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극선
金極善'''

[image]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78년 1월 17일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지평리
<color=#fff> '''사망'''
1945년 1월 1일
경기도 양평군
<color=#fff>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color=#fff> '''직업'''
독립운동가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극선은 1878년 1월 17일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지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서울 서린동의 영흥관에서 김백원(金百源)·문일평·차상진(車相晋)·문성호·조형균(趙衡均)·백관형(白觀亨) 등과 만나 독립만세시위 계획에 대해 상의했다. 이들은 13도 대표자 명의로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 애원서(哀願書) 2통을 작성하여, 1통은 조선총독에게 보내고 1통은 종로 네 거리의 보신각에 시위군중을 모아 그곳에서 낭독하기로 하였다.
애원서가 작성되자 차상진과 문성호가 그 중 1통을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것을 담당하고,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보신각으로 나아갔다. 수백명의 모인 보신각 앞에서 문일평이 대표로 이를 낭독하고, 이어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양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1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극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