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현
1. 소개
'''계룡산 루니'''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2. 경력
2.1. 수원 삼성, 부산 아이파크
고창현은 2001년 금호고를 대통령금배 우승으로 이끌면서 한때 '제2의 고종수'로 평가받았다. 2002년 수원 삼성에 입단해 프로 무대에 입문하였다. 아시안클럽컵 동아시아 4강전에서 프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러나 수원 삼성에서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2004년 안효연과의 트레이드로 입단해 이안 포터필드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
포터필드 감독은 고창현을 두고, 웨인 루니 같은 파워와 기술을 가진 선수라고 호평했으나 팬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성질 하나는 루니랑 똑같았다 평가였다.[1]
2006시즌 종료 후, 광주 상무 입대를 결정했으며, 광주 상무에서 전방 공격을 전담하면서 포텐셜이 슬슬 터질 기미를 보였다. 당시 광주 상무 공격진이 워낙 파괴력이 떨어지던 관계라 고선수도 골 자체를 그다지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당시 광주 경기를 보면 공격하나는 신나게하던 고창현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히곤했다. 광주 시절 움직임을 보면서 내심 고창현이 제대하면 부산 아이파크에 꽤 보탬이 될거라 기대를 모으기도 하였다.
2.2.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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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 제대 후 부산 복귀 대신 곧바로 은사인 김호 감독이 있는 대전 시티즌으로 입단하였으며,[2] 4월 4일 대구 FC전에서 프리킥 골로 팀의 정규리그 첫 승을 이끌기도 했다.
고창현은 대전 입단 첫해에 겨우 23경기만 출장했음에도 12골 4도움이란 괴물같은 활약을 기록하며 대전의 스타 플레이어로 발돋움했으며, 팬들로부터 '''계룡산 루니'''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찬사를 받았으며, 2009시즌에 대전은 고창현 하나로 먹고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으며, 특히 위협적인 프리킥을 자주 선보이며 K리그 최고의 프리키커라고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여기에 고창현 선수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도 아니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 정도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으니 더욱 놀랄 노자였다. 당연히 2009시즌 종료 후, 여타 구단들이 고창현 선수에게 군침을 흘려댄건 당연지사.
2.3.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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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김호곤 감독의 강력한 구애로 12억에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3]
울산에서는 2010시즌 후반기 대활약하며 당시 울산팬들에게 집중포화를 받으며 신음하던 김호곤 감독에게 숨통을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후 11시즌까지 울산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였는데,12시즌 부터 다소 하향세를 보이더니 13시즌에는 후보 선수로 전락했다. 이후 2014시즌을 앞두고 조민국 감독이 부임한 뒤, 고창현 선수에게 부쩍 기회가 늘어난듯. 하지만 팀 성적이 김호곤 감독 시절보다 좋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으며, 2015시즌 종료 후 조용히 은퇴하였다.
2.4. 국가대표
2011년 3월 15일 온두라스 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으나,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