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북한)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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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영일
1955년 ~ 2000년 사망 추정
북한의 정치인이자, 외교관.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 김만일,[1] 김경희의 이복동생이자 김경진, 김평일의 친동생. 즉, 김일성의 '''4남'''이다. 일반적으로는 3남으로 인식된다.

2. 생애


김평일과 함께 김영일은 김정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방자하게 굴어 담임선생에게 '''선생 동무가 우리 아버지보다 세오?'''라고 건방지게 굴며 선생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김일성이 김영일이 보는 앞에 담임선생을 불러다 놓고 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사과하는 쑈를 했고 그 이후로 김영일은 담임선생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권력욕이 대단하고 공작에 능했던 김정일은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전영화를 대폭 만들고 주체사상탑을 건설했으며 자신이 곁가지라 부르는 김성애 일가의 비리를 계속 폭로했다. 이러한 김정일의 노력(?)으로 김정일은 아버지처럼 전제군주의 권력을 손에 쥐었고, 형 김평일이 유고슬라비아 주재 무관으로 쫓겨나자 그 동생 김영일도 쫓겨났다. 김일성 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한 다음에 동독으로 유학을 갔고 북한 제2자연과학원 공학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한때 잘 나갔으나 2년 만에 김정일의 압력으로 쫓겨났다. 누군가 김영일과 대화하기만 하면 즉각 조직지도부 담당지도원이 '''무슨 생각으로 곁가지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가?'''라고 마구 추궁을 하니 일을 할 수가 있나. 담배 한가치만 나눠 피워도 추궁이 매서웠으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결국 독일 주재 북한대표부 과학참사관으로 쫓겨났다.
2000년 5월 16일, 어떤 대북소식통은 김영일이 독일에서 간경화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하필이면 그때가 중대한 행사가 열리기 직전이라서 김영일이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김영일이 최근 간 질환을 앓아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김평일에 비해 활동이 줄어든 것이다.'라고 확인사살했다.
여담으로 김정일 정권 말기에 북한의 내각 총리를 지냈던 김영일(2007년~2010년 재임)과는 동명이인이다.

[1] 1944년 ~ 1947년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