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필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순필은 1884년생이며,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이다. 그는 이강년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의병 활동을 수행했고, 1913년 풍기에서 결성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에 참여했다. 이 단체는 의병에 가담했던 인사들로, 독립군 양성을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는 채기중(蔡基中)과 함께 영월의 일본인 중석광(重石鑛)에 광부를 가장하고 잠입하여 자금 탈취를 시도했으며,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였다.
이후 1915년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할 때 참여했다. 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했다. 그들은 혁명기지를 각처에 설립한 곡물상으로 삼았고,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 기지 건설, 총독 처단 및 친일부호 암살 등을 추진했다. 강순필은 이 중 친일부호 처단을 맡아 채기중, 유창순, 임봉주(林鳳柱)와 함께 활동했다.
그러던 1917년 11월, 그들은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일본 경찰에 밀고하려 한 장승원(張承遠)[1] 을 암살하고 광복회의 처단고시문을 벽에 붙여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이 일로 광복회 조직이 경찰에 발각되었고, 강순필은 1918년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뒤 192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강순필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