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리당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검신무(劍神舞)』와 『투검지(鬪劍誌)』에 등장하는 당대의 원후파(元侯派) 장문인이다. 종리당의 성격은 호쾌하고 거침이 없는 것은 물론 아주 호전적이라 피를 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날뛰어서 별호도 '''노룡격호(怒龍擊虎)'''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시선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경우가 많아 그를 아는 사람들은 '''날건달''', '''꼴통'''이라고 흉을 보기도 한다."뭐··· 원후십팔채의 첨병을 삼으려면··· 치고받고 싸워주는 쪽이 좋기야 좋지. 세인들의 평가도 원후파가 혈투를 벌이는 녹림도를 진정시켰다는 쪽에 더 후하게 나올 테니까. 사실 분수를 지키면서 오붓하게 잘 사는 녹림 산채야··· 손님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후훗."
"하하, 사형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정말처럼 들리잖습니까? 하하핫··· 핫?"
"뭘 이런 일로 농담까지 하나··· 사실, 내 순둥이 제자 녀석에게 피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되도록 원한을 잔뜩 품고 죽어서 귀신이 될 놈이면 좋기도 하고··· 사제, 생각해봐. 원후파 장문인의 하나뿐인 제자가 녹림의 괴수를 단칼에 베고 다닌다, 하면 좋은 일 아니냐고······."
"사형, 농담이시지요?"
- 『검신무』에서 종리당과 반위릉의 대화 중 발췌.
2. 행적
- 《검신무》 어릴 때부터 원후파 제자가 된 종리당은 어떤 일로 인연이 닿았는지 알 수 없으나, 청성파(靑城派)의 삼절도인(三絶道人) 일맥과 깊은 교우를 갖는다. 심지어 하후염이 살인을 많이 일삼는다는 이유로 100년 전의 녹림왕(綠林王)이 행보를 시작했다는 녹림의 산채인 용채를 멸절시킨 일을 그가 조해도인(照解道人)과 함께 시신을 묻고 산채의 모든 것을 다 뽑아 엎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뒤처리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후염과 특히 친분이 깊었던 그는 청성육검협(靑城六劍俠)과도 자주 어울려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일까? 하후염과 비슷한 막무가내인 종리당은 자신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당연히 장문인 자리를 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전대 장문인이었던 계명선생(啓明先生)이 원후오귀(元侯五鬼)에게 기가 눌리지 않고 문중을 이끌어갈 만한 이가 그 밖에 없다고··· 제자들을 동원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은 다음, 강제로 장문인 자리를 넘긴다. 이때 동문 사형제인 반위릉과 심무강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종리당을 붙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1]
4~5년마다 원후파는 문인들이 사당에 모여 열조(烈祖)님들에게 제례를 지낼 겸 회합을 갖는다. 이를 종리당이 장문인이 된 후 여러 차례, 이번에도 무난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산유를 나온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1,000명가량 되는 큰 패거리가 나타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무시하면서 짓밟고 지나가려 한다. 무례함에 제대로 열이 오른 원후파는 그 무리를 박살 낸다.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는 종리당도 피칠갑을 하며 활약하고, 하나뿐인 제자인 배원세까지 난폭하게 굴린다.
이 사건으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자 종리당은 장로들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문하제자들을 이끌고 날름 대회합이 열리는 청성파로 피신한다.[2] 그는 숙식비 대신 청성파 장문인 불해도인(不解道人)의 부탁을 받아들여 당가채(唐家寨)와 방무한 무리의 중재에서 윽박질러 어깃장을 놓는 역할을 맡는다. 덕분에 원후파는 손님으로 운리관에 머물며 수십 년 만에 육검협의 뒤를 잇는 도운연이 삼절(三絶)과 청풍검법(淸風劍法)만을 사용해 사천오흉(四川五凶)을 기왓장으로 때려눕히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종리당은 자신도 하후염을 따라 여행하며 큰 배움을 얻었던 것과 같이 좋은 기회라 여겨 배원세를 파문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운연에게 동행시킨다.
4~5년마다 원후파는 문인들이 사당에 모여 열조(烈祖)님들에게 제례를 지낼 겸 회합을 갖는다. 이를 종리당이 장문인이 된 후 여러 차례, 이번에도 무난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산유를 나온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1,000명가량 되는 큰 패거리가 나타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무시하면서 짓밟고 지나가려 한다. 무례함에 제대로 열이 오른 원후파는 그 무리를 박살 낸다.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는 종리당도 피칠갑을 하며 활약하고, 하나뿐인 제자인 배원세까지 난폭하게 굴린다.
이 사건으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자 종리당은 장로들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문하제자들을 이끌고 날름 대회합이 열리는 청성파로 피신한다.[2] 그는 숙식비 대신 청성파 장문인 불해도인(不解道人)의 부탁을 받아들여 당가채(唐家寨)와 방무한 무리의 중재에서 윽박질러 어깃장을 놓는 역할을 맡는다. 덕분에 원후파는 손님으로 운리관에 머물며 수십 년 만에 육검협의 뒤를 잇는 도운연이 삼절(三絶)과 청풍검법(淸風劍法)만을 사용해 사천오흉(四川五凶)을 기왓장으로 때려눕히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종리당은 자신도 하후염을 따라 여행하며 큰 배움을 얻었던 것과 같이 좋은 기회라 여겨 배원세를 파문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운연에게 동행시킨다.
- 《투검지》 문하제자 중 발 빠른 구강수를 붙인 다음, 종리당은 청성 장로들과 도운연의 여행을 지켜본다.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한 제자가 먼저 돌아오고도 그는 약 3년 동안 운리관에서 지내다가 원무산으로 돌아간다. 그제야 장로들인 오검귀가 구귀(九鬼)와 금모하 등을 거두어 가르친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나 금모하는 원후파의 시조인 귀후(鬼侯)의 검(劍) 귀룡아(鬼龍牙)의 음검(陰劍)을 검총(劍塚)에서 꺼내 오랜 세월 봉인된 요룡(妖龍)을 처단하기 위한 인연자가 된다.
종리당으로서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원후파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귀둔(鬼遁)에 있어서 손꼽히는 가문인 영호가(令狐家)의 가주인 영호인과 함께 금모하를 직접 만나기로 한다. 그리하여 요룡을 죽여야 하는 원후파의 인연자가 해야 할 사명을 영호인으로부터 알게 된 금모하는 실천하기를 거부하고 귀룡아 음편을 포기한다. 그는 아직 자신과 얽혀있는 팽하려와의 인연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종리당은 장문인의 권한으로 그가 자기 일을 정리하고 원후파 인연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까지 최소 10년은 개입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한다.
3. 무공
- 검령비결(劍靈秘訣): 원후오귀가 옛이야기만을 듣고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4단계 마검비전(魔劍秘傳)을 복원해 익히고 있다면, 종리당은 익히지는 않았어도 원후파의 장문인답게 제대로 전승을 이어서 누구보다 마검비전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