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비우스 리키메르

 

Flavius Ricimer (?~472.8.18)

서로마 제국게르만족 장군. 간단하게 "리키메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서로마를 좌지우지하며 황제들을 다수 살해한 것으로 유명하다.[1] 나름대로 명장이었다는 평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로마 몰락의 원흉 중 하나.
코르시카반달족 함대를 물리친 것으로 명성을 얻고 서로마 황제 아비투스를 몰아냈다. 그러나 수에비족의 왕족과 서고트족의 공주의 사이에서 출생한 게르만족이고 아리우스파이기 때문에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리키메르는 마요리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하지만 마요리아누스가 '''서로마 황제치고 대단히 유능한 인물'''인 데다 시민의 인기를 얻고 독립할 낌새를 보이자 불화가 생겼고, 마요리아누스의 반달족 원정이 반달의 왕 가이세리크와 내통한 신하들의 배신으로 실패하자 이를 핑계로 제거해버린다.
이후 사실상 로마의 최고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황제들은 그의 꼭두각시에 불과해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고 리키메르의 비위를 거슬리면 바로 쫓겨나 죽임을 당하였다. 공식적으로 살해된 황제의 수만 아비투스, 마요리아누스, 세베루스, 안테미우스 등 무려 네 명에 달한다.
이후 동로마에 의해 '''2년 동안 제위가 빈''' 서로마 황제가 된 안테미우스는 리키메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딸까지 그에게 시집보냈지만 동로마에 의한 반달족 원정이 처참하게 실패로 돌아가자 리키메르는 올리브리우스를 새 황제로 옹립하고 안테미우스를 공격하여 죽여버렸다.
안테미우스가 죽은 이후 40일 뒤 그도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피를 엄청나게 토하고 죽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독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그의 조카 군도바트가 지도자가 되었다가 수년 뒤 그가 앉힌 허수아비 황제 글리케리우스가 율리우스 네포스의 공격을 받고 망명하면서 다시 로마인 오레스테스가 리키메르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리키메르의 잦은 황제 교체는 내부 정치에 모든 걸 집중함으로써 안 그래도 불안하고 망해가던 서로마의 멸망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리키메르의 통치 기간 동안 서로마의 지배 영역은 계속 축소되어 멸망 직전에는 이탈리아 반도와 달마티아[2]. 그리고 혼란이 계속되는 갈리아 북부 지역만 남게 되었다[3]. 그리고 그의 사후 서로마는 그의 부하였던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1] 리키메르는 스틸리코아에티우스의 집권을 참고하였지만 한 황제만 죽을 때까지 섬겼던 그들과 노선이 달랐다.[2] 율리우스 네포스의 반독립 영역[3] 갈리아 지역의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로마인의 세력이 강했고, 여기에 대부분의 게르만계 부족들이 동로마의 눈치를 보아 친로마 노선을 지향하는 상태였던 덕에 의외로 지배가 길게 이어졌다. 다만 서로마 제국의 통제권에 놓인 것은 아니고, 로마인들의 세력이 유지된 것.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을 당시 갈리아 총독이었던 시아그리우스(Syagrius)가 오늘날의 수아송을 중심으로 독자정권을 세운 것인데, 오늘날 북부 프랑스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아예 이 정권을 '수아송 왕국(Kingdom of Soisson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게 프랑크족에게 멸망한 것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10년 뒤인 4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