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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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구 FC는 K리그1 소속의 프로축구단이며,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최초의 시민구단'''이다. 연고지는 대구광역시, 홈구장은 DGB대구은행파크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조현우의 인기와 더불어 세징야, 데얀 다먀노비치 등 탑급 용병들과 DGB대구은행파크로의 이전 등 여러 홍보 효과들로 인해, 셀링클럽, 승강제 시행 후 첫 강등이라는 약체 취급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엄연한 K리그의 신흥 강호이자 인기 구단이다.
2. 선수 명단
3. 코칭 스태프 명단
4. 역사
4.1. 창단
2002년 월드컵의 축구 붐에 힘입어 대한민국 최초로 시민구단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창단, 2003년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사실 창단 자체는 대구시민들의 축구단 열망이라기보다는, 월드컵이 끝난 이후 텅 비어버린 대구월드컵경기장을 활용하기 위해 대구광역시에서[7] 적극적으로 밀어 붙인 것이 더 컸다.
또 '''대구시가 경기장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체육진흥기금과 시민 공모, 지역기업의출자를 통한 '''프로축구팀 창단'''도 시의회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주경기장 시설은 월드컵이 끝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의회에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창단이 확정되었고, K리그 최초로 시민주 공모를 통하여 창단한 시민구단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이후 또다른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됐고, 대전 시티즌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등, 대구 FC는 국내 축구계에 시민구단 창단이라는 일종의 새 바람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지역명 + FC라는 이름 형식은 대구 FC가 최초이다. 처음엔 '대구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정해졌으나, 시민들이 타팀에서도 이미 쓰는 이름이고 동물 이름을 구단명에 넣는것은 촌스럽다며 완강히 반대했으며, 한국프로야구의 한화 이글스 팬들까지 "한화 이글스가 있는 마당에 왜 하필이면 대구 이글스냐"며 탐탁찮은 반응을 보였다. 결국 이글스를 제거한 대구 FC로 정해져, 최초로 지역명으로만 명칭이 구성된 구단이 되었다. 최초의 'FC' 구단은 아닌데, 이미 1996년에 팀명인 '코끼리'를 뗀 부천 SK FC가 있었기 때문.'''대구광역시는 국내 최대인 대구월드컵구장의 사후활용과 시민 일체감 조성을 시민구단 창단의 당위성으로 꼽고 있다.'''
2001년 8월 6일 창립회의를 시작으로 '''2002년 10월 9일''' (주)대구시민프로축구단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첫 창립 총회를 열면서 창단하게 된다. 이후 2002년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간 1차 시민주 공모를 실시해 127억 원의 자금을 확보하였으며, 2002년 12월 26일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창단이 승인되었다.
2003년 3월 19일 창단식을 거행하였다. FM에서 보면 창단년도가 2003년으로 되어있는데 창단식을 기준으로 잡은 듯하다. 대구 FC에서는 창단을 추진한 2002년을 창단 연도로 보고 있다. 초대 감독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박종환 감독을 선임하고 K리그 2003 시즌에 처음으로 참가하였다.
클럽 엠블럼은 창단 전에 공모전을 열었지만 결국은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엠블럼을 사용하면서 뭐하러 공모전을 연 거냐며 비아냥을 샀다. 구단에서 만든 엠블럼은 2012 시즌 초반까지 사용했고, 2012 시즌 중반부터 현재까지 사용되었던 엠블럼은 대구 FC 서포터 모임 중 하나인 도미네이터의 한 멤버가 디자인했다.
본래 팀의 메인 색상은 연한 파란색이었는데[8] , 이는 팀 창단 당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재고가 많이 남은 2002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창단 10주년인 2012년에 하늘색 컬러의 10주년 기념 유니폼을 선보이고 하늘색 컬러와 유니폼 디자인이 팬들 사이에 대호평을 받으며 이후 시즌부터는 하늘색을 메인 색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통 팀의 메인 색상을 바꾸는 행위는 팬들의 반발을 사곤 하는데, 대구의 경우에는 애당초 파란색으로 팀 컬러를 정한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늘색이 당시 K리그에서 사용하는 팀이 없는 유니크한 색상이었던데다 하늘색으로 뽑히는 유니폼의 디자인들도 나쁘지 않아 큰 반발이 없었던 것이다.
4.2. 도약
'''조광래 단장의 취임 이전과 이후로 대구 FC의 역사가 나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2014년 조광래 단장 취임 이후 팀 분위기가 많이 개선되었다. 유망주 중심의 선수단 개편 이후 2016년 K리그 챌린지에서 승격하고, 2018년 FA컵 우승, 심지어 2019년에는 축구전용경기장 신축까지 완료되면서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2019년 대구 FC의 평균 관중은 '''전 해의 3배를 기록하며 1만명을 뛰어넘고 객단가도 치솟는 등'''[9] 인기 구단들 사이에 낄 수 있을 수준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프리미어리그 팀 맨체스터 시티 FC와 유니폼 색상이 비슷해 2019 시즌 팬들은 '''대체스터 시티'''라는 별칭을 붙였다. 줄여서 '대시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홈 구장 DGB대구은행파크의 분위기는 프리미어리그 인기 팀 경기 장면과 비견될 정도이고, 대구의 간판 공격수 세징야는 맨시티의 아구에로에서 이름을 딴 대구에로라는 새 별명도 얻었다.[10]
5. 역대 시즌
5.1. 단일리그 시절(2003 ~ 2011)
5.2. 승강제 시행 이후(2012 ~ )
6. 역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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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역대 감독
7년 먼저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보다 역대 감독 수가 많다. 30년동안 18명의 감독을 선임한 부산 아이파크보다도 평균 부임기간이 짧다.
[필독]
8. 역대 주요 선수
백민철(06~11)은 대구에서 6시즌을 보내면서 총 155경기에 출전했다. 2006년 서울에서 대구로 이적한 백민철은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았다. 변병주 감독 시기 뒤없는 공격축구로 득점 이상으로 실점이 늘었을 때 후방을 책임지며 고생하는 그를 대구팬들은 민철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08년과 10년 시즌에는 전 경기 출전해 K리그 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종진(03~14)는 2003년 호남대를 졸업하고 대구FC의 창단멤버로 프로생활을 시작한 박종진은 상무에서 군복무한 2시즌을 제외하고 모든 시즌을 대구에서 보냈다. 2014시즌까지 통산 270경기 1득점 4도움의 기록을 세우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세징야(16~)는 현역에 많지 않은 시즌동안 대구와 함께 했으나 위의 10주년 선수들에 비해 근속년수가 짧지 않고 통산 최다 득점과 최다 도움 기록을 갖고 있다. 추진 중인 귀화에 성공하면 대구FC의 리빙레전드로 불릴 만한 선수이다.
10주년 베스트 XI 이지만 선수 유출이 잦은 K리그 시민구단이라 선수들의 근속년수가 짧은편이다. 그러나 20주년에는 조현우와 세징야같이 확실히 대구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8.1. 역대 주장
8.2. 역대 등번호
8.3. 결번
대구 FC의 창단멤버이자 원클럽맨이었던 박종진 선수를 기리기 위해 12년간[13] 그의 번호을 결번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영구결번이 아닌 임시결번이다.
9. 시설
9.1. 홈 구장
대구스타디움은 현재 대구 FC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9.2. 클럽하우스
10. 타구단과의 관계
대구 FC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통한 조현우 붐과 2019년 DGB대구은행파크 이전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유명세를 구사하기 전까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중하위권 구단중 하나였다. 최근에 들어서야 축구 커뮤니티들에서 대구 팬들이 많아지고 성적도 일취월장 하면서 다른 팀 팬들과의 마찰이 일어나는 등 라이벌리티의 기반이 되는 적개심의 조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지만, 정말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대구 FC는 딱히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팀이 없었다(...).
어느 팀과도 사이가 썩 나쁘지 않고, 그렇다고 유별나게 좋지도 않은 미묘한 관계를 유지해왔었는데, 2020년대에 인기팀 반열에 접어든 이상 어떻게든 이러했던 기조에 변화가 생길것으로 보인다.
10.1. 포항 스틸러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창단된 시민구단인 대구 FC와의 맞대결을 대구-경북 지역과 축구매체 등 여러 언론사들에서 지역명을 본 따서 TK 더비라고 부른다. 팬들은 라이벌리를 별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원정 거리가 짧아서 서로 좋아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대구에 프로축구단이 탄생하기 전부터 당시 포항 스틸러스가 정책적으로 대구 지역의 축구팀들을 많이 후원하기도 하였고, 지역적으로도 포항에서 자란 사람이 비교적 대도시인 대구로 이주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대구 지역에는 포항 스틸러스를 응원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대구 FC 창단 이후 지역 축구팬들을 흡수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대구 팬들 중에는 두 팀 모두 좋아하는 팬들이 많기에 비교적 최근까지도 동일 지역 구단으로써 친밀한 느낌이 존재한다.
하지만 2018 시즌을 기점으로 대구 FC는 창단 14년만에 FA컵 첫 우승과 더불어 2019년 축구 전용 경기장인 대팍의 개장과 함께 대구의 경기력과 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였다. 또한 포항 입장에서는 2019 시즌 4번의 맞대결에서 무득점으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경북 지역 명문으로써 자존심이 상하게 된 상황이다.
일부 전력차이는 있지만 예전부터 맞대결 시 서로 공격적으로 맞부딪히는 경우가 많아 2019 시즌 종료 시점까지 통산 경기에서 포항이 61골, 대구가 47골을 기록하는 등 생각보다 골이 많이 터지는 편이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K리그1 기준으로 보면 역대 전적에서는 포항이 대구에 19승 12무 11패로 앞서고 있지만 경기를 보면 승패가 그렇게 쉽게 갈리지는 않는다.
10.2. FC 서울
2019 시즌 11라운드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당시 주심인 박병진 심판의 도를 넘은 편파 판정에 대구 팬들은 분노를 토했다. 그러나 해당경기 이후 일부팬들이 분노의 방향이 잘못된 곳으로 향하게 되면서 약간의 싸움이 나오게 되고 서울과 약간의 껄끄러움이 형성되었다. 또 해당 시즌 서울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마저 빼앗겼다.[14] 그러나 이후 2020 시즌 6라운드에서는 '''6:0'''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복수에 제대로 성공한다. 22라운드에선 득점을 하지 못했지만 서울 또한 득점은 없었고, 서울을 하위 스플릿으로 떨궈버림으로서 작년의 복수를 또 한번 해내는 데 성공했다.
11. 인기와 관중 동원력
사실 창단 초창기에도 엄연한 인기 구단이었으며, 서포터즈도 거대 규모 축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성적도 그렇고 사건사고가 줄줄이 터지며 2000년대 후반에 많은 팬들이 이탈했다. 거기다 2011년을 기점으로 야구의 인기가 올라갔고, 축구 쪽에서는 포항 스틸러스가 서서히 다시 떠올랐다. 막강한 대체재인 삼성 라이온즈[15] 와 포항 스틸러스[16] 가 있는 틈에 끼다 보니, 양쪽에 팬을 뺏기는 건 이미지를 다시 좋게 심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심지어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대구 연고였던 시절에는 대구 오리온스에 비해서도 인기가 적었다.[17] 게다가 상술한 네 소모임 외엔 대부분 해산해 인기 안습의 약체 구단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나마 김재하 단장 체제인 2011년부터 서서히 올라갔지만, 2013년에 다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2014년에는 경기당 966명 입장이라는 도저히 말도 안되는 입장객을 냈다. 학교 단체관람을 빼면 경기당 600명 수준일거라고. 그래도 2015년에는 개막전부터 K리그 챌린지 최다 관중도 기록하는 등 그래도 전년도보다는 나은 관중동원을 보여주고있다. 15시즌 15라운드까지 대구 FC의 평관은 4,897명으로, 작년의 966명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개막전을 제외하면 5경기동안 9천명을 동원한 것이어서 평관이 5천명을 넘을리는 절대 없고 여름이 되면 야외 운동장 스포츠 관중이 감소하는 대구 특성상 평관은 쭉쭉 떨어질 예정이다. 2015년 평관은 대략 3천명 수준으로 예상되며 지난해에 비해 관중수를 어느정도 회복한 것에 만족해야 할듯하다.
첫 시작은 희망찼으나 2015년도에도 개막전만 한탕 붐을 일으켰을 뿐 결국 형편없는 관중 동원으로 끝날 분위기다. 클래식 33라운드와 동시기 기준 이미 평관은 2643명으로 엄청난 DTD를 보여주고 있으며 더 대단한것은 유료관중 비율로서 전체 관중의 19.8%, 경기당 523명만 돈을 내고 경기를 보고 있다. 이는 챌린지 리그 최악의 유료관중 비율이며 저 얼마안되는 관중조차도 10명중에 8명은 공짜표니까 경기를 본다는 말이다. 즉 작년 966명에 비해 표면상 관중은 늘었으나 돈내고 보는 관중은 작년 600명 수준과 똑같았다는 말이다. 기사
무료표와 관련해서는 조광래 대표이사의 의도 때문인 걸로 알려져 있다. 조광래 대표는 텅텅 빈 경기장보다는 일단 무료표로 관중을 끌어모으고 그 다음 좋은 경기를 보여줘야 이 다음에도 계속 올 마음을 품는다는 이유로 계속 무료표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18]
이러한 정책은 조금씩 관중들을 끌어모았고 FA컵 우승과 같은 호재들이 겹치면서 2018년 하반기부터 평관이 오르더니, 2019 시즌 새구장 이전 후부터는 수 차례 매진행렬이 이어지는등 '''표가 없어서 못 가는 수준'''이라 무료표를 점차 없애기 시작했고, 결국 '''무료표는 완전히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조광래 대표이사의 정책이 결실을 맺게 되었고 실제 스폰서나 시장도 직접 티켓 끊고 들어온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팀들이 죄다 부진하거나 사라진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19]
2019년 부터는 대팍이 완공되면서 '''많은 경기들이 매진되고 있다.''' 평균 관중도 2018시즌의 '''3배'''로 증가하면서 1만명을 가뿐히 넘겨 2019 K리그의 흥행을 주도했다. 티켓 총 수입은 22억으로 2위를 기록했고 객단가도 1만을 넘겼다.
참고로, 대구 FC의 온라인 팬 커뮤니티로는 대구스토가 있다.
12. 유니폼
13. 기록
14. 팬덤
14.1. 서포터즈
그라지예라는 이름의 서포터즈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14.1.1. 응원가
14.2. 응원단
2018년부터 응원전을 시작했다. 사실 연고인 삼성 라이온즈나 과거 대구 오리온스 응원단 출신이[21] 아닌점이다. 리그의 명가지만 보수클럽인 울산 현대 응원단 출신 절반이 함께하면서 2019년부터 김연정 치어리더팀의 멤버인 이은지 치어리더 팀장을 중심으로 응원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시도민구단 응원단 중 경남 FC가 시작했지만 현재 시도민구단 중 최고 응원단으로 도약했다. 대구 스타디움을 뒤로하고 DGB대구은행파크의 새로운 응원전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 경기일정 문제로 인해 멤버들의 변화가 다소 있는 편이다. 멤버들을 확인하는 방법은 부산 kt 소닉붐 농구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한화 이글스 야구 및 OK금융그룹 읏맨 배구를 참고하면 알 수 있다.
14.3. 엔젤클럽
엔젤클럽은 대구 FC를 응원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발적인 시민 단체이며 이런 스포츠 후원 단체는 한국에서 유일하다. 대구 FC에 재정적인 지원과 홍보 활동 등에 참여하며 시민 명문 구단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엔젤클럽의 목표다.
연 100만원씩 후원하는 엔젤과 연 12만원씩 후원하는 엔씨오 회원으로 나눠지며 현재 회원은 1700명을 넘은 상태고 10억이 넘는 돈이 대구 FC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시 토종 기업 대표들이나, 지역 유지, 법조계등 대구에서 잘나가는 상류층들이 많이 가입한걸로 알려져있다.
14.4. 온라인 팬커뮤니티 - 대구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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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팀 컬러
2000년대까지 대구의 팀 컬러는 바로 '''미칠듯한 공격 축구'''였다. 초대 감독인 박종환 감독 시절부터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해왔으며, 2007년에 변병주 감독이 취임한 이후 그 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그 덕에 2008 시즌 팀 순위는 고작 11위에 머물렀지만, 득점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많은 46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상대팀에게 58골이나 허용하면서 실점 부문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무승부는 두번밖에 없었던 탓에, 'K리그의 로맨티스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에는 공격적인 색을 잃어버리고 하위권, 2부리그를 전전하다 2016년 안드레감독 선임 이후부터는 '''조직적인 수비에 기반한 빠른 역습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공수 전환이 매우 빠르고, 역습 때 세징야를 선두로 한 빠른 템포의 역습 전술 또한 대구의 흥행돌풍에 한 건 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브라질''' 출신의 용병을 선호하는 편이다. 창단 후 첫 시즌인 2003년을 제외한 전 시즌 2명 이상의 브라질 선수와 시즌을 치뤘다. 선수뿐만 아니라 짧은 전성기를 이끌었던 모아시르 감독도 브라질 출신이고, 손현준 감독의 사임으로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의 1부리그 잔류에 기여한 안드레 감독 역시 브라질 출신인지라 은근히 대구 FC는 여러모로 브라질과 인연이 많은 구단이다.
16. 엠블럼
태양을 형상화한 기존 엠블럼에 능금 잎을 감싸며, 능금의 고향인 대구와 녹색 숲의 도시를 지향하는 대구의 발전을 상징한다.
나뭇잎의 전체적인 모양은 대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대구FC의 前 홈경기장인 대구 스타디움을 상공에서 본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대구의 지형인 분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양쪽 11개의 능금 잎은 대구 FC가 K리그에 11번째로 참가했다는 의미로 11명의 선수를 상징하며, 중앙 위의 숫자 2002는 대구 FC의 창단 연도를 뜻한다.
17. 색상 일람
18. 사건•사고
19. 기타
- 2019년 시즌 골대 불운이 매우 심하다. 결정적인 슛이 골대에 튕겨 나와 무를 캐거나 패배하는 경기가 많았는데, 상대편 팀은 오히려 골대 때문에 득을 보곤 했다. 대팍 최초의 해트트릭이 전북 문선민에 의해 기록 되었는데, 이 경기 대구 골대가 2번이나 문선민에게 어시스트했다. 이후 울산 원정 경기에서는 골대에 튕긴 공이 조현우의 몸을 맞고 골인 되기도. 이러다 보니 대구팬들 사이에선 재수 없는 골대 없애라는 둥, 고사 좀 지내라는 둥 말이 나오고 있다. 다만 축구 전문가들은 대구 선수들의 체력 저하와 주전 이탈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와 초조함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22] .
- 등번호 10번의 저주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 선수 + 등번호 10번은 망한다는 징크스고 2012년부터 지넬손, 아사모아, 지안, 조세가 그 희생양이다. 2013~15년까지는 황순민이 10번을 달았기에 예외였고, 2016년은 에델이 그나마 저 10번 저주를 어느정도 극복해냈다. 그러나 2019년부터 아예 10번을 비워두고 있다. 2020년에 데얀이 왔을때 9번을 생각했는데 원주인은 에드가라 10번을 달려고 했다가 구단이 저 징크스때문에 만류해서 수긍하고 27번으로 바꿨다.
- 가난한 시민구단이지만, 외국인 선수를 기가 막히게 잘 스카우트한다. 노나또는 오자마자 리그 득점 2위를 차지했고 훼이종 역시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두 선수 모두 각각 FC 서울, 성남 FC으로 이적료를 받고 이적하며 구단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산드로는 리그 득점 3위에 리그컵에서는 득점왕까지 차지했으며, 루이지뉴는 컵 대회 득점왕을 타고 울산 현대로 이적. 에닝요는 대구에서의 대활약을 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여 전북의 간판이 되었다. 레안드리뉴는 두 시즌 간의 활약으로 전남 드래곤즈으로 수출되었고, 2016년에도 조나탄이 K리그 챌린지에서 득점왕을 했고, 이후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 뒤 K리그 클래식의 득점왕이 되었다. 2017년 후반기에 대활약한 주니오 역시 이후 울산의 간판 스트라이커가 되었으며, 대구 승격에 공헌한 에델 역시 전북과 성남에서 활약 했다. 그리고 현재는 세징야와 에드가 실바, 데얀 다먀노비치이라는 탄탄한 외국인 선수가 있다.
20. 같이보기
[1] (주)대구시민프로축구단이라는 명칭으로 첫 창립 총회를 열면서 공식적으로 창단되었다. 창단식을 거행한 날짜는 2003년 3월 19일이다.[색상코드]
DFC Navy : '''C100 M50 Y0 K0 ''' & '''R10 G80 B161 '''
DFC Sky : '''C40 M5 Y0 K0 ''' & '''R153 G206 B227 '''
DFC Orange : '''C0 M50 Y100 K0 ''' & '''R255 G127 B0 '''
DFC Gold : '''C15 M20 Y60 K5 ''' & '''R205 G181 B88 '''
DFC Silver : '''C0 M0 Y0 K20 ''' & '''R204 G204 B204 '''
DFC Black : '''C0 M0 Y0 K100 ''' & '''R0 G0 B0''' [2] 리그한정[3] 리그한정[4] 1부리그 기록 기준[5] 1부리그 기록 기준, 참고로 리그+FA컵+리그컵+ACL포함 최다득점자 또한 '''세징야(69골)'''이다.[6] 1부리그 기록 기준, 참고로 리그+FA컵+리그컵+ACL포함 최다도움 또한 '''세징야(45도움)'''이다.[7] 당시 시장은 문희갑. 창단은 조해녕 시절에 진행했으나 아래 기사가 지방선거 전, 즉 대구시장 교체 전이라 문희갑이 만들려고 한 게 맞다.[8]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 1984 유니폼이나 롯데 자이언츠 1975 유니폼 설명에서 보듯, 넓게 보면 2004년부터 적용된 컬러는 하늘색이라고도 볼 수 있다.[9] 2019시즌 티켓 수익 22억원, 객단가 1만원 이상, 2019시즌 홈경기 9회 매진[10] 대구에로라는 별명이 생긴 것에는 당시에 머리 색이 노란색으로 동일했던 이유도 있다.[11] 시즌 평균관중수 966명...[필독] A B 시즌 정규대회 기록만 서술해주시기 바랍니다.[12] 스카우트 비리[13] 2026년까지[14] 추가로 대팍 리그 첫 패배를 안겨준 것도 서울이었다.[15] 당시 대구 FC는 만년 하위권인데다 후발주자였으며, 지역 출신 스타 선수도 거의 없고 홈 승률도 썩 좋지 않은 반면, 삼성 라이온즈는 역사가 깊고 역대 성적도 준수했다. 그러나 이것도 2016년을 기점으로 99688이라는 비밀번호를 달성한 암흑기와 때마침 대구 FC가 성적면에서 17년부터 4년 연속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찍어누르고 설상가상으로 삼성 왕조시절부터 단 한 시즌도 넘길수없던 평균 관중 수조차 마침내 앞지르면서 조금씩 역전되는중이다.[16] 대구 FC가 너무 늦게 창단됬기 때문에 예전 대구 축구 팬들은 인근의 포항을 응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구 FC가 생긴 이후로도 여전히 포항을 응원하거나 잠깐 대구 FC를 응원했으나 그리 강팀이 아닌지라 다시 포항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로 야구보다 축구가 더 좋다는 대구 팬들 중에도 상당수는 포항을 응원한다.[17] 단 대구 오리온스가 2007-2008 시즌부터 연고지 이전 직전까지 막장 흑역사 기간을 빼고 KBL에서 전주 KCC 이지스와 인기 1, 2위를 다투던 구단이라는걸 감안해야 한다. 32연패로 대표되는 유래없는 침체기에서 김승현의 가세로 순식간에 리그 최강으로 급부상한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골수팬, 라이트팬을 모조리 흡수하고 대구 지역뿐만 아니라 아예 전국구 인기구단이었다는 것. 당시 대구 오리온스는 한때 대구광역시 내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제칠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는걸 생각하자. 월드컵이 열린 해이자, 대구 연고 프로 스포츠 최고의 한 해였던 2002년의 전성기를 연 팀도 오리온스였다.[18] 2018년부터는 '''프로야구팀인 삼성 라이온즈가 이러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은 삼성 라이온즈/암흑기 참고.[19] 삼성 라이온즈는 9968이라는 성적부진과 스타들의 잇단 이탈과 전력 약화, 현명한 투자의 부재로 암흑기에 들어갔고, 포항 스틸러스는 송암 대참사로 대표되는 처참한 경기력으로 부진을 겪고 있다가 간신히 파이널 A그룹에 합류는 했고 결국 대구보다 좋은 성적으로 끝내서 다른 둘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 사이에 대구에서 인기가 좀 깎였고, 대구 오리온스는 아시다시피 대구에서 도망가며 지금은 대구인 누구도 언급하지않는 흑역사가 되었다.[20] 2020 미스코리아 경남 미.[21] 해당 응원단은 포항 스틸러스에 많다.[22] 이 때문에 2020년 6월 14일 서울 유상훈이 골대를 폭행(...)했을 때 대구팬들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23] 타팀에서 리저브 급이다 대구에 와서 기량이 만개하는 젊은 선수들도 많은 편. 바로 언급된 이근호가 그렇고, 현재는 정태욱이 있다.
DFC Navy : '''C100 M50 Y0 K0 ''' & '''R10 G80 B161 '''
DFC Sky : '''C40 M5 Y0 K0 ''' & '''R153 G206 B227 '''
DFC Orange : '''C0 M50 Y100 K0 ''' & '''R255 G127 B0 '''
DFC Gold : '''C15 M20 Y60 K5 ''' & '''R205 G181 B88 '''
DFC Silver : '''C0 M0 Y0 K20 ''' & '''R204 G204 B204 '''
DFC Black : '''C0 M0 Y0 K100 ''' & '''R0 G0 B0''' [2] 리그한정[3] 리그한정[4] 1부리그 기록 기준[5] 1부리그 기록 기준, 참고로 리그+FA컵+리그컵+ACL포함 최다득점자 또한 '''세징야(69골)'''이다.[6] 1부리그 기록 기준, 참고로 리그+FA컵+리그컵+ACL포함 최다도움 또한 '''세징야(45도움)'''이다.[7] 당시 시장은 문희갑. 창단은 조해녕 시절에 진행했으나 아래 기사가 지방선거 전, 즉 대구시장 교체 전이라 문희갑이 만들려고 한 게 맞다.[8]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 1984 유니폼이나 롯데 자이언츠 1975 유니폼 설명에서 보듯, 넓게 보면 2004년부터 적용된 컬러는 하늘색이라고도 볼 수 있다.[9] 2019시즌 티켓 수익 22억원, 객단가 1만원 이상, 2019시즌 홈경기 9회 매진[10] 대구에로라는 별명이 생긴 것에는 당시에 머리 색이 노란색으로 동일했던 이유도 있다.[11] 시즌 평균관중수 966명...[필독] A B 시즌 정규대회 기록만 서술해주시기 바랍니다.[12] 스카우트 비리[13] 2026년까지[14] 추가로 대팍 리그 첫 패배를 안겨준 것도 서울이었다.[15] 당시 대구 FC는 만년 하위권인데다 후발주자였으며, 지역 출신 스타 선수도 거의 없고 홈 승률도 썩 좋지 않은 반면, 삼성 라이온즈는 역사가 깊고 역대 성적도 준수했다. 그러나 이것도 2016년을 기점으로 99688이라는 비밀번호를 달성한 암흑기와 때마침 대구 FC가 성적면에서 17년부터 4년 연속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찍어누르고 설상가상으로 삼성 왕조시절부터 단 한 시즌도 넘길수없던 평균 관중 수조차 마침내 앞지르면서 조금씩 역전되는중이다.[16] 대구 FC가 너무 늦게 창단됬기 때문에 예전 대구 축구 팬들은 인근의 포항을 응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구 FC가 생긴 이후로도 여전히 포항을 응원하거나 잠깐 대구 FC를 응원했으나 그리 강팀이 아닌지라 다시 포항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로 야구보다 축구가 더 좋다는 대구 팬들 중에도 상당수는 포항을 응원한다.[17] 단 대구 오리온스가 2007-2008 시즌부터 연고지 이전 직전까지 막장 흑역사 기간을 빼고 KBL에서 전주 KCC 이지스와 인기 1, 2위를 다투던 구단이라는걸 감안해야 한다. 32연패로 대표되는 유래없는 침체기에서 김승현의 가세로 순식간에 리그 최강으로 급부상한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골수팬, 라이트팬을 모조리 흡수하고 대구 지역뿐만 아니라 아예 전국구 인기구단이었다는 것. 당시 대구 오리온스는 한때 대구광역시 내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제칠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는걸 생각하자. 월드컵이 열린 해이자, 대구 연고 프로 스포츠 최고의 한 해였던 2002년의 전성기를 연 팀도 오리온스였다.[18] 2018년부터는 '''프로야구팀인 삼성 라이온즈가 이러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은 삼성 라이온즈/암흑기 참고.[19] 삼성 라이온즈는 9968이라는 성적부진과 스타들의 잇단 이탈과 전력 약화, 현명한 투자의 부재로 암흑기에 들어갔고, 포항 스틸러스는 송암 대참사로 대표되는 처참한 경기력으로 부진을 겪고 있다가 간신히 파이널 A그룹에 합류는 했고 결국 대구보다 좋은 성적으로 끝내서 다른 둘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 사이에 대구에서 인기가 좀 깎였고, 대구 오리온스는 아시다시피 대구에서 도망가며 지금은 대구인 누구도 언급하지않는 흑역사가 되었다.[20] 2020 미스코리아 경남 미.[21] 해당 응원단은 포항 스틸러스에 많다.[22] 이 때문에 2020년 6월 14일 서울 유상훈이 골대를 폭행(...)했을 때 대구팬들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23] 타팀에서 리저브 급이다 대구에 와서 기량이 만개하는 젊은 선수들도 많은 편. 바로 언급된 이근호가 그렇고, 현재는 정태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