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

 

※ 국내에는 2가지의 진주 강씨가 존재하는데, 서로 한자가 다르다. 진주 강씨는 거의 다 姜씨다.
1. 진주 강(姜)씨
1.1. 기원
1.2. 분파
1.3. 진주 강씨 인물
2. 진주 강(康)씨


1. 진주 강(姜)씨




[image]}}}'''{{{#000 晉州 姜氏 (晉陽 姜氏)
진주 강씨 (진양 강씨)'''
}}}
'''관향'''
경상남도 진주시
'''원시조'''
강석년 (姜石年)
'''비조'''
강상 (姜尙)
'''시조'''
강이식 (姜以式)
'''중시조'''
강계용 (姜啓庸), 강위용 (姜渭庸), 강원용 (姜遠庸), 강민첨 (姜民瞻), 강궁진 (姜弓珍)
'''집성촌'''
경상남도 남해군, 진주시
경상북도 안동시, 영풍군
전라남도 나주시
전라북도 순창군, 남원시, 김제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귀포시
평안북도 정주시
함경남도 북청군
'''인구'''
1,161,326명(2015년) | 국내 6위

1.1. 기원


진주 강씨(晋州姜氏)의 시조는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1]를 역임한 강이식(姜以式) 장군이다. 강이식의 선조는 중국의 강태공의 자손인 천수강씨(天水姜氏)의 지파인 광동강씨(廣東姜氏)의 일족이다. 이는 중국 광동강씨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강이식은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 수 문제가 침략의 야욕을 품고 무례한 국서(國書)를 고구려에 보내오자, "이러한 오만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것이 아니라, 칼로써 대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양왕이 이에 수긍하고 전쟁할 것을 명하자, 이듬해 병마원수(兵馬元帥)가 되어 정병 5만 명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그는 대병력을 이끌고 요서(遼西)에서 수나라 요서총관 위충(韋沖)과 교전한 뒤, 임유관(臨谕關)으로 거짓 후퇴하였다가 다시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수나라 수군총관 주나후(周羅喉)의 30만 수군을 크게 격파하고 개선하였다.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事)》에 따르면, 묘(墓)는 만주(滿洲) 심양현(瀋陽縣) 봉길선 원수림 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는 큰 비석이 있었다고 하나, 중국 문화혁명 때 소멸되고, 현재는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묘역에 남아 있다.
현재 진주시 상봉서동 봉산사에 강이식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것은 고구려 멸망 이후 당 황제가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 실시한 과거에서 강진(姜縉)이 장원급제한 후 태중대부 판내의령 (太中大夫判內議令)을 역임하다가 진양후(晋陽候)에 봉해진 이후이다. 이 때부터 진주강씨의 본관을 진주(晉州)로 하게 되었다.
강씨 족보에 따르면, 강이식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그들의 조상이 그 유명한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중국 주나라 건국에 절대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 그 공으로 지금의 산동성 지역의 봉토를 받아 나라이름을 제(齊)로 하여 제나라를 건국하였다.
춘추시기에 이르러 그의 자손인 제환공 '강소백'은 춘추시대 최초의 패왕(覇王)이 되어 중국 천하를 호령하였다. 그 후 제나라는 강태공의 자손들로 이어져 32대 800여년간 이어졌다. 진주강씨 문중은 중국의 강태공 후손들과 더불어 매년 9월 12일 중국 산동성 치박시 임치구 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제사를 축제화 하여 '제나라 문화축제'라고 하는데 거대한 강태공상 앞에 모여서 각종 제나라 의상, 음악, 제나라 전통가무 공연, 강태공에 대한 제사 등이 진행되며, 이 곳에는 강씨는 물론 강씨에서 갈라진 성씨인 중국의 고(高), 노(盧), 여(呂), 정(丁), 구(丘), 최(崔)씨 등이 매년 단골로 참석한다. (강태공에서 갈라진 중국성씨가 무려 102개이다.)
또한, 강태공 뿐만 아니라 강태공에서 더 거슬러 올라갈 경우 그 최고 정점에 중국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까지 나온다. 염제신농씨는 중국 고대 삼황(三皇)중에 한분 이며, 지금으로부터 5200년전 중국 섬서성 기산현을 흐르는 강인 강수(姜水)에서 자라서 지명인 姜을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염제신농씨의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석년(石年)이라 했다 한다. 염제신농씨가 중국에 염제국을 건국하고 그의 후손들 (강유망,강괴,강승,강명,강리 등)이 총 8대 520년간 이어져 강씨들이 중국을 통치하였다. 즉, 진주강씨(姜氏)는 황족(皇族)이다. 그 외 강씨와 강씨에서 갈라져 나간 성씨들이 세운 황제국과 여러 제후국들 (제나라, 여국, 허국, 기국, 장국, 북제, 북주, 베트남 쩐왕조, 딘왕조 등)을 다 합하면 진주강씨는 황족 뿐만 아니라 가히 왕족(王族)이라 할 수 있으며,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명문거족이라 할 수 있다.

1.2. 분파


  • 은열공파(殷烈公派) - 강민첨(姜民瞻)
  • 박사공파(博士公派)[2] - 강계용(姜啓庸)
  • 소감공파(少監公派) - 강위용(姜渭庸)
  • 시중공파(侍中公派)[3] - 강원용(姜遠庸)
  • 인헌공파(仁憲公派)[4] - 강궁진(姜弓珍) - 강감찬(姜邯贊)
  • 염통악파(念通岳派)[5]

1.3. 진주 강씨 인물


이하 배열은 출생년도순을 따름( )

2. 진주 강(康)씨



'''晉州 康氏
진주 강씨'''

'''관향'''
경상남도 진주시
'''시조'''
강여즙(康汝楫)
'''중시조'''
강홍제(康弘濟)
'''집성촌'''
경상남도 진주시
'''인구'''
1,354명
강여즙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 1천명이 조금 넘으나, 2000년 통계 때는 3만명 즈음으로 조사되었다.(통계 레퍼런스 필요)

[1] 지금으로 치면 총참모장, 원수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흔히 생각하는 대장군을 가리키는 호칭이다.[2] 어사공파(御使公派)라고도 한다.[3]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라고도 한다.[4] 본래 금천 강씨(衿川姜姜)이다.[5] 본래 제주 강씨(濟州姜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