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케리우스
1. 개요
서로마 제국의 황제. 473년 올리브리우스를 암살한 권신 군도발트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474년 6월 율리우스 네포스를 서로마 황제로 내세운 동로마 제국군에게 제압되어 황위에서 물러났다.
2. 생애
2.1. 초기 경력
글리케리우스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달마티아 출신이라는 기록은 남아 있다. 그는 서로마 제국 말기의 권신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의 부하들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2. 황제 즉위
472년 10월 23일 또는 11월 2일, 군도발트가 올리브리우스를 암살했다. 군도발트는 4개월 동안 황제 자리를 비워놓다가 473년 3월 3일 라벤나에서 글리케리우스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했는데, 글리케리우스는 그들에게 공물을 바치며 이탈리아 대신 갈리아를 치게 했다. 또한 글리케리우스는 474년 스스로 집정관을 임명하지 않고 동로마 제국에서 추천한 사람을 집정관으로 임명시킴으로써 동로마 제국이 자신을 인정해주길 희망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오 1세 트라키안은 그를 군도발트의 꼭두각시 황제로 간주하고 서로마 제국 황제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2.3. 퇴위
474년 6월, 율리우스 네포스를 대동한 동로마군이 오스티아에 상륙했다. 글리케리우스는 전의를 상실하고 6월 24일 라벤나에서 항복했다. 그는 즉시 살로나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조용히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부 자료에는 나중에 율리우스 네포스가 달마티아로 망명간 후 서로마 제국의 황제를 자칭했다가 암살당한 사건의 배후에는 글리케리우스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글리케리우스가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