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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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연방 공화국.수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서쪽에는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칠레와 붙어있고 북쪽에는 볼리비아, 동북쪽에는 파라과이, 동쪽에는 브라질과 우루과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특히 북쪽으로 볼리비아와 접하는 안데스 산맥 일대는 과거에는 잉카 제국의 영향에 속해 있었다.[1]
인구밀도가 15.6명/㎢ 으로 호주, 캐나다, 몽골, 나미비아 등에 버금가게 매우 낮다. 땅은 넓은데 인구가 너무나 절망적으로 적어서 대부분의 땅이 나대지이며 고층빌딩은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나 볼 수 있다. 인구 대부분이 유럽인 혈통이 강한 백인으로 마푸체족이나 테우엘체족, 과라니족, 아이마라족 등의 남미 원주민의 피가 섞이긴 했지만[2] 80% 이상이 유럽계 유전자라 스스로를 '''남미의 백인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백인들 중 이탈리아, 독일 혈통이 많으며 독일계 혈통 덕에 금발벽안도 꽤 많아 이러한 레토릭이 먹히기도 한다.[3] 아르헨티나의 독일계는 주로 춥고 척박한 추부트 지방 등 파타고니아에 정착해 개간에 나섰으며 이탈리아계는 지중해 연안과 기후가 유사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수도권 일대에 대거 흘러들어왔다.
크라잉 넛의 룩셈부르크에서는 애석하게도 '아'''리'''헨티나'로 나온다.[4][5]
2. 국가 상징
2.1. 국호
아르헨티나(Argentina)라는 나라 이름은 라틴어로 '은(銀)'을 의미하는 '아르겐툼(Argentum)'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는 스페인어로 '은'을 뜻하는 '라 플라타(La Plata) 식민지'로 불렸는데 이는 스페인 사람들이 이 땅에 처음 이르렀을 때 라 플라타 강 상류에 은으로 된 산맥이 있다고 믿었던 것에서 유래하여 강의 이름을 붙이고 이를 지역명으로 한 것이다.[6] 그리고 독립 직후 스페인어 지명 대신 이를 라틴어로 의역한 아르헨티나를 국명으로 채택해 지금에 이른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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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는 하늘색과 하얀색에 태양 문장이 있는데 하늘색은 애국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마누엘 벨그라노가 입었던 의상에서 본딴 것으로 하늘과 땅을 의미하며 가운데 태양 문장은 '5월의 태양(Sol de Mayo)'이라 불리는 문장으로 ''''최후의 승리를 거둔 날에 하늘이 개고 태양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다''''는 뜻이다. 민간에서는 문장이 없는 깃발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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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의 독립에 크게 기여해준 일이 있어서 우루과이의 국기도 아르헨티나의 국기와 거의 비슷하게 흰색과 파란색, 5월의 태양을 사용했다. 다만 우루과이의 국기는 아르헨티나의 국기와 구분하기 위해 마치 성조기처럼 5월의 태양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 넣은 뒤 흰 바탕에 줄을 연속으로 넣는 방식을 채택했다.
2.3. 국가
국가는 1813년 제정된 아르헨티나 국가인데 상당히 방대한 규모라서 국제 스포츠 경기 때 종종 씹히는 굴욕을 받고 있다.
앞의 전주가 옆나라보다 길다.
3. 역사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직후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 남미의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남미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했으며,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농업 및 목축업을 통해 국가의 부를 쌓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농업과 목축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중공업과 제조업 등 산업 전환 실패로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어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강대국의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다.
4. 정치
아르헨티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후안 페론과 그 부인 에바 페론에 의한 페론주의 정권이 1955년까지 집권했다. 그러나 1955년 쿠데타 이후로 페론이 축출당하면서 급진시민연합이 집권하다 군부가 나란히 집권하는 혼란기를 겪었다. 이 때부터 아르헨티나 경제는 혼란통에 성장이 멈추고 말았다.
이후 1973년에 오랜만에 페론주의자들이 16년만에 재집권하였으며 그해 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후안 페론이 선출되었지만 후안 페론은 오래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고, 후임인 이사벨 데 페론은[8] 오일 쇼크로 인한 침체에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여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고 결국 군부 쿠데타로 축출당하면서 민주화 직전까지 군사독재정권이 집권하였다. 이사벨 페론은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군부는 이후 페론주의의 흔적을 지우고자 노력했으며 33세에 암으로 요절한 에비타의 엠버밍 처리된 시신 일부를 훼손하는 짓도 저질렀다. 이사벨 페론은 당연히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은 다른 나라로부터 외채를 대거 끌여들이면서도 내핍조치를 취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발은 거세졌고, 당시의 고이율 상황까지 겹쳐지다가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파탄에까지 이르렀다. 군사독재 정권이라도 경제개발에 주력하여 성과를 낸 정권이 없지는 않지만,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자인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나 레오폴도 갈티에리 등은 그딴 것도 없이 그냥 지들 배만 불리는 전형적인 남미 대륙의 군벌 독재자일 뿐이었다.
결국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이 집권한 군부는 영국 해군을 상대로 포클랜드 전쟁까지 일으켜 상황을 반전하려 했지만 결국에 막강한 해군력을 지닌 영국에게 떡실신당해[9] 전쟁에서 참패하고 1980년대 민주화 이후로는 급진시민연합[10] 과 페론당이 번갈아서 집권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경제위기 속에서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 외환위기 때 페르난도 델 라 루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빤쓰런을 해 버리자(...) 급진시민연합이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고 페론당 내에서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나 책임론을 놓고 갈등을 벌여 수 여 개의 성향이 다른 정당으로 분리되었으며 이중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소속된 중도좌파 성향의 승리를 위한 전선이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물론 지지율이 쭈욱 유지된 건 아니고 2008년부터 200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출세 인상파동[11]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져서 2009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하였으며,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경기침체와 연 20%가량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30%대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을 역임했던 공화주의제안당 소속의 중도우파 마크리가 2차 선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집권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치와 경제를 말할 때 흔히 페론주의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르헨티나 내에서 후안 페론이 현재에까지 아르헨티나 정치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 자체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한상 간과되는 점은 페론주의 내에도 수많은 분파가 있었고, 비 페론주의 정당들이 집권한 기간도 예상 외로 길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웃긴건 후안 페론이 표푤리스트로 욕먹는건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인데도 정작 경제지표를 보면 페론주의자가 집권했을 때 비 페론주의자들이 집권했을 때보다 그나마 경제적인 상황은 나았다는 점이었다.[12] 이는 '''페론주의를 극복한다면서 되려 외채를 실컷 늘려먹다보니 경제를 더욱 말아쳐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를 망치는 원흉 소리를 듣고있으면서도 현재까지고 생명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직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페론주의자들이 정의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으로 묶여있기라도 했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경제위기를 거친 이후로는 여러 다른 성향의 정당으로 분당되다 보니 페론주의가 어떤 것인지 따지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졌으며, 심지어 비 페론주의 성향의 마크리 정부에서조차 보수적 페론주의 성향의 정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을 지경이다.
2019년 대선에서 정부의 긴축정책과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이 다시 좌파 페른주의자 '모두의 전선' 진영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페론주의 담론과는 별개로 아르헨티나 정치제도에서 특이한 점으로 하원 국회의원도 한 번에 다 뽑지 않고 1/2씩 나눠서 뽑는다는 점과 본 선거에 앞선 경선을 각 정당별로 날짜를 따로 잡는것이 아닌 전국적으로 한번에 치른다는 점인데(예비선거) 그것도 당원들끼리나 신청한 일반인뿐만 아니라 투표 가능한 유권자 대부분이 참여하기 때문에[13] 차기 선거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을 직접 선출하는 선거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취급을 받는다.
5. 국방
6. 행정구역
7. 자연
면적은 276만 km²로 세계 8위이다.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제외하고는[14] 아르헨티나보다 면적이 넓은 나라가 없으며 아프리카에는 아예 없다.
국토가 세로로 넓게 뻗은 덕에 온갖 종류의 지형을 두루 갖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열대우림과 빙하를 동시에 갖춘 몇 안되는 나라다. 밀림은 북부 후후이, 미시오네스, 이과수 지역에, 빙하는 남부 파타고니아와 티에라델푸에고 지역에 각각 있다. 하지만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타고니아 지역이 사막과 초원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과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타고니아 사막은 고비 사막, 칼라하리 사막[15] 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넓은 사막이다.
야생 동물로는 레아, 사슴, 개미핥기, 과나코, 비쿠냐, 콘도르, 카라카라, 카피바라, 페커리, 퓨마, 재규어, 주머니쥐, 뉴트리아, 친칠라, 마라, 맥, 물개, 올빼미, 벌새, 고래, 펭귄 등이 서식한다.
살타사우루스, 카르노타우루스, 기가노토사우루스, 아르헨티노사우루스, 아벨리사우루스, 아우카사우루스, 노아사우루스, 헤레라사우루스, 리오하사우루스, 아마르가사우루스, 푸에르타사우루스, 파타고사우루스, 에오랍토르, 아미그달로돈, 라플라타사우루스, 후탈롱코사우루스 같은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는 등 미국, 캐나다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룡 화석이 가장 많이 발굴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세계 최남단 도시인 우수아이아가 이 나라에 있다. 우수아이아 근처를 파타고니아라고 하는데 경치가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조인빌 섬을 아르헨티나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인빌 섬은 거의 남극에 붙어있는 것만 간신히 면할 정도로 남극과 엄청나게 가까운 위치에 있다.
세계 3대 폭포에 항상 꼽히는 거대한 이과수 폭포도 아르헨티나의 대자연을 대표하는 비경이다. 이구아수 폭포는 원래는 전 지역이 파라과이의 영토였지만 파라과이가 괜히 이제 갓 독립한 우루과이를 먹으려고 욕심을 내서 브라질 한번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이구아수 폭포의 일부를 빼앗겼고 빼앗긴 지역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다시 영토 분할을 통해서 가져갔다.
안데스 산맥이 아르헨티나 서쪽에 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6,961m의 아콩카과 산도 아르헨티나에 있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지진이 꽤 많이 일어나며 특히 멘도사 주 지역이 지진이 많다. 특히 지진의 나라로 악명을 떨치는 칠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지진이 꽤나 심각하다. 아르헨티나 전체가 아닌 멘도사 주에서만도 대한민국에서 기록된 어느 지진보다 규모가 큰 지진 (5.2 초과)이 10여 년에 한 번 꼴로는 일어난다. 멘도사 주의 면적은 남한 면적의 1.48배인 148,827 ㎢로 그렇게 크지는 않다. 다만 1978년에야 규모까지 관측하는 지진 기록이 시작된 남한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19세기에도 규모까지 있는 지진 기록이 있음은 감안해야 할 듯. 남미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고 알려진 칠레 옆에 붙어 있고,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만나는 안데스 산맥 근처가 태평양판과 남아메리카 판이 만나는 곳에서 가까워서 지진이 꽤 일어나는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UFO가 많이 출몰하는 나라 중 하나다. 역대 UFO중에서 가장 선명한 UFO가 발견되기도 했다. 검색어 자동완성에 아예 '''아르헨티나 UFO'''가 있을 정도다. 그리고 2015년 이후에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물론...가짜라고 비웃음당한 자료도 많다...
8. 사회
살인율이 높기로 유명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서 칠레,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치안이 안정적이라 살인율이 낮은 편에 속하는 편이다. 2015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6.53건으로 전 세계 중 72위에 속하며, 이는 남미 국가 중에서도 안전하다고 알려진 에콰도르나 우루과이보다도 낮은 수치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살인율이 낮을 뿐이지 전체적인 치안은 뒤에서 17위일 정도로 좋지 않은 축에 속한다.[16] 소매치기를 특히 조심해야 하고, 특히 밤에 돌아다니는 걸 자제하고, 빈부격차가 높은 만큼 빈민가 같은 곳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더구나 이 나라도 총기소지가 자유라서 총기를 이용한 노상강도가 꽤 흔해서 빈민가에는 진짜 안 가는게 좋다.
지역감정이 세계에서도 수준급인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보카 지구와 나머지 지역 간의 같은 도시 내에서 지역감정이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CA 보카 주니어스와 CA 리버 플레이트가 축구 경기를 하게 되면 가끔 허공에 공포탄을 장전한 권총을 난사하는 훌리건도 존재한다.
1인당 정신과의사 비율이 세계 최고로 높다.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책이 나오면 가장 먼저 번역되어 출판되는 곳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농담도 있다. 반쯤은 농담 삼아 "아르헨티나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의심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1960년대 재무장관 하나는 경제위기 해결책으로 무엇을 생각하냐는 질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도록 하죠''''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1960년대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개판이던 시절인지라 저런 농담도 먹히는 시대였다. 참고로 그 때 경제위기의 여파로 결국 아르헨티나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1983년 라울 알폰신 집권 전까지 20년 간 군사독재가 실시되며, 그나마 이웃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칠레를 개발하였으나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자들은 자기들 배 채우기에나 바빠 경제상황은 더 나빠져서, 나중에는 아르헨티나가 못사는 빨갱이 나라(...)라며 우습게 보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자신이 아르헨티나를 통치하면 저 꼴은 안 냈다며 비아냥이나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2010년 7월 15일에는 남미 최초로 동성결혼을 허가한 국가가 되었다.
9월에는 휴일이 없고, 2월은 휴일이 있는 해와 없는 해가 있다. 또한 공휴일과 주말 사이에 하루가 끼면[17] 그 사이의 하루도 휴일로 인정해 준다.
놀랍게도 공식 환율과 암환율이 따로 존재하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였지만, 2016년 정권이 바뀌고 환전규제가 사라지면서 공식적으로 암환율이 사라졌다. 아르헨티나 현지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아르헨티나 내국인들이 달러를 마음대로 사지 못하도록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카더라. 월급이 일정 금액 이상 되어야 하고 일정 이상 되더라도 그 금액의 25% 이하로만 아르헨티나 페소를 달러로 바꿀 수 있었다.
또한 통화정책을 잘못 시행해서인지 국가 전체에 잔돈이 굉장히 부족하다. 최고액권이 1000 페소이고, 최소액권 지폐는 2페소인데[18] 100페소짜리보다 2, 5, 10페소가 더 귀하니 말 다한 셈이다. 또한 동전을 구경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느 정도냐면 여행가서 시내버스 탈 잔돈 구하는 것도 하늘에서 별따기이다. [19] 근데 '어차피 없으면 미국 달러로 대신 쓰면 되니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잔돈 거슬러줄 돈이 없다고 자체적으로 할인해주는 경우도 있고, 웬만한 상점에 가도 잔돈이 없어서 난처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실 이럴 수 밖에 없는게 1000페소권은 우리 돈으로 약 2만 8천 원 가량인데, 최소액권인 2페소짜리 지폐는 200원이 채 안된다.
위 부분들을 보면 아르헨티나는 아무래도 화폐개혁이 필요할 때이다. 비슷한 처지의 터키는 결국 화폐개혁으로 신 터키 리라(YTL)로 바꾸며 화폐단위를 최대한 떨어뜨려 1990년대 터키의 고질병인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잡은 바 있었다.[20] 문제는 화폐개혁이 실패한 북한처럼 되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다.
9. 교육
9.1. 초/중등 교육
교육의 경우 문맹률이 3% 정도다.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하면 굉장히 양호한 수치다. 하지만 전반적인 공교육 수준은 한국 같은 선진국들에 비하면 열악한 편이다. 사실 라틴아메리카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보편적으로 고등교육보다는 공교육이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꽤나 개선된 편이지만 말이다.
연구에 따르면, 공립 학교의 경우 2001년 의무교육 과정에 입학한 69만 명의 학생들 중 정상 시기[21] 에 졸업한 학생은 입학생의 25%인 17만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한 학생들 중 25%만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의 교육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매년 상당한 수준의 인플레율로 인해서 교사들의 파업도 꽤나 빈번하게 발생하다 보니 교육과정에 파행이 생기는 건 예사이다.
그래도 아르헨티나가 나은 점은 이웃나라 칠레처럼 재정을 절감하겠다고 대학 교육비를 과도하게 책정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등골을 뽑아먹지는 않는다는 점은 있다. 다만 아르헨티나라고 해도 사립학교에 다니면은 얄짤없기는 하다. 사립학교 학비는 거의 미국 수준이다. 당연히 극소수 특권층이 아닌 국민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리가 없다.
현지 학교 졸업식은 대개 12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하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은 남반구에 대부분 속해 있는지라 계절이 북반구와 반대라서 12-2월은 여름이다.
9.2. 고등 교육
10. 경제
11. 문화
흔히 영어식 발음인 탱고로 통하는 '땅고(Tango)'는 아르헨티나 원산의 세계적인 춤이자 춤곡이다. 다만 유럽 등지로 넘어가 선율 위주가 된 '컨티넨털 탱고'보다는 훨씬 리드미컬하면서도 우울한 느낌이고 춤도 좀 더 진한 느낌이다. 카를로스 가르델과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 땅고 음악의 본좌들도 대다수가 아르헨티나 출신. 그 밖에 메르세데스 소사 같은 가수도 유명하다. 레전드급이 즐비한 브라질에 밀리긴 하지만 나름 대중음악도 건실한 편인지라 알멘드라와 리더였던 루이스 알베르토 스피네타가 라틴 록계에서 본좌급으로 대접받는다.
인구 상당수가 유럽계 백인, 특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독일 출신의 이민자들로 구성되다보니 스스로를 유럽인이라 여기는 풍조가 있다. 조상인 유럽계 이민자들의 문화와 전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집안도 많은 편이다.
'''1917년'''에 세계 최초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나라이기도 하다.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보다 무려 20년이나 빨리 제작된 것. 하지만 이후 창고가 불타면서 이 작품은 유실되었다.
장례식에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바로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것이다. 고인이 행복하게 신의 곁으로 갔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치는 것으로 특히 사망자가 슈퍼스타면 이게 악질 독재자의 죽음인지 슈퍼스타의 죽음인지 헷갈릴 정도로 환호한다.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 대표적으로 디에고 마라도나의 장례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그의 명복을 빌며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11.1. 식문화
'''세계에서 쇠고기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나라 자체가 소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지형과 환경 조건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목장이라 할 수 있다. 비단 고기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자체가 각종 목축, 낙농, 경작에 완전 축복받은 환경이며, 나라의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적 영향력까지 더해져 전반적으로 경제력에 비해 '''잘 먹고 사는''' 나라로 꼽힌다.
인구에 비해 굉장히 넓은 땅덩어리를 활용해 밀농사나 소와 양 방목으로 얻어진 밀가루와 쇠고기, 양고기를 자급자족하다 못해 외국에 수출할 정도로 농목업 분야에서는 여전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상당하다는 문제점도 있고 해서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농민들이나 축산 농가에 각종 세금을 계속 받고 지원책을 줄여나가고 있어서 이들의 반발도 극심했다가 마크리 정부 들어서 수출 장려로 정책이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런 걸 고려해도 여전히 쇠고기 가격은 싼데, 질 좋은 소고기의 인기많은 부위(등심, 안심)를 마트에서 구매하게 되면 300g에 3000원이 채 안된다. 수입육도 100g에 4,000원이 넘는 한국보다 가격이 10분의 1 될 정도로 고기 값이 싸다. 물론 파리야(parrilla) 같은 고기구이 전문 식당에서 사먹을 때는 이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대개 안심이나 등심 같이 비싼 부위라도 1인분에 11,000원을 넘지 않는다. 심지어 곱창, 콩팥, 췌장 등 내장이나 초리소(소시지)와 모르시야(순대) 같은 것은 쌈마이한 부위 취급받아 1인분이 800~2,000원 정도다.파리야는 원래 아르헨티나 초원에서 가우초들이 소나 양을 도살한 뒤 즉석에서 구워먹던 아사도(asado)[22] 가 도시로 넘어오면서 변형된 것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대도시에서는 번듯한 레스토랑급에서부터 그냥 골목에 좌판처럼 차려놓은 소박한 함바집 식당풍 가게까지 다양한 파리야를 찾아볼 수 있고 시장의 간이 식당이나 뷔페에도 거의 대부분 갖춰져 있다. 다만 쓰는 고기 종류는 아무래도 본격적인 레스토랑급 파리야가 더 다양하고, 좌판 식당풍 파리야에서는 LA 갈비(tira de asado)나 옆구리살(vacío) 같은 저렴한 부위와 닭고기나 내장, 초리소, 모르시야 정도만 갖추고 있다. 아르헨티나식 쇠고기 부위 분류는 다른 나라와 좀 차이가 있는 편인데, 대충 안심은 로모(lomo), 등심은 비페 데 초리소(bife de chorizo), 꽃등심은 비페 데 오호(bife de ojo), 엉치살은 콰드릴(cuadril), 배 부위의 살코기는 마탐브레(matambre)라고 부른다.
이처럼 양질의 고기가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다 보니 아르헨티나에서는 어지간히 못살지 않는 이상 거의 매일 반 근 이상의 쇠고기 요리를 먹고 있어서 1인당 1년 쇠고기 소비량이 100kg이 넘는다. 이 통계대로라면 평균 성인 남자 기준으로 9개월 동안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쇠고기를 먹는 셈. 참고로 베네수엘라같이 아예 경제가 파탄난 나라를 빼면 다른 남미 국가들도 식료품이 싼 것은 똑같으며 쇠고기는 알아주게 잘 먹을 수 있다고 교포들이 증언하기도 한다. 쇠고기는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저렴한 편이지만, 염소나 양고기의 경우 주산지인 남부 파타고니아 외의 지역에서는 다소 비싼 편이고 돼지고기도 부위 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쇠고기보다 대체로 비싼 편이다.
이렇듯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한국에 수입해도 될 듯 싶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아르헨티나 소를 수입하지 않는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서의 소고기 수입을 국내법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캐나다산 쇠고기도 광우병을 이유로 현재 수입금지다. 아르헨티나에서 구제역이 터진 적이 있기 때문에 "가축 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아르헨티나 소 수입을 막고 있는데, 아르헨 구제역이 몇십년도 더 된 얘기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냥 명분 아니냐는 말이 많다. 어쨌든 아르헨티나산 쇠고기와 양고기는 주로 유럽 지역으로 수출되고, 중국에서도 많이 사간다. 본토에서도 많이 사가고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에서도 많이 사간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한국과 달리 아르헨 쇠고기를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자국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한국에 검역 장벽을 풀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와서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아르헨티나산 쇠고기를 비롯한 몇몇 농ㆍ축산물에 대해 수입위험 평가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한국-메르코수르[23] FTA도 협상이 진행 중인데, 남미는 공업이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쪽이 서로 공산품과 농산물을 팔려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FTA를 노리고 있다 한다. 이정도면 머지않아 아르헨티나 쇠고기도 한국 식탁에 올라올 듯. [24]
해산물 요리는 이웃 칠레나 우루과이 등과 비교하면 빈약한 편이다. 연어나 다랑어, 명태, 송어, 광어 등 메이저급 외의 생선은 식당에서 어종도 제대로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워낙 쇠고기를 비롯한 육류가 구하기 쉽고 저렴해서인지 해산물 전문 식당도 그다지 많지 않은 편. 대체로 생선을 통으로 혹은 뼈를 발라낸 필레로 굽거나 튀기거나 지져서 먹으며, 야채 등을 넣고 카수엘라(cazuela)라는 이름의 스튜로도 만들어 먹는다. 일본 요리가 도입되면서 연어 등을 주재료로 만드는 초밥이나 회#s-1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서히 보급되고 있고, 티에라델푸에고 등 바다를 접한 해안이나 섬 지역에서는 킹크랩이나 새우, 홍합, 대구 등 해산물들을 즐겨먹기도 한다. 다만 홍어는 여전히 못 먹는 물고기 취급을 받고 있다. 홍어를 잡으면 죄다 모아다가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한국에서 홍어를 먹는다고 하자 매우 저렴하게 수출하고 있다.[25]
밀가루도 엄청나게 싸다보니 빵값이나 과자값도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서 시장 골목의 허름한 대중 식당에서 요리 하나만 시켜도 서너 종류의 빵을 담은 큼지막한 광주리가 기본으로 깔린다. 과일과 유제품도 마찬가지여서 외지인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켰을 뿐인데 쿠키나 비스킷 두어 조각과 탄산수, 직접 짠 오렌지주스까지 기본으로 나오는 걸 보고 충격과 공포를 느끼는 경우도 적잖다. 빵과 커피로 때우는 유럽식 아침식사의 전통 때문인지 카페 등에서 제공하는 아침 메뉴는 흔히 메디아루나(medialuna)라고 불리는 크루아상 두세 조각과 버터, 후술할 둘세 데 레체, 커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햄과 치즈를 넣은 토스트가 더해지기도 하며, 아예 메디아루나와 도넛, 여러 종류의 페이스트리를 종류 구분 없이 개수에 따라 계산해 먹는 팍투라스(facturas)로 아침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라틴아메리카에서 커피 소비국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데, 유럽 커피 문화에서 오랫동안 선도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인들이 많이 이주해온 덕에 유럽식 커피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어서 많은 카페들이 수준급 바리스타를 고용해 품질 좋은 원두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에스프레소도 식후 입가심용 등으로 많이 소비되고, 우유를 섞은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도 아침식사용으로 많이 소비된다. 우유와 커피의 양은 주문할 때 부탁하면 조절할 수 있는데, 우유를 조금 넣고 싶으면 카페 콘 레체 코르타도(cortado), 반대로 우유를 많이 넣고 싶으면 카페 콘 레체 라그리마(lágrima)라고 청하면 된다. 이외에도 위스키나 럼 등을 넣거나 초콜릿을 섞는 등 다양한 종류의 배리에이션 커피도 갖추고 있다.
커피 외에 마테도 상당히 유명한데, 이웃 우루과이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소비 시장을 갖추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은제 잔 혹은 유리잔에 마테 찻잎과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린 뒤 은제 빨대를 잔에 꽂고 서로 돌아가며 마신다.[26] 다만 이런 방식은 위생 상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어서 개인 별 잔과 빨대를 갖추고 제공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다만 마테 외에 홍차나 녹차 등 다른 차의 소비는 그다지 많지 않아서, 카페에서 이들 차를 주문하면 그냥 시판품 티백을 넣은 찻잔을 내오는 경우가 많다.
아르헨티나의 국민 스프레드로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가 있는데, 우유에 설탕을 넣어 갈색이 될 때까지 약한 불에 졸인 일종의 캐러멜이다. 집에서도 곧잘 만들어 먹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집집마다 고유의 조리법이 있는 곳도 있다. 물론 시판품으로도 여러 종류가 팔리고 있고, 쿠키 사이에 둘세 데 레체를 발라 겹친 알파호르(alfajor) 역시 아르헨티나의 대표 과자로 손꼽힌다. 다만 둘세 데 레체는 아르헨티나에서만 먹는 것도 아니고 남미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2000년대에 이웃 칠레에서 둘세 데 레체를 자국 전통 음식으로 지정하자 아르헨티나인들이 피꺼솟해서 항의하기도 했다.
대체로 아르헨티나 요리는 스페인어권 국가임에도 오히려 스페인 요리보다는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을 받는데, 19~20세기 동안 이탈리아인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식생활과 요리가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스파게티를 비롯한 파스타도 일상식으로 많이 먹고 얇게 저민 쇠고기나 닭고기, 생선살에 빵가루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밀라네사(milanesa)도 대중적인 음식이다. 이름에서 보이듯이 이탈리아 밀라노가 원조로,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넘어가면서 슈니첼이, 스페인과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에스칼로페/에스칼로프(escalope)가 되는 등 유럽 각지에 수많은 변종이 있다. 아예 피자헛은 양키 싸구려 음식(...)으로나 취급받고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이며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 파스타가 대세다. 특히 저민 고기 사이에 얇게 저민 햄과 치즈를 넣고 튀겨내 토마토 소스를 얹어주는 밀라네사 나폴리타나(milanesa napolitana)가 인기가 있는데, 프랑스어로 코르동 블뢰, 스페인어로 산 하코보라고 불리는 요리와 거의 비슷한 모양새다. 피자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음식으로, 대도시 곳곳에 조각 피자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피제리아가 있다. 다만 이탈리아식 피자 대부분이 그렇듯 토핑은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 양파 등으로 단순한 편이고, 얇은 도우에 토핑을 얹어 구워낸 피자는 피차 아 라 피에드라(pizza a la piedra), 두꺼운 도우를 전용 팬에 채워서 구워낸 피자는 피차 알 몰데(pizza al molde)라고 구분한다. 스페인의 토양과 농업 환경 자체가 아르헨티나의 광활하고도 풍요로운 꿀땅에 비해 좀 많이 척박하다. 다른 유럽의 식문화도 적극 도입한 아르헨티나와 대조적으로 스페인과 스페인 식문화의 영향력을 더 짙게 받은 중남미 국가들은 식탁이 좀 더 투박한 편이다. 당장 중점이 되는 고기종류만 하더라도 스페인이라도 소고기를 안먹는건 아니지만 서민 식탁 지킴이는 하몬, 초리소, 살치촌, 등등 엄연히 돼지고기인 반면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소고기 애호국. 물론 스페인어권 국가인 만큼 스페인 요리의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밀라네사와 함께 국민 간식으로 유명한 만두 비슷한 음식인 엠파나다(empanada)도 갈리시아#s-1 지방의 특산 음식이었던 것이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에 퍼진 이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보통 밀가루 피에 양파와 파슬리, 다진 마늘 등으로 양념한 다진 쇠고기를 속으로 채우고 반달 모양으로 접어 오븐에 구워서 만드는데, 이외에도 모차렐라 치즈나 올리브, 으깬 호박, 시금치, 옥수수, 생선, 버섯 등 다양한 속재료를 쓰기도 하고 둘세 데 레체나 모과와 비슷하게 생긴 과일인 마르멜로의 과육을 설탕에 졸인 둘세 데 멤브리요(dulce de membrillo), 고구마를 설탕에 졸인 둘세 데 바타타(dulce de batata) 등을 넣은 디저트용 엠파나다도 있다. 스페인식 오믈렛인 토르티야(tortilla)도 대중적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아르헨티나식 토르티야는 스페인 것처럼 감자와 달걀이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논다고 까기도 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외에 프랑스와 독일계 이민자도 많아서 프랑스와 독일 요리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도 남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서는 맛과 품질 모두 최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고 값도 마찬가지로 싸서 아이스크림 체인점들에서는 250g 기준으로 2,000~3,500원 정도에 판다. 참고로 250g 용량은 한국 배스킨라빈스 31에서 5,400원인 더블 레귤러(230g)와 7,200원인 파인트(320g) 사이다. 애초 젤라토 전통이 있는 이탈리아 혈통이 많은만큼 아이스크림도 유명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거다. 아르헨티나인들은 남미대륙에서 가장 아이스크림을 많이 소비하는 걸로도 유명해서, 한국에서 중국집에 짜장면이나 짬뽕 등을 배달시켜 먹듯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킬로그램 단위로 배달 주문을 할 정도다. 이 때문에 웬만한 아이스크림 가게들은 배달용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갖추고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 맛도 다양한데, 아르헨티나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상술한 둘세 데 레체맛과 그 바리에이션이 있다. 견과류나 초콜릿, 둘세 데 레체 등의 토핑도 웬만해서는 추가 요금 부담 없이 달라는 대로 뿌려준다. 또 코셔 푸드를 먹어야 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아이스크림마다 코셔 인증을 받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표기해 놓고 있고, 글루텐 알레르기 증상인 셀리악병 환자들을 위해 글루텐 함유 여부를 병기해 놓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의 포도주와 맥주 등 술도 맛이 좋다. 포도주는 중부 멘도사 주에서 재배하는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유명하며 맥주도 킬메스, 살타, 이센벡, 파타고니아 등 맥주 브랜드들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다. 그 중 파타고니아는 2019년에 밀맥주 한정으로나마 한국에도 수출되어 국내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땅에 곡물과 여러 식량 자원이 넘쳐남에도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현실은 여전해서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가 아르헨티나처럼 풍요로운 자원과 먹을 게 넘쳐났다면 나는 선진국은 아니라도 적어도 지금의 아르헨티나처럼 개판으로 만들지 않았을 거다"라고 비아냥거린 적도 있고 2016년 말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빈민층 비율은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삐딱하게 보자면 카스트로 말마따나 사람이 만든 국가 시스템이 축복받은 지리, 자연환경 버프를 도저히 제대로 못써먹는 나라라고도 할수 있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아르헨티나에선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도 밥 자체는 먹고 산다는 말도 된다. 그것도 고기반찬으로(...).
11.2. 영화
12. 스포츠
12.1. 축구
브라질과 함께 남미 양강이자 전세계적인 대표 강호 중 하나인 나라로, 많은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들이 전세계 유럽 리그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역사를 따져봐도 디에고 마라도나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같은 축구 영웅들도 아르헨티나 출신. 그리고 현재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 역시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국기를 본딴 하늘색과 흰색 줄무늬 유니폼은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더군다나 2009년 ~ 2010년 챔피언스 리그의 준결승에서 뛴 44명의 선수들 중 무려 11명이 아르헨티나 국적의 선수들이다. 더불어 2010년대 와선 그동안 세계 축구선수 수출 1위이던 브라질을 4백 명 차이로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축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한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FIFA 랭킹 상으로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로는 10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유일한 팀[27] 이며 이 기간동안 FIFA 랭킹 1위를 2번이나 찍었다. 심지어는 절대로 패하면 안되는 팀을 상대로 덜미를 잡혀 조기광탈을 해버려서 자국 역사상 최악의 월드컵이라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끝난 직후의 FIFA 랭킹조차 '''5위'''[28] 였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더불어 FIFA 월드컵,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 지역대회(유로, 코파 아메리카),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전부 우승한 적이 있는 세팀 중 하나다.
전통적인 축구 스타일은 개인기와 조직력이 적절히 조화된 패싱 축구다. 실제로 페르난도 레돈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후안 로만 리켈메, 파블로 아이마르와 같은 뛰어난 플레이메이커들을 배출해 왔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체격적인 조건의 부족, 수비력 부족으로 월드컵에서 쓴 고배를 마셔왔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감독으로 부임해서 팀을 아예 처음부터 완전히 다 뜯어 고치는 진통을 겪은 끝에 국제 대회에서도 월드컵 2회 우승 이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준우승을 달성하여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사베야가 아르헨티나식 축구에 현대축구를 적절히 잘 조합하여 아르헨티나를 아주 강력한 우승후보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반면 공격보다 수비에 치우쳐진 스타일로 변모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1986년 발다노 이후 그뒤를 이을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부재로 수차례 국제대회 우승 기회를 놓쳤다.
자세한 것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또한 '''경기 중에 기관단총이 등장할 정도'''로 최강의 훌리건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프로축구 1부리그로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Primera División de Argentina) 이 있다.
12.2. 농구
이탈리아, 스페인계 출신들이 대다수인지 농구도 인기가 있는 편이며 세계적인 강호이다. 선수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의 마누 지노빌리가 유명하다. 2002년 세계 농구월드컵 우승 및 2004년 올림픽 금메달을 받았다.[29] 남미에서는 당연히 최강이며 이웃 라이벌 브라질을 앞서고 있다. 그런데 2013년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에선 멕시코(우승)와 푸에르토 리코(2위)에게 2번씩 패하면서 6승 4패라는 부진함을 보였다. 그래도 가까스로 다른 6승 4패를 거둔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이 4강에 겨우 들면서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 진출에 성공했다. 참고로 라이벌인 브라질은 와일드 카드로 밀려나서 겨우 진출에 성공하면서 세네갈, 필리핀, 크로아티아, 푸에르토 리코, 그리스와 같은 조가 되었는데 토너먼트는 문제 없다는 평가. 2019 FIBA 농구 월드컵 중국에선 스페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자세한 것은 아르헨티나 농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12.3. 기타 스포츠
럭비도 꽤 인기가 있으며 잘하는 편이다. 이 나라 럭비 대표팀의 별명은 퓨마. 역대 럭비월드컵에서 유일한 남미국가 4강 진출(2007년 대회) 경력도 있다. 영연방 및 유럽 나라들이 우승과 4강, 8강 토너먼트를 휩쓰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 3번을 거둔 프랑스와 같이 유이한 비영연방 국가로 4강에 진출했다.
배구도 월드리그 및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에 여러차례 참가하여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로 잘 알려진 루시아 프레스코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테니스도 꽤 잘하며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클레이 코트에서 전통적으로 강하지만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같이 비 클레이 코트 메이저 대회 우승자도 있다.
골프는 인프라로 치면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하는 동아시아 3국에 밀리는 편이지만 아르헨티나출신 골프선수의 메이저 대회 승수는 3승으로 동아시아 세나라 합쳐서[30] 겨우 1승인 것에 비하면 훨씬 가성비가 좋다.
그리고 의외일 수도 있지만 모터스포츠에서도 위대한 선수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한데 슈마허 다음으로 많은 챔피언(5번 챔피언을 했다)을 한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이 나라 출신이다. 파가니를 세운 호라치오 파가니를 인정한 인물이다.
미들급 복싱 챔피언 세르히오 마르티네스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또 다른 스포츠로는 폴로가 유명하고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NFL에서 마르틴 그라마티카란 이름의 키커가 활약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과거에 남미 최초의 올림픽 대회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개최하려고 했지만 여러번 실패했다.[31] 그래도 2018년에 청소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위안을 삼게 되었다.
13. 인구
- 아르헨티나인 참조.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보통 백인과 원주민, 흑인 또는 그들끼리의 혼혈[32] 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데 반해 아르헨티나만큼은 인구중 97%가 백인인 나라다. 아주 압도적인 비율로 백인들이 우세한 나라다. 사실 아르헨티나 말고도 라틴아메리카에서 백인 비율이 높은 국가들이 몇 있긴 하다.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백인 비율이 높은 국가고, 아르헨티나와 인접한 우루과이와 칠레, 브라질 남부 역시 백인들이 국민 다수를 점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해안가나 남극과 가까운 지역에 백인들이 많다. 물론 브라질, 칠레, 코스타리카 등은 사실 백인 혈통이 70% 이상인 카스티소로 학술적으로는 이들을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메스티소로 본다. 허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경우는 비록 원주민인 과라니나 마푸체, 테우엘체 등이 섞이기도 했지만 백인 혈통이 90% 이상의 비중으로 절대 우세하며 그들은 스페인보단 이탈리아인 혈통이 더 많다.
게다가 아르헨티나에는 다른 남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에 비해 백인계 중에서도 독일인, 이탈리아인, 프랑스인, 영국인-아일랜드인 계통 등 비 스페인계 백인들의 비율이 높다.[33] 실제로 지금도 아르헨티나에는 이탈리아와 독일계 이민의 후손이 많다.[34]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인 혈통이며, 네덜란드의 막시마 소레기에타 왕비는 바스크, 이탈리아, 스페인 혈통이다. 축구 선수들만 해도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는 부계 쪽으로 이탈리아 출신인데 조부가 카탈루냐계 스페인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스페인어에는 rr나 ll 정도를 제외하면 쌍자음을 찾기 힘든데 cc, gg, tt, dd, ss, zz 등과 같은 철자를 가진 중남미계 선수가 있다면 부계가 이탈리아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쌍자음이 아니어도 성씨 끝에 ~i, ~o, ~a, ~e로 끝나는 아르헨티나 백인이면 보통은 이탈리아계지만[35] 한국의 김이박처럼 로드리게스(Rodriguez), 로페스(Lopez), 곤살레스(Gonzalez) 같은 성씨면 대다수가 스페인계다.
한편 독일계의 경우 가브리엘 에인세는 독일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독일계 스위스인 혈통이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의 남편이자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Kirchner)대통령의 키르치네르라는 성씨는 독일어권에서 사용하는 키르히너(Kirchner)라는 성씨의 변형이며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아버지는 엄밀하게는 독일계가 아니라 스위스계인데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독일계 스위스인의 후손이다. 어쨌든 독일인 혈통은 맞는지라 편의상 굳이 스위스계라 보다는 독일계 아르헨티나인으로 넣는다.
덕분에 아르헨티나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 역시 스페인 본토의 스페인어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다. 안데스 산맥 너머 칠레만큼 맛이 간(...) 스페인어를 쓰는 건 아니지만, 이쪽도 이질적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탈리아계가 많다보니 어휘나 억양 등이 상당히 이탈리아어와 닮았다. 스페인어를 공부한 외국인으로서는 사실상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다. 그 외 남미로 도망쳐 온 독일인들 덕분에 독일어와도 일부 비슷하다는 듯 하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이탈리아어식 억양 때문에 아르헨티나 스페인어가 더 듣기 좋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말 그대로 호주 영어 vs 영국 영어라고 볼 수 있는데 호주 영어도 괴악하기로유명하다. 그리고 칠레 스페인어와 아르헨 스페인어 간을 비교하면 그나마 칠레식보단 알아듣기 편하단 사람들도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주축으로 하는 아랍인 이민자들도 상당수 있는데 외형상으로는 백인 아랍인인 지중해인들이라 남유럽 백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남아메리카에서는 그냥 백인종으로 취급한다.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이 부류에 속한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대인 인구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나라이다.
남아메리카 중에도 끝에 있어 원주민 인구가 원래부터 많지 않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이주민들의 침략에 버티지 못하여 백인 정착이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해 빨랐고, 군사력을 동원해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도 대놓고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만 이민을 받아들이는 인종차별 냄새가 나는 이민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36] 후안 페론 집권기 이후에 사정이 나아져서 원주민에 대한 인식이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원주민들의 인구가 메스티소까지 합해봐야 3% 안팎이고 순혈 원주민은 1%에도 못미치는지라 원주민들이 큰 목소리를 내기는 힘든 상황이다. 2017년 10월 현재는 백인과 소수 원주민 부족 마푸체와의 갈등이 악화되어 유혈사태로 번지는 중이다.
한편으로 흑인의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정부 차원에서 흑인들을 대대적으로 인종청소하는 과정을 밞은건 아니지만, 흑인 남성들을 총알받이로 전쟁터로 내몰면서 흑인들의 수가 크게 줄어든데다가 백인들이 대규모로 몰려들면서 혼혈화되는 바람에 흑인 피가 죄다 희석되어서다. 사실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 이전까지는 흑인들의 비율이 나름대로 꽤 되었고,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때 싸웠던 영웅들 가운데서도 흑인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이후로도 여러번 전쟁이 벌어졌을 때 흑인 남자들을 꼬시면서 전쟁에 내보냈는데 그런 식으로 흑인 남성들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나갔다. 그리고 남은 흑인 여자들도 새로 아르헨티나로 온 백인 이주민들과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그랬는데, 그것이 꽤나 오랜 세월동안 진행되다보니 세대가 지나며 백인화가 진행되어 나갔다. 또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아르헨티나에서 흑인을 천시하는 경향이 강해서 아르헨티나 문화 내에서의 흑인들의 영향을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강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흑백혼혈인들도 흑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백인의 정체성을 지니게 되면서 백인들과 결혼하다 보니까 더더욱 흑인들이 적어졌던 것이다.
실제 아르헨티나인들을 유전적으로 조사해보면 원주민들이나 흑인들의 유전자가 상당한 비율로 발견되곤 하는데, 백인들이 많이 이주하다 보니까 원주민들이나 흑인들의 피가 많이 희석되어서 원주민이나 흑인의 외형을 지닌 인구가 극소수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윗동네인 브라질과의 접경지대에 사는 흑인계 브라질인과의 혼혈들은 아르헨티나 본토인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받기도 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인종차별도 많이 완화되고, 이웃나라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되면서 흑인이나 원주민 외형을 지닌 사람을 보거나 흑인/원주민 정체성을 가지는 자를 찾기가 아주 어려운 건 아니다. 만일 아르헨티나에 흑인 혈통이 아예 없다면 굳이 이 나라 소설인 천사들의 합창에서 흑인과 백인을 다루는 얘기는 없었을 것이다.
평균신장은 남성 174cm, 여성 159cm로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남성은 동일하고 여성은 약간 작다.
14. 외교
15. 국적법
아주 특이한 국적법으로 유명한데 아르헨티나 국적은 아르헨티나 헌법에 의하여 '''한번 취득하면 죽어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와 결혼해서 평생을 네덜란드에서 살게 된 네덜란드 왕비 막시마 소레기에타는 30살 때까지 6개월 간격으로 네덜란드 비자를 갱신해서 체류해야 했으며, 30번째 생일이 되어서야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네덜란드 국적을 받았다(물론 왕비가 된 지금도 이중국적). 또 교황이 되면 바티칸 외의 국적을 포기하는데, 아르헨티나 출신인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게 안 돼서 2014년 2월 일반인과 똑같이 바티칸 주재 대사관을 통해 수수료 33유로를 지불하고 아르헨티나 여권을 갱신하였다.[37]
자국 출생자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속지주의, 부모 중 한명이 아르헨티나인이면 해외 출생한 자녀에게도 출생신고를 한다면 국적을 부여하는 속인주의를 함께 채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적법
당연히 아르헨티나는 복수국적을 허용하지만,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곤란해진다.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마르코가 대표적인 예로, 아르헨티나 국적포기를 못해서 한국으로 귀화할 수 없었다. 이후 2010년 대한민국 국적법이 개정되면서 “외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는데 외국 법률에 의해 본국의 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특별한 경우”에는 한국 내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는 조건 하에 예외적으로 복수국적을 허용한다는 조항을 두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국적 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에서도 아르헨티나 국적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급하여 귀화를 허용하거나 선천적 이중국적을 묵인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해당 케이스로는 국가비가 있다.
2019년에 주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대사관이 Q&A에서 아르헨티나 국적은 국적포기가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출처 또한 2020년에 스페인어 통'''·'''번역사가 올린 해당 글에서도 아르헨티나 국적은 헌법상 포기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르헨티나 국적을 문서 조작, 범죄 등을 통해 잘못된 방식으로 취득한 것이 밝혀진 경우에만 국적을 취소(정확히는 박탈)당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예외적으로 외교관의 자녀들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도 아르헨티나 국적을 부여받지 못한다.[38]
16. 아르헨티나 출신 인물
체 게바라의 조국이다.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 활약했다고 해서 쿠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실제로 쿠바 혁명에 공헌한 덕분에 법적으로도 쿠바인이 되었지만 체 게바라의 원래의 실제 조국은 명백히 아르헨티나이며 체 게바라는 쿠바로 가기 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의사로 일했다.
풍자만화 <마팔다>를 그린 만화가 끼노도 이 나라 출신이며, 네덜란드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의 아내인 막시마 소레기에타 왕비 또한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세기의 미녀이자 영원한 줄리엣인 올리비아 핫세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정확히는 영국계 아르헨티나 혼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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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도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인 노르마 놀란(1938년 4월 22일~)이 미스 아르헨티나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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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3일, 아르헨티나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 출신으로는 최초로 프란치스코(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교구장 출신)가 콘클라베에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1911년 태어나 F1 경기를 5번이나 우승했으며 4연속 챔피언이 되었던 F1의 전설의 인물.
시저펠리 건축 설계사 투쿠만 국립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펠리는 미국 일리노이주 어바나-샴페인에 위치한 일리노이 대학 건축학과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가 설계한 유명한 건물로는 뉴욕에서 911 테러로 붕괴된 쌍둥이 세계무역센터, 말레이지아의 페트로나스 타워, 홍콩에서 가장 높은 빌딩 국제 금융센터 등이 있고 광화문에 있는 교보 빌딩 또한 그가 설계한 건물이다.
WWE 프로레슬러 중에서도 있는데 사상 최대의 거인인 자이언트 곤잘레스이다. 덩치가 무슨 북두의권이나 원피스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거인이다. 그 덩치 크기로 유명한 언더테이커를 짜리몽땅으로 보이게 만든 장본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역시 유명한 소설가 마누엘 푸익은 극좌 성향으로 활동 기간과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기가 겹친 이유로 멕시코로 이민하였다. 음악 분야를 보면 20세기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아스토르 피아졸라 역시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패션 모델 중에서는 보이시한 매력으로 유명한 세실리아 멘데스 외에도 프라다의 뮤즈로 불리는 미카 아르가냐라스가 유명하다. 이 외에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인으로 유명한 카밀라 모로네도 있다.
2016년, 한국인 2세 변겨레[39] 가 문화부차관보로 임명이 되었다. 그의 첫째 동생인 변얼은 현대화부 공공혁신국 디렉터, 둘째 동생인 변결은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이다.
16.1. 축구 선수
축구 선수는 첫 월드컵때부터 기예르모 스타빌레라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해서 시종일관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해왔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펠레와 함께 '''축구의 정점'''으로 추앙받는다. 21세기에 들어서는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FC 바르셀로나의 리빙 레전드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에 그와 오랫동안 같은 팀에서 뛴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또한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유벤투스 FC에서 공격수로 활약중인 곤살로 이과인과 파울로 디발라도 아르헨티나 출신, 파리 생제르맹 FC의 미드필더 앙헬 디마리아와 스트라이커 마우로 이카르디도 아르헨티나 출신, 보카 주니어스에서 뛰고 있는 카를로스 테베스, 맨체스터 시티 FC의 리빙 레전드 세르히오 아궤로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그리고 기라성같은 축구스타들을 수도 없이 배출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고 있는 축구 강국답게, 지금도 미래의 스타가 될 유망주들이 그 두각을 일찍이 보이며 세계의 명문 리그 등지로 진출하는 등 국내 리그에서 우후죽순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중에는 2014년 하반기부터 토트넘 홋스퍼 FC 감독을 맡고 있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1998년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현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감독을 맡고 우승까지 차지한 경력이 있는 디에고 시메오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마르셀로 비엘사, 2006년에는 아르헨티나 감독을 맡았다가 현재는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호세 페케르만이 아르헨티나인이다. 물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을 맡아서 수비의 끝을 보여준 바 있는, 지금은 쉬고 있는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 역시 아르헨티나인이다. 남미의 축구 국가대표팀 과반수가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을 채용하고 있다. 특히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서는 4강에 오른 모든 대표팀 감독이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16.2. 노벨상 수상자
- 세사르 밀스테인(César Milstein) 아르헨티나의 면역학자.
1984년 게오르게스 쾰러, 닐스 K. 전과 함께 단일클론항체 개발에 관한 업적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를 다녔고 196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57~6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국립미생물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뒤로는 영국의 의학연구심의회 산하 분자생물학 실험연구소(케임브리지대학교와 관련된 기구)에서 일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영국 양쪽의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를 다녔고 196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57~6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국립미생물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뒤로는 영국의 의학연구심의회 산하 분자생물학 실험연구소(케임브리지대학교와 관련된 기구)에서 일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영국 양쪽의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1970년 복잡한 탄수화물이 깨져 간단한 당(糖)으로 변하는 과정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934~35년 부에 노스아이레스대학교 생리학연구소에서 조교로 일했다.
-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Adolfo Pérez Esquivel) 아르헨티나의 조각가·건축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인권옹호와 비폭력 개혁을 주장한 미술가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인권 옹호 활동들을 통합하기 위해 1974년 창립된 에큐메니컬 조직인 '평화와 정의'(Paz y Justicia)의 사무총장으로 일했으며, 그 공로로 198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Carlos Saavedra Lamas) 1878년 11월 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 아르헨티나의 교육자이자 정치인. 법무교육부 장관과 외무 장관, 국회의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총장 등을 역임했다.
남아메리카의 차코 전쟁(1932~ 35)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공으로 193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6.3. 아르헨티나 캐릭터
17. 둘러보기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1] 실제로 잉카 제국 시기의 유적, 유물들도 출토된다.[2] 이는 미국 백인들도 마찬가지.[3] 아르헨티나인 중에서 출신지 구분 방법이 있는데 성씨다. 곤잘레스, 게레로, 에르난데스, 오르테가, 가르시아, 로페즈 등의 성씨를 쓰면 최소 부계가 스페인계이며 라베치, 밀리토, 자네티, 피아졸라 등의 성씨를 쓰면 이탈리아계이다. 유명한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 후안 베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등이 이탈리아계이다. 바티스투타는 바티스타의 이탈리아식 표기이다며 메시의 성은 SSI로 쌍자음이 오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어 성씨다. 마스체라노 역시 이탈리아계다. 반면 하인츠, 슈미트, 키치너 등의 독일어 성씨를 쓰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출신의 독일인 혈통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이나 우리가 잘 아는 축구선수 가브리엘 에인세 등이 독일계인데 키르츠네르 가문은 스위스 출신의 유서깊은 독일계 가문이다. 그리고 독일계 중에는 독일계 유대인도 있다. 호세 페케르만 감독의 성씨가 독일식인데 그는 독일계 유대인이다.[4] 이 노래를 만들 당시에 '''르'''가 아닌 '''리'''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5]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 VS 아르헨티나의 16강 경기에서도 이영표 해설위원이 줄곧 아'리'헨티나라고 불렀다.[6] 이 당시 라플라타 식민지에는 포토시라는 광산 도시가 있었는데(현재는 볼리비아 땅) 지금은 산지로 유명하다.[7]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8] 후안 페론의 두번째 부인이다. 첫째 부인인 에바 페론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요절했고 에비타의 죽음이 페론에게도 악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는 나라가 엉망이 되는 단초와 군부독재가 탄생하는 씨앗을 제공했다.[9]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과 해군 항공단을 동원해 해병대를 대대적으로 투사시켰으며 아르헨 해군은 애석하게 영국 해군의 상대가 안 됬다. 포클랜드를 강점한 아르헨티나 해병대는 약간의 수병들과 경찰들만 지키던 포클랜드 섬을 쉽게 점령한것까지는 좋았으나 제해권을 뺏기자 결국 영국 해병대의 탈환 공격을 못 막고 전멸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여기에 앙숙 칠레의 영공개방은 덤이었다.[10] 1893년에 창당된 정당으로 사회민주주의-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중도좌파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주요 정당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페론주의가 너무 잘 알려진 묻혀져 버린 정당이라 할 수 있다.[11] 엄밀히 말하자면 수출세 자체는 1920년대부터 있었지만 2006년을 기점으로 인플레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되자 수출세 인상으로 인플레 농가들이 대거 반대를 하며 파업을 벌여 물류수송에 대규모로 지장이 올 지경까지 들고 일어섰고 여론도 욕심만 많은 농가와 무능한 크리스티나의 삽질이라며 쯧쯧거리는 여론이 많았다. 어쨌든 수출세 인상조치는 유야무야되었고 크리스티나 정부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12] 물론 그렇다고 모든 페론주의자들이 찬양받는 건 아니고 이사벨 페론은 군부에게 휘둘렸다는 점 때문에, 카를로스 메넴은 초인플레이션은 해결했지만 그 이후로 제대로 된 경제정책보다는 외채 도입에 집중하면서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와 중남미 일대를 뒤흔든 새로운 경제위기를 잉태했다는 점 때문에 페론주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로부터도 엄청나게 비난받는다.[13] 이런 예비선거에서도 의무투표제가 적용되며 선거 시작 48시간 전부터 선거 당일까지 술판매가 금지된다.[14] 여긴 안의 자치구 중 하나인 사하 공화국이 308만 km²로 아르헨티나보다 더 크다.[15] 남아프리카에 위치해있다.[16] 물론 살인 범죄율이 가장 높은 옆나라 브라질이나 멕시코, 온두라스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그나마 치안 사정은 양호한 편이다. 세계적으로도 아르헨티나는 그리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인식된다. 물론 이웃 우루과이, 칠레에 비하면 불안한 편이긴 하다.[17] 즉, 공휴일이 화요일이나 목요일이면.[18] 2020년부터 5페소까지는 지폐로 바뀌었고, 2페소는 단기간 동안 발행되어 희귀성이 높은 지폐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5페소 미만 1,2 그리고 5페소는 동전으로 유통된다.[19] 그래서 아르헨티나가 SUBE(올라라, 타라)라는 이름의 충전식 교통카드를 공식적으로 버스와 지하철 두 군데에서 받고 있다.[20] 에르도안의 높은 지지율의 배경이 2003년 집권 후 터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터키를 준선진국 수준까지 성장시킨 눈부신 경제발전이었다. 개발독재를 표방하여 1990년대와 2000년대 고질적 인플레이션을 잡고 툭하면 단전/단수가 계속되던 걸 잡으려 과감하게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아타튀르크 댐 등의 수력발전소를 만들고 해수담수화 및 유프라테스 강의 강물을 정화하는 수도 공급 프로젝트 등을 실시했으며 앙숙인 그리스와 관계도 개선했다. 그가 이슬람주의자로서 툭하면 반세속주의로 비판받아도 지지율이 어느 정도 나오는 이유가 다 있었으나...2010년대 중순부터 다시 터키 경제가 엉망이 되고 2020년에는 그리스와 관계도 다시 개판이 되는 등등 여러 실책도 나와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정당이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21] 2012년 기준[22] 쇠고기를 약한 장작불에 '''오랜 시간 완전히 익혀''' 먹는 요리로, 이는 팜파스 지대의 기후 특성상 다른 나라들처럼 설익은 상태로는 먹기가 힘들기 때문이다.[23]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로 구성된 남아메리카 자유시장.[24] 하지만 거리가 원체 멀어서 생각보다 경쟁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홍어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만 유독 비싸므로 운송비를 감안해도 경쟁력이 있으므로 계속 수입중이지만, 소고기는 가격 이외에도 신선도와 같은 소비자들의 선호패턴이 다양해서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는 문제가 있다. 한우가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다.[25] 처음에는 칠레에서 많이 수입했지만 칠레에서 홍어 어획량이 떨어지자 아르헨티나는 물론 브라질, 우루과이, 페루에서도 수입을 하고 있다.[26] 한때 마테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구강암 발병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 적이 있었는데 성분 보다는 열전도도가 높은 은제 빨대로 뜨겁게 마시는 방식에서 기인했다는 주장도 있다.[27] 독일조차 2004년 3월자 피파랭킹에서 19등을 했다. 그런데 이때는 FIFA 랭킹이 개판이던 시절인데 멕시코가 6등, 일본이 18등을 하던 시절이었다.[28] 그나마도 2위에서 떨어진 랭킹이다.[29] 2004년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는 딱 두 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그게 바로 농구와 축구에서였다.[30] 버블붕괴 이전에 매우 부유했던 일본은 골프용품시장에 있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시장이고 용품업체 또한 미국 다음으로 많지만 자국선수는 의외로 부진해서 PGA투어 메이저 대회 우승자가 아직 없다 또한 새로운 시장인 중국은 PGA 투어를 뛰는 선수자체가 아직 적다. 그나마 한국에서 양용은이 2009년에 PGA Championship을 우승한게 아시아인 유일의 메이저 우승이다.[31] 남미 최초의 올림픽 대회는 결국 2016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었다.[32] 메스티소, 물라토 등[33] 물론 그중에서 이탈리아+스페인의 라틴계 비율이 제일 크다.[34] 스페인이 다스릴 때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은 스페인 제국의 신대륙 식민지 중 개발과 개척도 가장 늦은 편에 속했다.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개발은 주로 카리브해→카르타헤나를 중심으로 한 현대 콜롬비아 북부→페루 부왕령으로 이어지는 큰 척추가 중심이 되었고, 그 아래쪽의 칠레나 동쪽의 아르헨티나 일대는 안데스 산맥이란 거대한 자연 방벽과 남아메리카 한 가운데를 집어먹은 포르투갈 땅인 거대한 브라질 그리고 남부 마푸체인들의 저항으로 인해 나머지 스페인 식민지 중심거점들과 제대로 연계가 되지 않았다.[35] 예:Ezequiel Iván Lavezzi.[36] 백인 이외에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황인종도 이민을 받아들인 브라질이나 페루 등 다른 남미 국가들의 이민 정책과는 반대였다. 하지만 브라질과 페루도 유럽계 백인들이 아주 안 온건 아니었고 사실 이 두 나라에서도 백인이 꽤나 우대받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많은 백인 이주민들이 오기는 했다. 일례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페루 대통령, 지우마 호셰프 전 브라질 대통령, 미셰우 테메르 전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브라질 대통령 등도 남미 원주민이나 혼혈 메스티소가 아닌 아닌 백인이다.[37]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아르헨티나 국민의 자격으로 아르헨티나 여권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으나 교황의 공식 일정에는 바티칸 여권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38] 대부분의 출생지주의(속지주의) 국가들은 외교관의 자녀가 자국 출생이어도 정책상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 캐나다도 마찬가지.[39] 현지이름 Antonio Kyore Beun. 3형제가 모두 순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다.[40] 결말때 일본에서 아르헨티나로 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