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후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검신무(劍神舞)』와 『투검지(鬪劍誌)』에서 이야기가 소개되는 원후파(元侯派)의 시조가 '''귀후(鬼侯)'''이다. 수말(隋末) 당초(唐初)의 혼란기에 이름이 알려진 다소 괴이한 행적을 가진 도인이다. 금발벽안(金髮碧眼)의 이국인(異國人)이어서 특이한 복색 때문에 '''혁서생(革書生)''' 또는 '''납탑괴인'''이라 불렸으며, 스스로는 '''퇴도인'''으로 불렀다. 나중에는 그가 전국 곳곳을 누비며 귀신을 박멸한 것이 성과가 있었는지 봉작에 이르러 '''삼봉진인'''이라 일컬어진다."종 장문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신주십삼파가 전부 그런 줄 오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삼봉진인(三峰眞人) 이래로 본문은 사람들의 오해 따위에 신경 쓴 적이 한 번도 없소이다!"
"퇴도인(退道人)을 자처한 분을 누가 오해합니까!"
"퇴도인은 무슨! 은퇴한 도사가 신주팔황(神州八荒)을 누비고 다니나! 젠장, 무슨 악취미였는지 정말 웃기는 분이었다니까!"
"그래도 그분이 봉작(封爵)에 이르렀기에 신주의 일파로 당당하게 선 것이잖소."
"쳇, 차라리 산중에서 도사 흉내나 내면서 문중을 키워놓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싸돌아다닐 일도 없이 좋았지! 게다가 작위가 있으면 뭘 하나! 무슨 도관을 하나 받기를 했어, 땅을 받아 불여먹을 여유라도 있게 했어? 그냥 이름뿐이잖소! 임자 없는 산 하나 날름 먹고 자리 잡는 것이 낫다니까!"
2. 행적
그는 독룡(毒龍)을 쫓아 중원에까지 들어온다. 본래 응룡(應龍)이었던 독룡은 어깨 위에 가죽 날개가 돋아 있고, 곰의 몸통을 하여 길고 억센 네 발에는 갈고리 칼 같은 발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뿔이 돋았으며, 이빨은 아름드리나무를 한 번에 물어 끊을 만큼 큰 입에 가득 박혀 있기도 했다. 또한, 덩치는 그 입에 걸맞게 커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재 보면 거의 10장이 될 정도였다.[1] 이뿐만 아니라 사람의 말까지 하는 것은 물론 성질이 사악해 매우 교활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이국에서 커다란 시가 안에 둥지를 틀고는 사람을 잡아먹으며 농락하는 생활을 하면서 신령이라 섬김 받았다.
수백 년이나 그런 생활을 해오던 응룡은 결국 적을 만들었고, 그에게 베여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악(惡)을 품은 독룡이 되어 근거지에서 벗어나 도망쳐야 했다. 그 적이 바로 귀후였다. 원무산(元武山)까지 쫓아간 그는 마침내 독룡을 끝장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독룡은 특이하게도 귀둔(鬼遁)에 발을 디디고 있어서 완전한 죽음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전변(轉變)시켜 요룡(妖龍)이 된다. 이에 귀후는 요룡을 원무산 지하의 맥을 이용한 태극혼돈진(太極混沌陣)[2] 에 가둬 스스로 옛 응룡의 기상(氣像)을 깨달아 대오(大悟)하여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봉인한다.
더불어 만약 요룡이 여전히 악을 품은 채 봉인을 풀고 나올 것을 예비해 계승자를 거둔다. 그렇지만 무공과 무술(巫術)에 능했던 스승과는 달리 계승자는 주법(呪法) 계통에 미숙해 전승을 온전히 배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귀후는 전리품인 요룡의 이빨로 만든 귀룡아(鬼龍牙)를 둘로 나눠 음편(陰片)은 묻은 다음, 양편(陽片)을 계승자에게 요룡을 지키는 임무의 증표로서 전한다. 후대에 이어질 계승자 중 자신의 모든 전승을 하나로 합쳐 세월 속에 약해진 요룡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3. 무공
- 검령비결(劍靈秘訣): 워낙 공세적이며 강렬한 검세(劍勢)는 그를 패후(覇侯)라고도 불리게 하였다.
[1] 대략 30.3m이다. 촌(치, 寸) = 3.03cm, 자(척, 尺) = 30.3cm, 장(丈) = 303cm.[2] 태극으로 혼돈을 부르는 진법이다. 그 혼돈이 일으키는 환영은 한없이 실재에 근접한 형태이다. 참고로 태극에 담긴 음양은 흑백으로 표현되므로, 원후파의 후예들은 이 태극혼돈진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 흑백의 도포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