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식

 


성명
김구식(金九植)
본관
경주 김씨[1]
생몰
1881년 9월 13일 ~ 1947년 1월 22일
출생지
경기도 용인현 기곡면 하갈동
(현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2]
사망지
경기도 용인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구식은 1881년 9월 13일 경기도 용인현 기곡면 하갈동(현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용인군 일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자신이 살던 하갈리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3월 30일 하갈리 강가에서 주동이 되어 수십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이해 4월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고하였으나 기각되었고 이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용인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7년 1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김구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계림군파 20세 식(植) 항렬.[2] 인근의 영덕동과 함께 경주 김씨 계림군파 집성촌이다. 김윤식 전 국회의원·정치인 김학민 부자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