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현

 

'''이름'''
'''김귀현'''
'''(金貴鉉 / Kim Gwi-Hyeon)'''
'''출생'''
1990년 1월 4일 (34세)
[image]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임자군도
'''국적'''
[image]대한민국
'''신체조건'''
170cm / 60kg
'''직업'''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코치
'''유소년 클럽'''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2005~2010)
'''소속팀'''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2010~2012)
대구 FC (2013~2014)
경주시민축구단 (2015)
알 나스르 S.C.S.C.[1] (2015~2016)
사나트 나프트 아바단 (2016~2017)
알 아흘리 도하 (2017~2018)
크라비 FC (2018)
미르바트 클럽 (2018~2019)
1. 개요
2. 선수 경력
3. 국가대표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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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선수 출신.

2. 선수 경력


청각장애인 부부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축구 선수로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남 김해에 위치한 축구교실에 들어갔으나 2년도 되지 않아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자신을 지도해주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코치로부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중학교 1학년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헨티나로 진출했다.
수페르리가 아르헨티나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팀에 20만대 1의 경쟁을 뚫고 입단,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팀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과 리더쉽을 인정받아 주장까지도 맡았다.
CA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공식 홈페이지의 1군 스쿼드에는 김귀현의 사진과 신체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만 등번호가 아직 입력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1군 리그 정식 출전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아르헨티나 법이 바뀌면서 2009년부터 스포츠 비자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김귀현은 그간 정식경기에 뛸 자격이 없었다. 2012년 4월에 마침내 영주권을 얻음으로서 정식으로 1부 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 경기에서 즉시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등번호는 31번.
그러나 2012년 9월부로 벨레스 사르스필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소속팀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12월 17일 대구 FC에 입단했다.
2013시즌은 초라했다. 오프시즌에 허벅지 부상을 당해서 시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후엔 송창호, 안상현 등에게 밀려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2014시즌에는 준주전으로 뛰었으나 특출난 활약은 하지 못했고 시즌이 끝난 후 계약 해지로 팀을 나갔다.
2015시즌 K3리그 경주시민축구단으로 이적하였고, 9월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오만 프리미어 리그 알 나스르와 1년 계약을 맺었다.
2016년 6월 이란 프로리그 팀인 사나트 나프트 아바단으로 이적했다. 2012년 페르세폴리스로 이적했던 권준에 이어 한국인 선수로는 2번째의 이란 진출이다. 다만 권준은 부상으로 실전에 출전하지는 못했기에 그가 최초로 이란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 6월 카타르 스타즈 리그의 알 아흘리 SC로 다시 이적하였다. # 그러나 이적 후 리그 첫 경기부터 부상을 당해 일찌감치 대체 선수가 영입되는 등[2] 미래가 다소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결국 그 이후로는 출장하지 못했고 시즌이 끝난 뒤 태국 2부 리그에 있는 크라비 FC로 이적하였다.
지금 현재에는 태국 2부 리그 크라비 FC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소속된 팀이 없는 상태이며 팀을 구하는 중인 모양이다. 애초에 90년생으로 아직 뛸수 있는 나이이기에 은퇴는 생각하지 않는 듯.
2019년 초, 현역에서 은퇴하고 현재 대구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국가대표


2008년 U-19 청소년 대표팀의 조동현 감독이 그를 테스트하기 위해 국내로 불러들였으나 귀국하자마자 치른 연습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부딪혀 무릎 인대 부상을 당했고 결국 제대로 테스트도 받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로 떠나야만 했다.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은 수비력 부족에 대한 선수수급에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었던 상황인지라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11년 올림픽 대표팀 선수로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2011년 3월 27일 중국과의 평가전에 출전하여 전반 12분 정확한 로빙 패스를 성공시키며 김동섭의 선제 결승골의 시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날 홍명보 감독은 김귀현에 대해 "김귀현이 함께했던 시간이 많지 않아 팀플레이가 부족했지만 본인의 기술은 잘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 이후로 전혀 콜업이 안된 걸로 보아 국대로서의 자질은 못된다고 평가받았다.

4. 여담


그의 부모는 모두 청각장애인에다가 아버지 김직[3] 씨는 만성 폐질환으로 인해 시한부 삶을 사셨을 정도로 가정 환경이 불우한 편이다. 김귀현이 처음 대표팀(올림픽 대표팀이지만)에 발탁되어 3월 27일 중국과 평가전을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르게 되자 그의 부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경기장에 찾아와 직접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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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기장까지 전남 임자도 고향 사람들이 찾아와 열띤 응원도 펼쳤고 이에 김귀현은 감사의 큰절을 올려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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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사우디의 그 팀이 아니다. 오만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팀.[2]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수비수인 이브라힘 알자와흐레.[3] 2013년 9월 22일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