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이스드라이에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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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스드라이에크역 전경(2013). 전철이 지나가는 위층 플랫폼이 U1, 아래층 플랫폼이 U2 역이다.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 구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베를린 지하철 U Bahn 역. 역명인 글라이스드라이에크는 삼각선의 독일어로, U Bahn 첫번째 노선의 삼각선상에 역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역사는 스위스 출신 건축가 제프 카이저가 설계하였다. 역 밑의 황량한 부지는 본래 화물을 취급하던 공간이었으며, 2014년 공원화되었다.
1902년 개통 당시에는 이름 그대로 삼각선이었으며, 승객을 취급하는 역은 없었다. 뷜로슈트라세역에서 뫼케른브뤼케역으로 이어지는 본선에 라이프치거역 (현 포츠다머 플라츠역) 쪽으로 분기하는 지선이 있는 형태였다. 운행 방식은 뫼케른브뤼케 방면 → 라이프치거 방면, 라이프치거 → 뷜로슈트라세 방면, 뷜로슈트라세 → 뫼케른브뤼케 방면 3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옆에 붙은 건물은 우편화물 취급역이다.
하지만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이 삼각선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당시엔 신호 제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모두 수동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고, 삼각선을 지나는 열차들의 배차 간격을 5분 이하로 줄일 수 없었다. 삼각선을 지나기 전역에서 다른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대피하고 있어야 했던 것. 1908년 라이프치거역에서 슈피텔마르크트 방면으로 지선이 연장되자 문제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삼각선 상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구조 변경 문제가 공론화 되었다. 1908년 11월 26일 13시경 뷜로슈트라세 방면에서 뫼케른브뤼케 방면으로 가던 열차의 진입 신호를 라이프치거 방면에서 뫼케른브뤼케 방면으로 가던 열차가 자신의 진입 신호로 착각하였다. 하지만 이미 해당 선로에는 뷜로슈트라세에서 오던 열차가 통행중이었고, 라이프치거에서 오던 열차 운전수가 이를 눈치챘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결국 뒤에 오던 열차가 앞서가던 열차의 옆구리를 들이박고 탈선, 고가교 아래로 떨어졌다. 당시에는 열차간 통신 기능이 없어 오직 신호에만 의존하였고, 비상제동장치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사망자는 18명이었으며 부상자는 21명이었다. 사고를 낸 운전수는 1년 9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1911년 5월 17일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고, 시 당국은 삼각선 운행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삼각선 내에 십자로 입체교차하는 역을 만들어 노선 간 환승이 가능하게 하였다. 1912년 5월부터 1913년 8월까지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역은 1912년 11월에 사전 개통하였다. 삼각선을 한 선씩 공사하였기 때문에 나머지 두 선을 이용한 운행은 공사중에도 계속되었다.
개조 이후 베를린 지하철은 현재의 U1에 해당하는 노선(글라이스드라이에크 - 바르샤우어 슈트라세)과 U2에 해당하는 동물원역 - 라이프치거(현 포츠담 광장역) - 슈피텔마르크트(1908년 연장 개통) 노선으로 나뉘었다. 원래 있던 삼각선은 두 노선 간 연결선으로만 쓰였다.
1912년 개조 당시부터 쿠어퓌르스텐슈트라세역을 지나 놀렌도르프플라츠로 향하는 U1 연장노선을 건설할 생각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다가 1926년에서야 완공할 수 있었다. 그 14년동안 글라이스드라이에크역은 종착역 구실을 하였다.
그러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이 분단되고 베를린도 동서로 분단되자, 이번에는 U2 노선이 이 역에서 짤려나갔다. 19년만에 다시 U2 노선의 시종착역이 된 것이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독일이 통일되자, 1991년 짤려나간 노선이 복구되면서 46년만에 다시 중간정차역이 되었다.
두 역 다 섬식이다.
스테이션 베를린(Station Berlin) 이라는 전시장이 바로 앞에 있다. 이외에 독일 기술박물관, 글라이스드라이에크 공원 등이 있다.
글라이스드라이에크역 전경(2013). 전철이 지나가는 위층 플랫폼이 U1, 아래층 플랫폼이 U2 역이다.
1. 개요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 구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베를린 지하철 U Bahn 역. 역명인 글라이스드라이에크는 삼각선의 독일어로, U Bahn 첫번째 노선의 삼각선상에 역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역사는 스위스 출신 건축가 제프 카이저가 설계하였다. 역 밑의 황량한 부지는 본래 화물을 취급하던 공간이었으며, 2014년 공원화되었다.
2. 역사
1902년 개통 당시에는 이름 그대로 삼각선이었으며, 승객을 취급하는 역은 없었다. 뷜로슈트라세역에서 뫼케른브뤼케역으로 이어지는 본선에 라이프치거역 (현 포츠다머 플라츠역) 쪽으로 분기하는 지선이 있는 형태였다. 운행 방식은 뫼케른브뤼케 방면 → 라이프치거 방면, 라이프치거 → 뷜로슈트라세 방면, 뷜로슈트라세 → 뫼케른브뤼케 방면 3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옆에 붙은 건물은 우편화물 취급역이다.
하지만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이 삼각선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당시엔 신호 제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모두 수동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고, 삼각선을 지나는 열차들의 배차 간격을 5분 이하로 줄일 수 없었다. 삼각선을 지나기 전역에서 다른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대피하고 있어야 했던 것. 1908년 라이프치거역에서 슈피텔마르크트 방면으로 지선이 연장되자 문제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삼각선 상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구조 변경 문제가 공론화 되었다. 1908년 11월 26일 13시경 뷜로슈트라세 방면에서 뫼케른브뤼케 방면으로 가던 열차의 진입 신호를 라이프치거 방면에서 뫼케른브뤼케 방면으로 가던 열차가 자신의 진입 신호로 착각하였다. 하지만 이미 해당 선로에는 뷜로슈트라세에서 오던 열차가 통행중이었고, 라이프치거에서 오던 열차 운전수가 이를 눈치챘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결국 뒤에 오던 열차가 앞서가던 열차의 옆구리를 들이박고 탈선, 고가교 아래로 떨어졌다. 당시에는 열차간 통신 기능이 없어 오직 신호에만 의존하였고, 비상제동장치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사망자는 18명이었으며 부상자는 21명이었다. 사고를 낸 운전수는 1년 9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1911년 5월 17일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고, 시 당국은 삼각선 운행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삼각선 내에 십자로 입체교차하는 역을 만들어 노선 간 환승이 가능하게 하였다. 1912년 5월부터 1913년 8월까지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역은 1912년 11월에 사전 개통하였다. 삼각선을 한 선씩 공사하였기 때문에 나머지 두 선을 이용한 운행은 공사중에도 계속되었다.
개조 이후 베를린 지하철은 현재의 U1에 해당하는 노선(글라이스드라이에크 - 바르샤우어 슈트라세)과 U2에 해당하는 동물원역 - 라이프치거(현 포츠담 광장역) - 슈피텔마르크트(1908년 연장 개통) 노선으로 나뉘었다. 원래 있던 삼각선은 두 노선 간 연결선으로만 쓰였다.
1912년 개조 당시부터 쿠어퓌르스텐슈트라세역을 지나 놀렌도르프플라츠로 향하는 U1 연장노선을 건설할 생각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다가 1926년에서야 완공할 수 있었다. 그 14년동안 글라이스드라이에크역은 종착역 구실을 하였다.
그러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이 분단되고 베를린도 동서로 분단되자, 이번에는 U2 노선이 이 역에서 짤려나갔다. 19년만에 다시 U2 노선의 시종착역이 된 것이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독일이 통일되자, 1991년 짤려나간 노선이 복구되면서 46년만에 다시 중간정차역이 되었다.
3. 역 정보
두 역 다 섬식이다.
4. 역 주변 정보
스테이션 베를린(Station Berlin) 이라는 전시장이 바로 앞에 있다. 이외에 독일 기술박물관, 글라이스드라이에크 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