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1892)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상옥은 1892년생이며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동고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 3월 평안북도 천마산에 자리잡은 천마산대(天摩山隊)에 입대 후 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음력 6월 20여명의 대원과 함께 평북 의주군 옥상면 면사무소 및 주재소를 공격하여 총기와 탄약을 획득하였다. 1921년 7월경 초산군 판면 삼림간수소(森林看守所), 창성군 대유동 주재소 및 우편소를 공격하여 역시 총기와 탄약을 획득하는 한편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주민들에게 시위를 독려하였다. 같은 해 9월경 초산군 도원면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공격하여 무기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1922년 일본군이 천마산대를 대대적으로 포위 공격하자, 이를 피해 중국으로 건너간 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들어가 소대장·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4월 참의부 제3중대 대표로 최지풍(崔志豊)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남만군민(南滿軍民)에 경고함」이란 경고문에 서명하는 한편, 재남만군인 대표로 백광운(白狂雲)과 함께 「남만통의부군대(南滿統義府軍隊)의 선언서」에도 서명하였다.
1928년 9월경 참의부 제4중대장이었던 그는 환인현 창충구에서 본부로부터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관헌과 내통한 윤창룡(尹昌龍)·박춘근(朴春根)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원들로 하여금 이들을 처단하였다. 같은 해 11월 8일 통화현(通化縣)에서 열린 참의부 회의가 개최되자, 김동일(金東一)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통화현 일본영사관경찰서는 중국 관헌의 협조를 받아 회의장소를 포위·수색하여 수 명을 살해하고, 김상옥 등 40여 명을 체포하였다.
그해 11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 강계지청으로 송치된 후, 3년 4개월 이상 고초를 치르다 1932년 3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문일민의 『한국독립운동사』에는 15년간 옥고를 치르다 옥사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김상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