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image]
1. 개요
2. 생애
3. 저서
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고전평론가.[1]

2. 생애


1960년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함백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부모님, 3남매에 삼촌, 고모까지 9식구가 한방에 살았던 가난한 환경에서 일찌감치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았고, 왜 세상에 이렇게 고난이 많은지 고민하며 교회를 찾았다고 한다. 1978년 고려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대학교에서의 전공은 독문학이었다. 하지만 대학(고려대) 4년 때 우연히 참가한 고전문학 강의에 매료되어 대학원에서는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박태호 교수[2]와 함께 연구공동체[3] '수유 + 너머'를 결성하였다. 수유리의 작은 공부방에서 소수의 국문학 연구자들로 시작된 모임이 서울사회과학연구소[4] 출신의 사회과학 전공자들과 결합해 당대 제일의 연구공동체로 성장하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강연 및 집필활동을 하였다. 소모적인 교수 임용에 매달려 ‘정력탕진’하느니 경제적 자립과 배움이 가능한 ‘열린 광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현실화한 셈이었다. 다소 독설가 기질이 있어서 '수유+너머' 내에서도 '고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2010년 경 '수유 + 너머'를 탈퇴하였다. 현재는 남산 자락에 있는 '감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3. 저서


저서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윤선도 평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등이 있다.

4. 여담


  • 문체가 매우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하다. 예를 들어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유행할 때에는 '나는 별이다'라는 글을 써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식이다. 그리고 고전을 생동감 있게 재해석하는 식으로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열하일기를 읽어보면 연암 박지원이 옥전현이라는 마을 점포에서 너무나도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어 그걸 열심히 베끼자, 점포 주인이 연암에게 왜 그걸 베끼냐고 물으니까, 연암이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서 모두들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요. 아마 이걸 읽는다면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날아갈 것이며,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처럼 끊어질 것이외다.”라고 답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런 대목들을 소개하며, 무려 300년 전에도 연암 같은 사람이 남을 웃기기 위해서 그러한 고생을 다 했다고 평하는 식이다. 그런 이유로 고미숙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 다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좋게 보면 문체가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것이지만, 나쁘게 볼 경우 정말 난잡한데다 맥락을 자꾸 끊어먹을 정도로 반복되는 자잘한 묘사와 쉼표, 감탄사, 심지어 이모티콘(!) 등이 읽는 사람을 매우 짜증나게 한다. 귀여니냐작가의 서문 등을 보면 흔히 "글은,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다"로 요약되는 사상인 듯 한데, 그야 물론 어디 시정잡배라도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걸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는게 문제지(...) 대충 비슷하게 표현해 보자면 "열하일기, 그 웃음과, 그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 얼마나 생동감 있고 팔팔한 시대였는가! 믿기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라는 식의 문장이 책 전체를 다 채우고 있다. 문장 구조에서 보아도 감탄사는 한 두번 쓸 때야 주의를 환기시킨다지만 글 내내 이 쑈를 하고 있으니 읽는 사람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 직접 한 챕터만 읽어봐도 안다.
  • 감이당에서 청년 백수들이 모여 공부로 자립한다는 모토로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공부를 하는데 자본주의, 무한경쟁, 청년문제에 대한 대안인'공부로 자립한다'는 모토다.
http://m.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218635
위 기사에서 볼 수 있듯 현대 사회의 대안으로 청년들의 '백수되기'를 제시하는데 쉽게 말해서 정규직 되기를 포기하고 프리랜서가 되어서 공부하고 글쓰고 먹고 살라는 말이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현대사회의 청년들이 취업경쟁에 매달리는 이유가 자본주의적 욕망 때문인가?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취급해버리면 할 말은 없다만 부모가 돈이 많거나 특출나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우리 사회 청년들은 집 있고,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여가도 즐기는 '평범한 삶을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Q) 이런 이야기(공부로써 자립한다)조차 버거워하는 빈곤한 사람들이 많다. 앞서 최고의 생존전략으로 제시한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미숙) 그런 설정 자체가 교만이라고 본다. 물론 불치병 같은 절대 빈곤은 사회적으로 공동의 과제다. 하지만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다는 등의 물질적인 빈곤의 문제는 아니다. 정말 가난해서 할 수 없는지 묻고 싶다. 약자니까 내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권위와 주인의식이 생긴다. 받는 사람 역시 부담스럽다. 책임이나 동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라는 발언을 하는데, 60년대 생 고미숙의 사회상은 여전히 70~80년 대의 경제발전시기에 머물러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무한경쟁을 빠져나오려면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노오력' 하라는 말 아닌가. 절대빈곤은 사회적 공동과제라면서 거기에 대한 해결은 청년 개인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 기본소득 문제가 논의되는 와중에 '청년은 약자가 아니니까 도와줄 필요 없다'는 발언은 복지에 대한 전무한 지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 논리라면 청년 일자리정책이나 기본소득 논의, 나아가서는 장애인 복지 등의 문제도 "그들을 약자로 보는 시각은 교만이다, 따라서 그런 복지정책은 필요 없다." 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사실 절대빈곤에 빠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무한경쟁에 빠져드는 이유는 상대빈곤이나 낮은 신분에 빠지지 않다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청년 개개인의 삶을 파탄내고 우울과 권태에 빠지게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고미숙의 요지이다. 사실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청년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내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자들이 가난을 얘기해봐야 공한 얘기만 돌 뿐 아니겠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 임승수 작가도 페이스북에 고미숙을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고미숙의 부족한 노동감수성을 지적했다.

내가 설마설마해서 세바시 고미숙 씨 편을 찾아 다 들었다. 자유주의, 아나키즘, 봉건성, 공상적 유토피아니즘, 전근대성, 노동에 대한 천시, 엘리트주의... 이 모든 것이 짬뽕이 되니 '전 인민의 백수화'가 탄생한다. 고미숙 씨는 자신이 맘 편하게 책 쓰고 강의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공장 컨베이어벨트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책 쓰고 강의하고 놀면서 먹는음식 입는 옷은 누군가가 뺑이치며 노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물건 들인데..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04112118228448&id=1390105126

(임승수 작가 페이스북)



[1] 고전평론가는 그가 만든 직업이다.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2] 1980년대 이진경이란 가명으로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일명 사사방)을 출판해서 학계와 민주화운동세력에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 일으킨 사람이다.[3] 성령충만한 인문학 덕후 공동체라 불리기도 하였다.[4] 198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82학번들이 중심이 되어서 활동했던 연구집단으로 학생운동 PD그룹의 이론적 근거지였다. 위에 언급된 이진경 외에 조국, 진중권 등이 핵심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