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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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인명별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었던 인명 중, 가나다순으로 가장 순서가 빠른 사람.
딴지일보에서 서울 인명별 전화번호부를 뒤져 공식 인증을 했다. 해당 딴지일보 기사 아카이브
딴지일보에서는 이분을 '가갑선 대인'이라 칭했다. 당시에 확인한 바로는 가갑선 대인은 서울 인명별 전화번호부를 79년부터 82년까지 ''''제패''''했으나, 그 후 발간된 서울 인명별 전화번호부에서는 행방이 묘연해, '''매너리즘에 빠진 가갑선 대인이 전화비를 내지 않아 전화가 끊겼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1]
2021년 현재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후에 들어온 제보로, 가각현 대인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구글로 검색하면 어느 바둑 기사에 '가각현'이라는 이름이 검색된다. 태안군바둑협회에 속한 아마추어 유단자라고 언급된다. 만약 인명별 전화번호부에 등재된다면 가나다 순에 의해서 가장 앞에 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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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갑선 대인보다 먼저 평정한 이가 있으니 바로 가갑손 대인이다. 위 이미지에 나오는 1973년도 전화번호부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1979년도 전화번호부에서는 가갑선 대인의 등장으로 2위로 밀려 났었다. 그후 가갑선 대인이 자취를 감추면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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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65년 한국화약에 입사해 1996년 퇴사 시까지 태평개발 이사, 한국프라스틱공업 이사, 빙그레 상무, 골든벨상사 상무, 태평양건설 상무, 한화유통 대표이사 사장, 그리고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한화그룹에서 거의 커리어를 쌓아갔고, 1987~1991년까지 진로그룹에 몸담으며 1989년 청주원프라자 인수를 주도했다. 1998년 진로그룹으로부터 청주진로백화점을 인수 후 '청주백화점'으로 변경하고 2002년 '청주패밀리'란 신규법인을 세워 운영권도 양수했다가, 2006년 청백을 롯데쇼핑에 넘기고 현재도 메트로패밀리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4년 평택의 모 결혼식장에서 그가 보낸 화환이 목격 되었다고 한다.
1938년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에 성균관대 법률학과 58학번으로,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성균관대 강사로 강의하기도 한 상법학자다. 2021년 현재 성균관대 법학관 지하 2층에는 "가갑손 기념 열람실"이 있다.
그 아래로는 가갑선, 가갑손 2인 체제의 그늘에 가려 언급조차 안되고 있는 가경자, 가경출 등이 있다.
위 딴지일보 기사에서 조사한 인명별 전화번호부는 서울판으로 서울 지역 전화번호만 수록된 것이므로 전국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또, 사실 인명별 전화번호부에 수록된 성명은 유선전화에 가입한 명의자 본인만 해당되므로, 공동체가 같이 사용하는 유선전화 특성상 다른 구성원들의 성명은 빠져 있다.
즉, 주민등록이나 호적(가족관계등록부)과 같이 전 국민이 반영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갑선 대인보다 가나다 순으로 앞서는 이름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휴대 전화, 인터넷 전화의 보급 및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인명별 전화번호부는 더 이상 발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화번호부를 기준으로 한 가갑선 대인의 기록은 앞으로 깨질 수 없게 되었다.
1. 개요
서울특별시 인명별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었던 인명 중, 가나다순으로 가장 순서가 빠른 사람.
딴지일보에서 서울 인명별 전화번호부를 뒤져 공식 인증을 했다. 해당 딴지일보 기사 아카이브
딴지일보에서는 이분을 '가갑선 대인'이라 칭했다. 당시에 확인한 바로는 가갑선 대인은 서울 인명별 전화번호부를 79년부터 82년까지 ''''제패''''했으나, 그 후 발간된 서울 인명별 전화번호부에서는 행방이 묘연해, '''매너리즘에 빠진 가갑선 대인이 전화비를 내지 않아 전화가 끊겼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1]
2021년 현재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2. 기타
2.1. 가각현
후에 들어온 제보로, 가각현 대인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구글로 검색하면 어느 바둑 기사에 '가각현'이라는 이름이 검색된다. 태안군바둑협회에 속한 아마추어 유단자라고 언급된다. 만약 인명별 전화번호부에 등재된다면 가나다 순에 의해서 가장 앞에 올 가능성이 높다.
2.2. 가갑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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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갑선 대인보다 먼저 평정한 이가 있으니 바로 가갑손 대인이다. 위 이미지에 나오는 1973년도 전화번호부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1979년도 전화번호부에서는 가갑선 대인의 등장으로 2위로 밀려 났었다. 그후 가갑선 대인이 자취를 감추면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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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65년 한국화약에 입사해 1996년 퇴사 시까지 태평개발 이사, 한국프라스틱공업 이사, 빙그레 상무, 골든벨상사 상무, 태평양건설 상무, 한화유통 대표이사 사장, 그리고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한화그룹에서 거의 커리어를 쌓아갔고, 1987~1991년까지 진로그룹에 몸담으며 1989년 청주원프라자 인수를 주도했다. 1998년 진로그룹으로부터 청주진로백화점을 인수 후 '청주백화점'으로 변경하고 2002년 '청주패밀리'란 신규법인을 세워 운영권도 양수했다가, 2006년 청백을 롯데쇼핑에 넘기고 현재도 메트로패밀리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4년 평택의 모 결혼식장에서 그가 보낸 화환이 목격 되었다고 한다.
1938년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에 성균관대 법률학과 58학번으로,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성균관대 강사로 강의하기도 한 상법학자다. 2021년 현재 성균관대 법학관 지하 2층에는 "가갑손 기념 열람실"이 있다.
2.3. 그 외
그 아래로는 가갑선, 가갑손 2인 체제의 그늘에 가려 언급조차 안되고 있는 가경자, 가경출 등이 있다.
3. 여담
위 딴지일보 기사에서 조사한 인명별 전화번호부는 서울판으로 서울 지역 전화번호만 수록된 것이므로 전국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또, 사실 인명별 전화번호부에 수록된 성명은 유선전화에 가입한 명의자 본인만 해당되므로, 공동체가 같이 사용하는 유선전화 특성상 다른 구성원들의 성명은 빠져 있다.
즉, 주민등록이나 호적(가족관계등록부)과 같이 전 국민이 반영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갑선 대인보다 가나다 순으로 앞서는 이름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휴대 전화, 인터넷 전화의 보급 및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인명별 전화번호부는 더 이상 발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화번호부를 기준으로 한 가갑선 대인의 기록은 앞으로 깨질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