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리우스

 


[image]
'''제호'''
올리브리우스
'''휘'''
안시우스 올리브리우스 아우구스투스
(Anicius Olybrius Augustus)
'''생몰년도'''
? ~ 472년
'''재위기간'''
472년 3월 23일 또는 7월 11일 ~ 472년 10월 23일 또는 11월 2일
1. 개요
2. 생애
2.1. 초기 경력
2.2. 황제 후보
2.3. 황제 등극
2.4. 최후


1. 개요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반달 왕국의 국왕 가이세리크에게 로마 황제 후보로 두번 추천받았고 472년에 서로마 제국 말기의 권신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에게 옹립되었으나 불과 석달 내지 7개월 만에 암살되었다.

2. 생애



2.1. 초기 경력


올리브리우스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도 로마 또는 이탈리아 내에서 태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일찍이 발렌티니아누스 3세와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황후의 어린 딸인 플라키디아와 결혼했다. 이 결혼이 언제 성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에티우스가 플라키디아를 자기 아들과 결혼시켜달라고 요구했다가 암살당했다는 사실로 볼 때 적어도 아에티우스가 죽은 뒤에 결혼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일부 학자들은 올리브리우스가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의 아들이라고 간주하며, 올리브리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암살된 후 아버지에 의해 플라키디아와 결혼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설일 뿐이며, 올리브리우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455년 가이세리크 왕이 이끄는 반달 함대가 로마를 약탈한 후 에우독시아 황후와 두 딸 등 수많은 이들을 카르타고로 끌고 갔다. 이때 올리브리우스의 행방에 대해서 설이 엇갈린다. 일부 자료는 그가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기록에는 올리브리우스가 가이세리크의 군대와 카르타고로 갔다고 적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가이세리크가 에우독시아를 첩으로 삼은 뒤 올리브리우스를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는 에우독시아 황후의 딸 플라키디아와 결혼한 올리브리우스가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여겼고, 그를 이용한다면 로마 제국에 자신의 영향력을 좀더 확대할 수 있다고 여겼다. 가이세리크는 이때부터 올리브리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도록 주선한다.

2.2. 황제 후보


461년 8월, 로마 제국의 권신 플라비우스 리키메르가 반달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마요리아누스를 습격해 죽여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가이세리크는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리키메르에게 올리브리우스를 새 황제로 세우라고 압박을 넣으면서, 여차하면 마요리아누스와 맺었던 평화 조약을 위반하고 군대를 이탈리아로 파견하려 했다. 그러나 리키메르는 사절을 가이세리크에게 보내 조약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리비우스 세베루스를 새 황제로 선임했다. 다만 플라키디아는 가이세리크에게서 풀려나 콘스탄티노플에서 남편과 함께 지냈고 462년 딸 안시아 율리아나를 낳았다.
465년 리비우스 세베루스가 사망했다. 이에 가이세리크는 올리브리우스를 다시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천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오 1세 트라키안은 선임 황제 마르키아누스의 사위였던 안테미우스를 서로마 황제로 선임했고, 리키메르 역시 안테미우스의 딸 알리피아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그의 집권을 용인했다.

2.3. 황제 등극


472년, 레오 1세는 올리브리우스를 이탈리아에 파견했다. 그가 보내진 목적은 로마에서 안테미우스를 포위한 리키메르에게 전쟁을 그만두고 안테미우스와 화해할 것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임무를 성사시킨 후에는 카르타고로 가서 가이세리크에게 평화 조약을 제안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레오1세가 안테미우스에게 보낸 밀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너는 누구도 너를 배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리키메르를 제거해야 한다. 나는 또한 올리브리우스를 너에게 보낸다. 나는 네가 그를 죽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지 않을 수 있고 스스로 통치할 수 있을 것이다."

리키메르는 이 밀서를 중도에서 가로채서 올리브리우스에게 보여줬다. 이 밀서가 진짜인지 리키메르의 조작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올리브리우스는 여기에 넘어갔다. 올리브리우스는 안테미우스를 죽이는 데 동의했고, 리키메르는 안테미우스를 살해한 뒤 올리브리우스를 제위에 올렸다. 사실 리키메르 입장에서도 원로원 의원이고 황실의 일원인 플라키디아의 남편이며 반달 왕국 국왕 가이세리크가 후원하는 인물을 세우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레오 1세는 안테미우스가 살해되고 올리브리우스가 황위에 올랐다는 것에 격노하며 그를 찬탈자라고 비난했다.

2.4. 최후


올리브리우스가 제위에 오른 지 40일 후, 리키메르가 급사했다. 그의 조카 군도발트가 삼촌을 대신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올리브리우스를 갈아치우기로 결정했고, 결국 올리브리우스는 암살되었다. 그가 죽은 날짜가 10월 23일이라는 기록이 있고 11월 2일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