명대의 관객들이 모여 대혼란으로 인해 이후 길거리 공연을 중단한다.
2월 18일 인디 싱글 '졸업TIME'을 발매하며 인디 데뷔.
2월 20일 이케부쿠로 선샤인 분수 광장에서 열린 인디 데뷔 이벤트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5,000명이 넘는 팬들이 모여 최다 길거리 라이브 관람객 동원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11개 메이저 음반사들의 쟁탈전 끝에 유니버설 뮤직 에서 메이저 데뷔가 결정된다.
11월 2일 1st 싱글 '내 마음'으로 메이저 데뷔. 오리콘 첫 등장 2 위를 기록.
12월 31일 제 56회 NHK 홍백가합전 에 '내 마음'으로 첫 출전하게 되면서 당시 기준 '1개월 29일'이라는 역대 홍백가합전 데뷔 후 사상 최단기간 출전 기록을 세우게 된다.[3][4] 이때 노래를 부르는 도중 마이크가 넘어져 마이크없이 생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3월 1일 1st 앨범 '졸업 TIME~ 우리의 시작 ~'을 발표.
첫 전국 투어 라이브 「WaT ENTERTAINMENT SHOW 2006 ACT "do"LIVE Vol.4」를 실시한다.
2006 배구 세계 선수권 대회 공식 서포터로 발탁.
제 43 회 2005 년 골든 애로우 상 신인상 수상.
제 20 회 2005 년도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뉴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 수상.
제 39 회 베스트 히트 가요제 최우수 신인상 수상.
제 39 회 일본 유선 대상 특별상 수상.
제 48 회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수상.
제 57 회 NHK 홍백가합전에 '5cm'로 2 년 연속 출전.
2월 14일 코이케 텟페이가 싱글 '너에게 보내는 노래'로 솔로 데뷔.
4월 25일 웬츠 에이지가 싱글 'Awaking Emotion 8/5'로 솔로 데뷔.
제 58회 NHK 홍백가합전에 'Awaking Emotion 8/5', '너에게 보내는 노래' , '내 마음'으로 3년 연속 출전.
제 59회 NHK 홍백가합전에 '36 ℃'로 4년 연속 출전.
2010년 싱글 24/7〜もう一度〜를 마지막으로 가수로서의 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이후 코이케 텟페이는 배우로서, 웬츠 에이지는 탤런트로서 개인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2015년 2월 가수활동 복귀를 발표하지만 2015년 12월 개별 활동이 주체가 되어 음악에 100% 집중할 수 없음을 이유로 해체를 선언하게 되고, 2016년 2월 마지막 앨범인 '졸업BEST'를 끝으로 결국 해체하게 된다.
이미 5년간 해체없이 개인활동을 계속 해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언젠가 앨범 출시가 있을것같은 분위기로 사기를 치는것이 싫었다"고.
음악을 그만 두는거냐는 질문에는 "솔로 활동은 계속 할 것"이라고 답변했고 재결성은 없냐는 질문에는 "없지 않다"고 답변해 재결성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2006년
[image]
2016년
공식 홈페이지
'''데뷔 후 최단기간 NHK홍백가합전 출연 기록과 최다 길거리 라이브 관람객 동원 기록에 빛나는 싱어송라이터 듀오'''[1]
'''2000년대 쟈니스의 견제에 맞서 활동할 수 있던 유일한 남성그룹'''[2]
1. 개요
일본의 남자 2인조 포크밴드.
그룹이름은 둘의 이름인 Wentz and Teppei의 머릿글자에서 따왔으며 와트라고 읽는다.
작사작곡을 직접 하는 싱어송라이터 듀오로 주로 작사는 웬츠 에이지, 작곡은 코이케 텟페이가 맡는다.
일본에서 멀티 엔터테이너는 흔하디 흔하긴 하지만, 둘 다 밴드가 메이저로 올라오기 전에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다.
2. 멤버
2.1. 웬츠 에이지
ウエンツ 瑛士. 1985년 10월 8일생. 아버지가 독일계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으로 혼혈. 아역 배우로 데뷔했으며 메이저 데뷔이전에 고쿠센등의 드라마에 출연했었다.
2.2. 코이케 텟페이
小池 徹平. 1986년 1월 5일생. 2002년에 드라마로 데뷔했으며 2005년 고쿠센2로 인지도를 크게 높였고 같은 해, 와트가 메이저 입성을 하게 된다.
3. 활동
3.1. 2002년
코이케 텟페이와 웬츠 에이지에 의해 결성되어 매주 일요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길거리 공연를 시작한다.
여름합숙 이후부터 작사작곡을 시작해 오리지널 곡으로 활동하게 되고 이후 WaT라는 그룹명을 만들게 된다.
3.2. 2003년
길거리 공연으로 1000명대의 관객들이 모여 대혼란으로 인해 이후 길거리 공연을 중단한다.
3.3. 2004년
2월 18일 인디 싱글 '졸업TIME'을 발매하며 인디 데뷔.
2월 20일 이케부쿠로 선샤인 분수 광장에서 열린 인디 데뷔 이벤트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5,000명이 넘는 팬들이 모여 최다 길거리 라이브 관람객 동원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3.4. 2005년
11개 메이저 음반사들의 쟁탈전 끝에 유니버설 뮤직 에서 메이저 데뷔가 결정된다.
11월 2일 1st 싱글 '내 마음'으로 메이저 데뷔. 오리콘 첫 등장 2 위를 기록.
12월 31일 제 56회 NHK 홍백가합전 에 '내 마음'으로 첫 출전하게 되면서 당시 기준 '1개월 29일'이라는 역대 홍백가합전 데뷔 후 사상 최단기간 출전 기록을 세우게 된다.[3][4] 이때 노래를 부르는 도중 마이크가 넘어져 마이크없이 생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3.5. 2006년
3월 1일 1st 앨범 '졸업 TIME~ 우리의 시작 ~'을 발표.
첫 전국 투어 라이브 「WaT ENTERTAINMENT SHOW 2006 ACT "do"LIVE Vol.4」를 실시한다.
2006 배구 세계 선수권 대회 공식 서포터로 발탁.
제 43 회 2005 년 골든 애로우 상 신인상 수상.
제 20 회 2005 년도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뉴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 수상.
제 39 회 베스트 히트 가요제 최우수 신인상 수상.
제 39 회 일본 유선 대상 특별상 수상.
제 48 회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수상.
제 57 회 NHK 홍백가합전에 '5cm'로 2 년 연속 출전.
3.6. 2007년
2월 14일 코이케 텟페이가 싱글 '너에게 보내는 노래'로 솔로 데뷔.
4월 25일 웬츠 에이지가 싱글 'Awaking Emotion 8/5'로 솔로 데뷔.
제 58회 NHK 홍백가합전에 'Awaking Emotion 8/5', '너에게 보내는 노래' , '내 마음'으로 3년 연속 출전.
3.7. 2008년
제 59회 NHK 홍백가합전에 '36 ℃'로 4년 연속 출전.
3.8. 2010년
2010년 싱글 24/7〜もう一度〜를 마지막으로 가수로서의 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이후 코이케 텟페이는 배우로서, 웬츠 에이지는 탤런트로서 개인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3.9. 2015년
2015년 2월 가수활동 복귀를 발표하지만 2015년 12월 개별 활동이 주체가 되어 음악에 100% 집중할 수 없음을 이유로 해체를 선언하게 되고, 2016년 2월 마지막 앨범인 '졸업BEST'를 끝으로 결국 해체하게 된다.
이미 5년간 해체없이 개인활동을 계속 해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언젠가 앨범 출시가 있을것같은 분위기로 사기를 치는것이 싫었다"고.
음악을 그만 두는거냐는 질문에는 "솔로 활동은 계속 할 것"이라고 답변했고 재결성은 없냐는 질문에는 "없지 않다"고 답변해 재결성의 여지를 열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