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섭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난섭'''
'''金蘭燮'''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5년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홍문리
<color=#fff>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난섭은 1895년생이며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홍문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15일, 중국 간도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군기감(軍機監) 이명서(李明瑞)가 친일파와 일본인 고관들의 암살,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박근영(朴根永)·원사현 등 동지 10여 명을 규합하여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선임되어 이들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이영식(李永植) 등 수 명을 규합하여 그 일행과 접선하였다.
그리하여 암살단 일행을 안내하여 친일 한인관리인 은율 군수 최병혁(崔丙赫)을 사살·처단케 하는 한편, 은율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경을 총살하는 임무에 협조한 뒤 암살단 단원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탈출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설립한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은 뒤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21년 다시 국내로 밀파되어 군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 등 민족운동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9월 1일 황해도 은율 근처에서 장연·송화 등 일본 경찰대와 격돌하게 되자 총을 쏘며 전투를 벌이다 동 단원 이창실(李昌實) 등과 함께 붙잡혀 9월 14일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21년 12월 22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2년 2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기각,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난섭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