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나이트클럽 사장 피살사건

 



1. 개요
2. 유동 인구가 많은 극장 앞 거리에서의 싸움과 살인
2.1. 싸움의 원인?
3. 당시 경찰의 수사망
3.1. 4년만에 검거, 하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박사문


1. 개요


2008년 9월 9일 밤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시네시티 극장 앞 노상에서 두 사람[1]이 싸우다가 해남십계파 조폭이 흉기로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다.

2. 유동 인구가 많은 극장 앞 거리에서의 싸움과 살인


2008년 9월 9일 밤 11시 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시네시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아주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해남십계파 조폭 박사문(39)[2]과 나이트클럽 사장 김모(41)씨[3][4]가 말다툼 끝에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다가 박사문이 결국 흉기를 휘둘러 김씨를 살해하고 말았다.

2.1. 싸움의 원인?


박사문과 김씨는 한 코스닥 기업에 거액을 공동으로 투자한 뒤에 서로 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는데,[5]경찰은 개인적인 채무 관계 때문에 이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러나 둘 다 조직폭력배지만 서로 다른 소속일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김씨가 대형 나이트 클럽의 사장인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조폭들 사이의 이권 다툼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경찰은 코스닥 기업에서도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3. 당시 경찰의 수사망


박사문의 주소지인 강남구 역삼동과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수사를 벌여왔으나, 검거에 실패해 2009년부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박사문을 올리기까지 했었음에도 불구하고,[6] 4년동안 박사문을 잡지 못했다.

3.1. 4년만에 검거, 하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박사문


박사문은 결국 2012년 11월 5일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의 유료 주차장에서 해남경찰서 수사과 김성혁 경사에 의해 검거되었다. 검거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1년, 강남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의 추적을 피해 잠적한 박사문이 전라남도 해남군[7]에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는데, 이때 박사문은 도피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해남과 광주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던 상황이었다.[8]
첩보가 입수된지 얼마 안 된 2012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에 박사문이 있다" 라는 신고를 받은 서초경찰서는 박사문을 단번에 잡기 위해 강력팀을 출동시켰으나, 검거에 실패했다.[9]
때마침 해남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 중이던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집중적으로 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2년 7월 30일에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포착했다.
이때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포함한 모든 조직원을 미행해 과학수사팀 직원과 함께 해남의 한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나오는 박사문을 포함한 조직원, 부두목, 부두목의 BMW 자동차를 차례차례 카메라로 찍어냈다. 이때 김성혁 경사가 정보원을 통해 박사문이 도피 과정에서 성형수술을 했음[10]과 수배 당시 사진의 인물과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김성혁 경사는 자리를 옮겨 부두목이 살고 있는 광주광역시 수완지구와 박사문의 지인이 장사를 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1]일대를 오가며 박사문이 나타나는 즉시 잡기 위해 잠복을 하였는데, 거듭된 잠복에 김성혁 경사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 틈틈이 있을 정도였다.[12]
마침내 11월 5일, 김성혁 경사가 잠복을 한 지 2시간만에 박사문은 부두목의 BMW 자동차 옆에 주차된 현대 소나타 자동차에 타려고 했다가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형사 4명에 의해 결국 체포되었다. 이때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이 도망갈 것을 우려하고 공포탄 한 발을 쐈다.
박사문은 도피를 하던 4년동안 거의 80kg까지 체중을 감량한데다가 성형 수술[13]을 한 것이 드러났는데[14], 처음에는 성형 사실을 부인했다가 쌍커풀 수술을 했음을 시인했고, 박사문이 타려고 했던 현대 소나타 트렁크에는 등산 장비, 운동화, 텐트, 낚싯대, 등산모 등이 실려있어 박사문의 은신생활상이 짐작되었다.
박사문은 강남경찰서에 인계되기 전, "내가 죽였던 김씨측과 합의하지 못해 아쉽다", "내 운명이다. 이렇게 잡힐 줄 알았다." 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며[15] 순순히 연행에 응했고, 치사죄가 적용되어 2013년에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에 만기출소했다.
[1] 이 중에서 한 사람은 나이트클럽 사장, 한 사람은 해남십계파 조폭이었다. 다만, 둘 다 전라도 사람이다.[2] 1970년생.[3] 1968년생. 박사문보다 2살 더 많다.[4] 김씨 또한 당시 조직폭력배였으나, 박사문과 같은 해남십계파는 아니었다.[5] 증시 침체로 인한 주가 하락때문에 발생하였다.[6] 경우에 따라서 듬성듬성 올라왔다.[7] 박사문의 고향이다.[8] 이때 박사문은 검은 유리로 된 자동차만 타고 다니며 걸어서는 절대 이동하지 않았다.[9] 아파트 안에는 도박판이 차려져 있었고, 그 곳에서 돈을 걸고 도박을 하던 35명이 줄줄이 체포되었다. 이 역시 허위신고일 가능성이 있다.[10] 더욱이 박사문은 그 당시에 키가 180cm에 몸무게가 100kg나 되는 거구였다.[11] 이곳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12] 검거 당일인 2012년 11월 5일 오후에도 충장로, 금남로, 대인동 일대에서 잠복하던 중에 대인동의 한 유료 주차장에서 부두목의 BMW 자동차를 발견한 바 있다.[13] 자세히는 쌍커풀 수술이다. 서울에서 받았으며, 이 점으로 보았을 때 도피 기간 중 얼마동안은 서울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14] 추가로 보톡스 시술도 받았으며, 이로 인해 "페이스오프 살인범" 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15] 사실 이렇게 검거되면서 순순히 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표적으로 2020년 2월 25일에 살인죄로 수배되었다가 검거된 국제PJ파 조규석은 자신이 검거되면서도 반성은 커녕 뻔뻔함만 보이며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징역 18년이라는 박사문보다 무거운 형벌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