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투르 눈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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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갈투르.
1. 개요
1999년 2월 23일 오스트리아 갈투르에서 눈사태가 발생해 관광객과 현지인 3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2. 갈투르
갈투르는 알프스 산맥에 있는 유명한 겨울 휴양지로 알프스 절벽이 마을의 3면을 둘러싼 경치를 자랑하며, 그중 하나는 해발 2,754m 나 되는 그리스코프 산이었다. 거기다 산들에는 가파른 스키 슬로프들이 가득해 성수기에는 일주일에 4천 명이 찾아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스키 슬로프 중 하나다. 특히 '''현관을 열고 나가자마자 스키를 탈수 있는 환경'''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곳은 겨울엔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눈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3면이 산이어서 눈사태가 일어나면 특히 위험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눈사태 위험지역을 3가지 색깔로 분류해 마을을 둘러싼 가장 위험한 지역인 붉은 지역에는 건물을 짓지 않았고, 위험 가능성이 있는 노란 지역에는 가옥과 호텔을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었다. 중심부인 녹색지역은 눈사태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지대로 여겨져서 주택가를 지었다. 이곳은 이전까지는 눈사태가 내려온 적이 없었다.
1999년 1월 29일에서 2월 4일까지 때 아니게 포근했고, 2월 17일부터 2주간 눈이 내렸다. 적설량은 무려 3.8m에 달했고, 이는 갈투르의 2월 평균량보다 '''6배'''나 많은 양이었다. 그리스코프산에는 하루에 15cm씩 눈이 쌓였다. 정부에선 혹한 경보를 발령하고 슬로프를 폐쇄했고, 2월 18일에는 눈사태 조짐이 보이자 정부에서 갈투르 마을의 유일한 길을 차단해 4천여 명이 갇혔다.
날씨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악화되었고, 강풍은 시속 120km로 불었다. 2월 23일 아침 7시에는 마을 대표가 비상대착반의 긴급회의를 소집해 눈사태 가능성이 높다 판단해 전 지역에 눈사태 경보 중 최고 위험수준인 5등급을 발령했다. 3면이 산이라 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는 눈사태가 마을로 내려온 적이 없어서 공식적으로는 안전한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마을 위원회는 사람들이 경계선 안에 머무는 한 안전하다 판단했다.
하지만 산에는 눈이 계속해서 쌓이면서 소규모 눈사태가 발생하고 있었고, 100년만에 가장 심한 폭설이 와 '''하루에 30cm'''라는 어마어마한 양이 오면서 오후 3시 59분, '''대규모 눈사태가 일어났다.''' 마을의 집이 흔들리고 100m의 눈사태가 마을을 덮쳤다. 오후 4시 1분에는 안전하다 판단되었던 마을 중심부까지 닥치고 4시 2분에 눈사태가 마을 중심부로 100m 가량 들어선 후에야 멈추었다. 차들이 박살나고 일부 건물은 무너져 내렸다. 주민들은 생존자 수색작업을 시작하고 눈을 찔러가며 생존자를 찾아나섰다.[1]
마을 대표는 40km 떨어진 이 지역 행정중심지 란데크에 응급서비스를 요청했고, 헬기가 대기하지만 눈보라가 심해서 출동하지 못해 봉사자들이 직접 구조해야 했다. 오후 5시까지 구조작업이 지연되고 시간이 늘면서 희생자만 늘어났다. 수색견까지 도입했고, 다음날 새벽엔 눈보라가 그쳐서 구조헬기까지 동원이 가능했으나 피해가 너무 커서 당국은 전 주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미군과 독일군까지 블랙호크기를 동원해가며 구조를 도왔지만 결국 3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 여성은 차량과 같이 묻히면서 공기층이 커져서 오래 생존한 뒤 구출되기도 했지만 이 여성만이 특이사례였고 대부분은 눈사태 당시 충격으로 사망하거나 눈에 묻힌 채 질식사했다.
3. 원인 조사
과학자들은 갈투르에서 눈사태가 있었던 150년간의 자료 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위험지대를 선정했으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해 원인이 뭔지 조사했다. 우선적으로 균열 지역(눈사태가 처음 발생한 지역)을 조사한 결과 높이는 4.5m 가량이었고, 눈사태 무게가 약 '''17만 톤'''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1999년 1월 26일 북부 이탈리아의 저기압으로 알프스에 4일간 폭설과 동시에 찬 공기의 고기압 전선이 북극지방에서 내려왔고, 둘이 충돌했다. 저온전선이 따뜻하고 습기찬 전선을 만난 엄청난 폭설을 만들었고, 비슷한 날씨 조건이 2월에도 계속되면서 강설량은 3.8m에 달했고, 평소의 6배 위력의 눈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1월 27일과 2월 23일 사이에 강한 북서풍이 갈투르 지역을 강타해 산 위에 시속 120km의 바람이 불면서 순식간에 눈 30톤이 쌓였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러면서 산등성이에 추가로 눈이 2m가량 더 쌓였고, 원래는 이 정도로 커지기 전에 떨어져 나가야 하지만 얼음결정이 약한 층에서 평소보다 응집이 커졌다. 1월 29일과 2월 4일에 기온이 영하 20도에서 영상 4도로 오르면서 눈이 녹았고, 2월 5일에 다시 영하로 내려가면서 얼어붙어 응집이 강해지고 결국 이러한 참사를 부른 것으로 결론났다.
4. 사고 이후
과학자들은 앞으로 200년간은 이러한 일이 없을 거라 말했으나 산골마을 관청은 그래도 모르니 마을을 보호할 두께 2m 길이 260m, 높이 7m의 눈사태 방어벽을 건설했고, 산등성이에 11km의 담장을 세워 거대한 눈판이 안 쌓이게 만들었다.
[1] 빨리 찾지 못하면 안의 눈이 얼어붙으면서 생존자가 질식사 할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