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군

 




義州郡 / Ŭiju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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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의주시가지의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찍은 모습'''
'''일제강점기 의주시가지의 모습[1]'''
의주군
義州郡 / Uiju County
국가
북한
광복 당시 면적
1,677㎢
광역시도
평안북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1읍 12면
인구
10만1000여 명
시간대
UTC+9

1. 개요
2. 역사
3. 기타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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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읍성의 사실상 유일한 흔적인 의주남문 '장변루'의 모습
평안북도 서북쪽에 위치한 . 한 때는 평안도 3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 직후까지 청나라와의 무역으로 흥했던 '''조선 제1의 무역도시'''였다. 별칭은 만부(府)[2]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이웃한 국경지대이며 역사적으로도 지금도 북한중국 사이의 주 무역통로 중 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2. 역사


고려시대에도 압록강의 검동도 위에 요충지인 내원성(來遠城)이 위치해 있었다. 내원성은 삼국시대 고구려부터 존재하였던 城이었으며 남북국시대에는 발해의 관할이었던 걸로 보이는데 이후 고려 대에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의 요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1차 여요전쟁서희 담판으로 강동6주는 고려에 속하게 되었지만 여진족북송의 통교를 방지한다는 목적에서 내원성은 여전히 요나라가 관할하고 있다가 금나라가 요를 멸망시킬때 쯤에야 고려가 점령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이곳보다 남쪽에 위치한 흥화진이 고려의 서북변의 경계였다. 참고로 성을 점령한 경위가 좀 웃긴데 예종(고려) 대에 성을 지키고 있던 요의 통군(統軍) 야율영(耶律寧)과 내원성자사(來遠城刺史) 상효손(常孝孫)이 금의 공세가 심해지자 고려에게 을 잠시 맡길 테니 나중에 다시 돌려달라고 당부하고 나서 바닷길로 탈출했는데 물론 다시 돌려받을 일은 영원히 없었다(...).
위치 특성상 여몽전쟁, 정묘호란 등 북방민족에게 침략당했던 전쟁에선 제일 먼저 점령당했던 안습한 역사가 있다. 반면 조선 선조 시절 일본군이 침공했을 때는 최후방이었고, 선조가 피난간 지역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군사적 요충성과 무역거점으로 발전해 국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지방행정 단위였던 부(府)[3]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도 관찰사와 동급이었던 종2품 부윤(府尹)이 관할하였다.
과거에는 신의주시까지 포함하였던 지방이다. 전통적으로 의주읍은 중국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해 왔으나, 이후 일제강점기경의선이 놓이게 되면서 신의주-단둥 간 교통로가 발달하며 관문 역할은 신의주에게 내주고 오히려 신의주의 위성도시 역할로 변모했다. 2008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의주의 인구는 약 11만명으로, 군 단위 지역치고는 인구가 적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번성했던 역사에 비하면 현대의 의주는 확실히 망했어요.

3. 기타


교통은 행정구역이 조정되어 덕현선만 지나간다. (신의주가 떨어진 이후에도 백마선이 지나갔으나 북한의 조정으로 피현에 떨어져 나갔다.) 덕현선은 압록강을 따라가지만 평북선과 접속되지 않는다.
의주 지역의 유적으로는, 관서팔경 중 하나인 '통군정'과 '의주읍성 남문'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는 의주읍 일대에 수백채의 한옥들과 의주행궁, 그리고 관아들이 남아있었지만 한국전쟁당시 의주폭격으로 모조리 불타서 사라졌다.
서울특별시의주로(義州路)는 이 곳의 이름을 딴 길이다.
2017년 국가직 9급 한국사 과목에서 의주사(史)에 관한 단독 문제가 나왔다.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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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당시 면적 1,677km2, 1읍 12면이었다. 압록강에 면한 읍면은 *표시한다.
  • 의주읍(義州邑)*
    • 관할 동 : 동부(東部), 서부(西部), 향교(鄕校), 구성(舊城), 남문(南門), 동외(東外), 서호(西湖), 원화(元化), 청전(靑田), 홍북(弘北), 홍서(弘西), 홍남(弘南), 다지(多智), 어적(於赤)
    • 군청 소재지는 향교동, 읍소재지는 동부동이다. 원래 의주면과 주내면(州內面)으로 나뉘어 있었다가, 1931년 의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43년 주내면이 병합됐다.
    •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피난했던 곳이며, 1907년~1921년 사이에는 평안북도 도청소재지이기도 했었다. 의주 남대문, 통군정(統軍亭) 등의 고적, 구 양실학교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 압록강 위의 섬인 검동도(북한:다지도), 어적도 또한 관할하고 있었다.
  • 가산면(加山面)*
    • 관할 동 : 옥강(玉江), 도령(都嶺), 방산(方山), 이송(梨松), 천감(泉甘), 추(楸)
  • 고관면(古館面)
    • 관할 동 : 관(館), 관북(館北), 남산(藍山), 남창(南昌), 노(蘆), 동(東), 동상(東上), 상고(上古), 상단(上端), 서하(西下), 용화(龍化), 이화(梨花), 중고(中古), 중단(中端), 춘곡(春谷), 하단(下端)
  • 고령삭면(古寧朔面)
    • 관할 동 : 구창(舊倉), 구북(舊北), 대하(大鰕), 동고(東古), 동암(東巖), 삼봉(三峰), 서고(西古), 원봉(圓峰), 일녕(一寧), 천마(天摩)
    • 고령삭면민회
    • 삭주군과의 경계에 군내 최고봉인 천마산이 있다.
  • 고성면(古城面)*
    • 관할 동 : 인하(烟下), 가로(加老), 대산(臺山), 용문(龍門), 용산(龍山), 인상(烟上), 정주(正州)
    • 의주읍과 신의주시 사이에 위치한다.
  • 광평면(廣坪面)*
    • 관할 동 : 청성(淸城), 부평(富坪), 불정(黻汀), 상광(上廣), 판막(板幕), 하광(下廣)
    •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청성군 소재지.
  • 비현면(枇峴面)
    • 관할 동 : 체마(替馬), 광상(廣上), 광중(廣中), 광하(廣下), 구룡(龜龍), 기봉(岐峰), 노남(蘆南), 노북(蘆北), 노중(蘆中), 당후(堂後), 도봉(道峰), 마산(馬山), 산대(山臺), 영평(永平), 원(院), 장생(長生), 정산(亭山), 홍희(弘希)
    • 북한 행정구역상 피현군 소재지.
  • 송장면(松長面)
    • 관할 동 : 금광(金光), 강정(江井), 남산(南山), 대문(大門), 사산(社山), 설매(雪梅), 소수(小水), 송산(松山), 연무(燕武), 영달(永達), 운천(雲川), 창원(昌元)
    • 수진면과의 경계에 있는 금강산(524m)은 의주금강이라 불린다.
  • 수진면(水鎭面)*
    • 관할 동 : 운천(雲川), 대수(大水), 덕현(德峴), 미산(美山), 석계(石溪), 송천(松川), 수구(水口), 와룡(臥龍), 용문(龍門), 용운(龍雲), 이화(梨花)
    • 미송리(광복 당시 미산동+송천동)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덕현선 철도가 덕현동까지 가설되어 있다.
  • 옥상면(玉尙面)
    • 관할 동 : 당목(棠木), 남사(南社), 내옥(內玉), 북사(北社), 삼상(三上), 삼하(三下), 상경(上庚), 어상(於上), 어중(於中), 좌(佐), 하경(下庚)
  • 월화면(月華面)
    • 관할 동 : 취봉(鷲峰), 마룡(馬龍), 마흥(麻興), 우천(牛川), 운천(雲川), 월하(月下), 장무(長武), 정산(亭山), 주음(奏音), 추(楸), 화하(化下), 화합상(化合上), 화합하(化合下), 회상(檜上), 회하(檜下)
  • 위원면(威遠面)
    • 관할 동 : 서하(西下), 구장(九嶂), 동상(東上), 동린(東麟), 사상(四上), 사하(四下), 삼하(三下), 상단(上端), 서(西), 성내(城內), 정심(正心)
    • 백마역(백마선)이 있다. 북쪽 고성면과의 경계에 백마산(409m)이 있으며, 병자호란백마산성 전투가 있었던 백마산성이 있다.
    • 신의주시 동부에 있던 면. 1941년 신의주부에 편입돼 폐지됐다.
    • 신의주시 남부에 있던 면. 신의주 시가지도 원래 광성면 신의주동이었다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신의주부로 분리됐다. 1941년 신의주부에 편입돼 폐지됐다.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광성군 소재지.
[1] 현재의 의주군과 비교하면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모인다. 사진 속 일제강점기의 의주는 외국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오며 기와집들이 빽빽히 들어서있던 번영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의주의 이런 전성기는 일제강점기 초 신의주의 성립으로 인해 사실상 종식되었다.[2] 여기서 따온 이름이 의주상인을 일컫는 '''만상'''이다. 개성의 송상, 평양의 유상, 동래의 내상, 경강상인과 더불어 한국사 단골 출제 문제다.[3] 평양과 동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