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필

 

성명
강순필(姜順必)
이명
강병수(姜秉秀), 강병수(姜秉洙), 강순필(姜順弼), 강병수(姜炳洙)
생몰
1889년 ~ 1921년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시
사망지
서대문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순필은 1884년생이며,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이다. 그는 이강년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의병 활동을 수행했고, 1913년 풍기에서 결성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에 참여했다. 이 단체는 의병에 가담했던 인사들로, 독립군 양성을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는 채기중(蔡基中)과 함께 영월의 일본인 중석광(重石鑛)에 광부를 가장하고 잠입하여 자금 탈취를 시도했으며,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였다.
이후 1915년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할 때 참여했다. 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했다. 그들은 혁명기지를 각처에 설립한 곡물상으로 삼았고,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 기지 건설, 총독 처단 및 친일부호 암살 등을 추진했다. 강순필은 이 중 친일부호 처단을 맡아 채기중, 유창순, 임봉주(林鳳柱)와 함께 활동했다.
그러던 1917년 11월, 그들은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일본 경찰에 밀고하려 한 장승원(張承遠)[1]을 암살하고 광복회의 처단고시문을 벽에 붙여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이 일로 광복회 조직이 경찰에 발각되었고, 강순필은 1918년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뒤 192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강순필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 제2대 국무총리 장택상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