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국

 

성명
강병국(姜秉國)
생몰
1915년 10월 11일 ~ 1984년 1월 15일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본관
진주 강씨
사망지
충청남도 부여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병국은 1915년 10월 11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11월부터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기로 마음먹고 1930년 1월 부여지구에서 강일(姜日) 등과 함께 격문을 제작해 부여군 학생들에게 궐기를 호소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파급되던 문맹 퇴치 운동에 가담해 1933년 4월 장정학당의 한글교사로 활동하면서 부여농민구락부(扶餘農民俱樂部)를 설립했다.
이후 강병국은 강성모, 강일구(姜日求), 최재봉(崔在鳳), 장창선(張昌善), 전영철(田泳喆), 조병철(曺秉喆), 허원범(許元範), 노명우(盧命愚), 강도형(姜道馨) 등과 함께 야학 운동을 지속하다가 1933년 12월 7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35년 1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부여군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84년 1월 15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강병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11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